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집에서 생긴 일

-추억

by Sapiens

우리 엄마는 고향이 애월읍 수산이다. 수산 박씨집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그 동네에서 유명한 박씨집 딸이면서 머리가 좋았다고 한다. 엄마가 항상 하시는 말이다. 사실 확인할 수는 없으니 믿거나 말거나이다. 그리고 시집을 오기전에는 한림장까지 걸어서 오가며 장사도 하고 제법 한 인물했다고 했다. 그래서 멋진 아빠를 만나고 성안으로 시집을 왔다고 했다. 성안은 제주시를 말한다. 나에게 이모는 모두 세 분이 계시다. 우리 엄마만 성안에 사신다.

성안 우리집은 백평이 되는 터에 안거리, 밖거리 모두 다섯가구가 살고 있다. 우리가 사는 안거리 빼고는 다른 사람들이 세들어 살고 있다. 지붕은 스레트 지붕에 대문도 철제대문이다. 엄마는 성안에 살고 있는 것만으로 출세했다며 이모들 사이에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난 엄마 고향인 수산에 가는 걸 좋아한다. 그곳엔 재미있는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명절때면 엄마는 우리를 이모댁에 보내주곤 했었다.

바로 오늘이 수산이모댁에 가는 날이다. 추석, 설 명절이면 수산에서는 마을 잔치가 열린다. 밤이 되면 윗마을 아랫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콩쿨대회가 열린다. 사실 우린 참가자격이 안 되지만 이모 빽으로 참가하곤 했다. 도시년이라는 표현을 감수하면서......,

아침부터 떠들썩하다. 어젯밤에 싸둔 보따리며 아껴두었던 옷을 꺼내입으며 넷째언니와 다섯째언니, 그리고 나는 무척이나 들떠 있었다. 마치 엄마의 특명을 받고 일을 수행하러 가는 사람들처럼 우리는 엄마의

이모 말 잘 듣고 잘 지내다 오라

는 말을 들으며 12일의 일정으로 집을 나섰다.

오늘은 넷째언니가 대장이다. 오빠가 같이 갈 때는 오빠가 대장이다. 난 막내라서 항상 졸병이다. 시키는 일은 군소리 없이 해야한다. 그래야 순조로운 여행이 될테니까말이다. 내가 대장이 되면 막내에게도 발언권을 줄 것이다. 사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말이다. 우리는 수산행 버스를 타기 위해 터미널로 갔다. 시내에서 타면 두 번 갈아타야하기 때문에 이번에는 터미널로 정한것이다. 넷째언니가 선택한 대로 우리는 수산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나는 수산으로 가는 버스에 오르기만 해도 수산 특유의 냄새가 나는 것 같다. 그 냄새는 나를 흥분시키기도 들뜨게 하기에도 충분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잔잔한 바다는 내 마음을 차분하게 해 주었고, 이름모를 꽃들이 만발한 밭들을 지날때면 그 꽃향기가 진동한다. 나중에야 그 꽃이 유채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옹기종기 앉아있는 초가집들이 가리런히 우리들을 맞이한다.

수산이모는 혼자 사신다. 사실 아들이 없어 양아들을 두었는데 이모만 부려먹는 것 같아서 싫다. 나는 이모의 양아들을 오빠라 불렀다. 왜 아들이 꼭 필요한 것인지 모르겠다. 사실 우리 엄마도 아들 낳을려고 딸을 7명이나 낳았으니말이다.

이모가 사는 수산에는 대문이 특이하다. 두 개의 나무기둥에 길다란 나무 세 개를 걸쳐 놓는다. 나무 세개 모두 가지런히 걸쳐있으면 주인이 멀리 나가 집에 아무도 없다는 의미고 두개가 걸쳐있으면 가까운 곳에 잠깐 갔다는 뜻이란다. 마침 오늘은 나무가 걸쳐있지 않아서 이모가 집에 있다는 걸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이모~이모~”

~성안년들 와시냐~”

수산이모는 우리 엄마와 달리 키도 크고 몸도 호리호리하다. 참 이건 비밀인데 담배도 피우신다. 사실 난 처음에 담배는 남자들만 피우는 것인 줄 알았는데 우리이모는 예외다. 이모의 특권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쭈글쭈글 주름진 얼굴에 쭈그려앉아 담배를 물고 한모금 빨아 내쉴때면 이모의 시름이 함께 사라진다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이모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나에게 낯선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엄마는 담배를 피우는 이모에게 자꾸 뭐라 하시곤 했다. 이모는 우리가 오면 참 좋아하신다. 이모는 딸이 하나 있는데 친손녀들이 있을 때도 우리 도시년들을 먼저 챙겨주시곤 한다.

