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일 차 모닝페이지]
<am.6:00>
어버이날/5월 8일/카네이션
뿌연 안개가 드리운 듯 먹구름이 가득한 하루다. 먹구름이 데리고 온 빗방울이 마구 쏟아지다 멈추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길을 걸어갔다. 한 손에는 시부모님이 좋아하시는 아귀찜을 포장한 커다란 검은 봉지가 들려있다.
“할머니”
딸아이가 부르는 소리에 시어머니께서 인기척을 하며
“어떵 아시니?”
하신다.
사실 며칠 전에도 다녀갔다. 시아버지의 생신이 있었다. 오늘이 어버이날이라 휴일인 어제 시댁에 다녀왔다. 몇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고 나오는 길 위도 여전히 빗방울이 소란소란 내리고 있었다. 문득 생각 하나가 스친다.
‘보고 싶다.’
보고 싶었다. 나를 낳아주시고 세상에 안겨 주신 분, 탯줄 하나에 두 생명이 호흡하며 열달이라는 시간 동안 나를 만들고 탄생이라는 기쁨을 주신 분, 나의 어머니.
내리는 빗길과 바람에 흩날려 나와 마주하고 서 있다는 생각이 스치고 간다. 수많은 흩어진 과거의 추억들이 함께 쏟아져 내린다. 그리운 감정 속에 멈칫 멈칫 거린다. 비 오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잘 있지? 어머니?’
살다 보니 이제 나도 두 아이의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어버이날을 맞이한다. 아이들이 성년 전에는 양육의 의미가 커서 어버이날의 의미는 희미하게 존재했었다. 이제는 오십이라는 중반의 세월까지 와보니 어버이날의 의미가 다르게 다가온다.
자식을 낳지 않는 시대이다. 자식을 낳아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알게 되는 수많은 값진 감정들이 있다. 나에겐 그 소중한 감정들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 철이 없던 나를 성장시켰고, 인생의 의미에 무게를 더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나의 거울이 되어 나를 성장시키는 동기가 되었고 나를 돌아보게 하는 무기가 되어 주었다.
삶의 방식에 정답은 없다. 세대를 거쳐가며 주고받는 사랑의 힘을 이별이라는 순간이 지나야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이 신의 의도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니 곁에 있을 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함을 일깨워주는 것이 아닐까?
차가운 철판 위에 누워 있던, 입관식이 있던 그날, 나는 그날이 되어서야 그분의 몸을 통해 이 세상에 왔음을 처절하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날의 알아차림에 나는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면서 삶의 의미를 동시에 깨달을 수 있었다.
다시 어버이날은 찾아왔다. 잠시 흩어져버린 어머니의 영혼을 불러 모은다. 보이지 않는 어머니와 따뜻한 포옹을 하며 인사를 한다.
‘감사합니다. 나의 어머니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