환대

-사색의 시간

by Sapi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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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


sapiens


무심코 들어가 앉은 테이블 위에 노트 한 권과 펜이 놓여 있었다. 하얀 무명천 테이블보 위에서 누군가의 사연을 기다리고 있는 듯 보였다.

자리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과 두리번거리는 시야의 움직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주인장이 허브티백을 넣은 화려한 찻잔을 테이블 위에 놓고 간다. 회색빛이 나는 긴 앞치마를 두르고 소매를 접어 올린 옷매무새가 제법 자신만의 포스를 나타내고자 하듯 보인다.

화려한 찻잔은 내 취향의 그림은 아니었다.

아뿔싸!

컵 안에는 허프티백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잊어버린 걸까...?'

차분히 기다려보았다.

잠시 후, 주인장의 손에 주둥이가 가늘고 긴 모양의 주전자를 쥐고 나의 테이블로 걸어오고 있다.

주인장은 테이블 왼편으로 다가오더니 오른손에 들고 온 날렵하게 생긴 스테인리스 주전자를 들고 화려한 찻잔을 향해 기울이고 있다.

따뜻한 물이 작은 주전자 입구를 통해 찻잔 안을 채우고 있다.

이건 무슨 시추에이션일까...

허브가 우려 나려면 한 참의 시간이 필요했다.

주인장의 고집스러운 자기만의 방식인지 몰라도 여러모로 비효율적이며, 멋스럽다는 생각 따윈 없었다.

우려진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주인장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내 머릿속에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차를 마시며 그 시간을 즐기고 싶었으므로...

하지만 나의 집중도는 이미 떨어져 있었다.

'인간은 주위 환경에도 노예가 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만의 사색의 시간을 즐기고 싶었는데..., 결국 그 분위기를 깨버린 것들은 내가 선택해 들어간 공간 속의 환경이었다. 환경이 어떻든 내 생각대로 행동하는 주인이 되지 못한 것이었다.

화려한 찻잔에 정성스럽게 허브차를 따라 준 주인장의 행위는 결국 나를 환대해 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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