사실 이모집은 시골이라 생활하는데 많은 것들이 불편하다. 부엌바닥은 흙이고 음식은 장작을 피워 아궁이에 불을 지펴가며 해야 한다. 연기가 자욱한 부엌에서 후우불면서 이모는 음식도 뚝딱 만들어 낸다. 이모는 우리가 오면 아껴두었던 음식들을 내오신다. 동그런 나무 밥상에 낭푼 한가득 지은 밥을 담아내고 갖은 나물과 함께 내오신다.

시골엔 도시에서 먹는 반찬 어시난 반찬투정 허지말앙 먹으라이

하시고는 우리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옆에 앉아 많이 먹으라 하신다.

밤이 되자 이모는 호롱불을 켠다. 분위기 죽인다. 아랫목에 우리를 누이고 이모는 문옆에 누으신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서인지 방바닥이 따뜻했다. 이모와 우리 셋 이렇게 넷이 누워 있으니 참 좋았다. 그런데 어느새 잠이 들었는지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저녁을 너무 많이 먹었는지 아까부터 자꾸 배가 아팠다. 사실 저녁밥을 두 낭푼이나 먹었으니 말이다. 이모가 정성스레 만든 밥을 두낭푼은 먹어줘야 예의라고 생각했다. 어떻게든 참아보려 했는데 안되겠다싶어 나는 옆에서 자고있는 언니를 흔들어 깨웠다.

언니, 언니, ...배 아픈데...화장실 가야 될거 같아

언니, ? 언니, 같이 가자~~~?”

어휴~~알았어

우린 후래쉬를 들고 도둑고양이처럼 슬그머니 밖으로 나왔다. 사방이 컴컴해서 어디로 가야할 지 몰랐다.

, 후레쉬는 땅으로 비추어야 해

언니가 의기양양하게 후레쉬를 비추며 걸어갔고 나는 그 뒤를 따라 걸어갔다. 이럴 때는 언니가 진짜 대장 같다.

우웩~”

고약한 냄새가 코를 지른다.

똥돼지들이 이 시간까지 잠을 자지 않고 있었다. 일명 똥돼지난 왜 똥돼지인지 알 것 같았다.

똥돼지야, 내가 볼 일 볼때는 오지마!”

이 똥돼지는 소리에 민감한건지 사람냄새에 민감한건지 나의 부탁과는 다르게 어느새 내가 앉아있는 곳에 까지 와서는 코를 쳐 들고는 나를 향해 꿀꿀 소리를 내고 있는게 아닌가?

~ 언니, 나 도저히 못 보겠어, 어떡하지...”

언니는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그럼 너 절대 비밀이다. 저쪽 과수원 안으로 들어가서 볼일 봐. 내가 망을 봐 줄게. 대신 얼른 나와라

그날 밤 우리는 이모 몰래 큰 일을 치르고 공범이 되고 말았다.

다음 날 아침 이모가 불렀다. 언니들과 나는 밖으로 나가 보니 손녀들도 나와 있었다. 이모는 우리를 위해 따뜻하게 물 한솥을 데우시고 기다리고 계셨다. 세수를 하라신다. 그곳은 우리가 어젯밤 거사를 치른 곳에서 불과 몇미터 안되는 지점이다. 냄새가 난다고 할까봐 조마조마했다. 그 순간 이모가

도시년이 달라도 다르다. 세수허랜허난 요아이들은 그냥 나와신디 도시년들은 수건들도 챙겨오고

하면서 우리를 기특하다고 치켜세워주셨다.

우리는 이모가 아침 일찍 일어나 데워 준 물로 따뜻하게 씻을 수 있었다.

이윽고 우리는 이모가 차려준 아침밥을 맛있게 먹었다. 이후 이모는

조근년아, 이거 도새기 돗도구리에 갖다 줘덩오라

하면서 나에게 남은 음식들을 넣은 커다란 낭풍이를 내밀었다. 똥돼지 아침밥이였다.

그래 어젯밤 우리가 한 일들을 돼지는 다 알고 있으렸다.

내가 입막음을 해야지

나는 이모가 준 낭푼을 들고 똥돼지에게 다가갔다.

, 똥돼지, 볼일 볼 때 오지말라니까 괜히 와가지고 너 때문이잖아! 이거 내가 주는 거다.”

고약한 냄새 때문에 더 이상 담판을 지을 수 없었다. 돼지 밥그릇으로 보이는 동그랗게 생긴 커다란 돗도구리에 음식물을 던져주고는 헐레벌떡 달려 나왔다.

이제 돼지 아침밥도 챙겨주었고 어젯밤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방으로 돌아왔다. 방안에서는 저녁에 있을 콩쿨대회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나는 무척 기대되었다. 이번 대회에는 노래자랑과 장기자랑으로 꾸며지고 상품도 푸짐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넷째언니는 다섯째언니에게 권했다.

문희야, 너 노래 잘하잖아, 나가보는 게 어때?”

그럴까 언니?”

영희는 장기자랑 나가 볼래?”

사실 난 음치다. 그래서 넷째언니가 나에게는 노래를 권하지 않는 것이다.

! 나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언니, 나도 나갈래

, ...그 그럴래

대답이 쉬원치 않았지만 한 번 해 보고 싶었다.

우리는 리허설을 하기 위해 마을 천막이 쳐진 마을회관쪽으로 걸어갔다. 리허설이지만 일찍부터 마을 사람들이 꽤 많이 모여 있었고 생각보다 규모가 큰 행사였다. 우리는 무대 뒷쪽으로 가서 출연신청을 했다. 긴장이 많이 되었다. 심장이 쿵쾅쿵쾅 시키지도 않은 방망이지를 왜 이리도 요란하게 해 대는지 목소리까지 떨릴까 걱정이 되었다. 드디어 언니차례가 되었다. 사회자는 언니를 성안에서 왔고 피부도 희고 아주 예쁜 학생이라고 소개해 주었다. 큰 박수와 함께 언니가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앤 노우 타임즈~~굿바이 투드브~앤드 피플 후에~~~”

정말 도시년의 면목을 보여준 것임에 틀림없다. 언니는 영어로 간드러지게 부르며 멋지게 신고식을 치렀다.

딩동댕~”

언니는 예선 통과다. 그 다음 차례가 나였다. 사람들은 역시 도시년들은 달라도 뭔가 다르다면서 환호와 함께 큰 박수를 쳤다. 사회자는

이번에도 성안에서 온 소녀의 노래를 감상하겠습니다.”

하면서 나를 소개해 주었다. 하지만 나는 제정신이 아니였다. 내가 무대위에 어떻게 나갔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고 순간 언니가 장기자랑 나가자는 말을 들을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 진 물, 이판사판이였다. 떨리는 두 손을 앞으로 가지런히 하고 리듬을 타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자꾸 소리 높여 불러도 마치 글읽는 소리가 되어 나올 뿐이였다. 나는 홍당무 얼굴이 되었다. 그 순간

!”

하는 소리가 정신을 번쩍들게 했다.

나도 언니처럼 멋지게 부르고 폼 좀 잡아보려고 했는 데 에이~“

너무나 속상했다. 옆에서 넷째언니가 손으로 입을 틀어 막고 키득키득웃고 있었다. 나한테 딱 걸렸다.

거봐~내가 장기자랑 나가라고 하니까

, 말이 언니지 내 친언니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희언니는 실전에서는 우수상을 받았고 박수세례를 받으며 인기 짱이 되었다. 사실 내가 생각해도 언니는 노래를 참 잘했다. 왜 같은 뱃 속에서 나왔는데 나는 노래를 못하는지 모르겠다. 휘영청 밝은 보름달마저 날 비웃는 것만 같았다. 내 마음과는 다르게 콩쿨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마을 사람들은 웃고 떠들며 참 행복해 보였다. 그렇게 콩쿨대회는 끝이나고 우리는 상으로 받은 커다란 박스에 뭐가 들었는지 서로 이야기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보름달이 환하게 비추고 있어서 우린 후레쉬를 켜지 않고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는 이모집을 향해 걸어갔다.

이모집으로 돌아왔을 때 이모는 벌써 와 있었다. 이모는 공연 중간에 돌아왔다고 하셨다. 우리를 위해 미리 불을 지펴 놓은 것이다. 방안에는 숯을 넣은 화로가 노여 있었다. 우리는 화로를 끼고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화로 위에는 길다란 젓가락에 송편들이 꽂힌 채 노르스름하게 구워지고 있었다. 우리는 손을 화로 가까이에 대고 있었다. 파닥파닥 숯불에 구워지는 송편냄새가 입맛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길다란 젓가락에 꽂힌 노르스름하게 구워진 송편 하나씩을 빼어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웠다.

일년에 두번, 이모가 계신 수산에 가는 일은 참 기다려지는 일이다.

-2013. 12. 추억 속 이모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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