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 31 금
“000님!!”
“네!!”
“혼자 오셨어요?”
순간, 심장이 내려앉았다. 혼자 왔냐고? 그럼 혼자 오지, 사지 멀쩡한데 결과 보러 가족과 함께 오는 사람도 있나?
“어제저녁 세 번이나 전화했는데 안 받으시더라구요.”
아뿔싸, 낯선 번호가 세 통이나 찍혀 있더니... 저녁을 준비하며 음악을 틀어놓았던 탓이었다.
“보호자 분과 같이 오라고 연락드렸던 건데...”
내려앉았던 심장이 이번엔 이상하게도 담담했다.
'뭔가 잘못된 게 있긴 있구나'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혈액 수치도 좀 높고 CT에서도 의심스러운 부분이 보이고 복수도 보이고...
대학병원에 가셔서 정밀 검사를 좀 받아보셔야 할 것 같아요.”
“많이 안 좋은가요?‘
“네, 정상인의 수치가 35 미만인데 164이니 많이 높은 편이죠. CT 상 복막 부분이 부어있기도 하구요. 난소암일 수도 있어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아무 증상도 없었는데, 암이란 게 이렇게 갑자기 나타날 수도 있나? 말이 안 된다. 그럴 리가 없다. 의심된다고 했지 확진은 아니지 않은가. 혹시 모르니 더 정밀한 검사를 받아보라는 것이겠지. 사람은 믿고 싶은 대로 생각한다더니 내가 그러고 있었다.
“선생님은 그동안 많은 경우를 보셨을 거잖아요. 이런 경우 암일 확률은 얼마나 되나요?”
물어볼 수 있는 전부였다.
“몰라요. 정밀 검사를 해봐야 아니까 너무 걱정 마시고 자주 가는 대학병원이나 아는 의사 선생님이 있나요? P병원? K병원? 어딜 다니시나요?”
젊은 여의사는 다음 진행을 재촉하고 있지만 난 그저 멍하니 아무 생각도 답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보호자 분과 함께 오라고 연락드렸던 건데... 그럼 가장 가까운 곳이 젤 낫죠. 저도 거기로 가요. B병원에 예약해 볼게요.”
말을 하지 못하고 있는 내가 답답했던지 의사는 직접 전화를 걸어 가장 빠른 날로 예약해달라고 한다. 의사가 직접 하면 예약도 쉽게 되나 보다. ‘2월 3일 월요일 오후 3시 000 교수’라는 메모를 건네주며 진료의뢰서, 혈액검사 결과지, CT 복사본과 판독의의 소견서를 챙겨 가라고 했다.
암이라니 그럴 리가. 생리는 규칙적이었고 생리통도 없었다. 출산과 모유 수유도 했다. 비교적 늦은 나이인 54세에 폐경 하면서 후유증도 거의 없었다. 그 후 건강관리도 열심히 했고 모두들 한두 가지 약을 복용한다는 나이지만 아무 약도 안 먹을 만큼 건강하지 않은가. 그런데 암일지도 모른다니. 아냐. 그럴 리가 없어. 암이라면 아주 미미한 증상이라도 있었어야 하지 않은가.
어느새 발걸음은 집에 도착해 있었다. 당장 뭘 해야 하나? 정신 차리자. 자신을 달랬다. 그래, 월요일 대학병원엘 가야 한다. 약 1시간 걸리지만 안 좋은 결과라도 듣고 나면 직접 운전해 올 자신이 없다. 나이 들고 아프면 배우자밖에 없다더니 딱 맞는 말이다. 남편이 퇴근 전에 월요일 휴가를 신청하게 해야 한다. 할 수 없이 전화를 걸었다.
“대학 병원 가서 정밀 검사를 받아 보라는데...”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암은 아니지?”
“그럴지도 모른대”.
더 이상 남편은 말이 없다.
바로 스마트폰을 켰다.
‘난소암’ 세 글자를 입력하자 주르르 기사들이 서로 자신을 먼저 봐 달라고 경쟁하듯 얼굴을 내밀었다. 온통 무시무시한 말뿐이다. 5년 생존율 30~40%. 열 명 중 6~7명은 5년 내 사망한다는 말이 아닌가. 그것도 3기일 경우이고 4기는 20~30%로 낮아진단다. 그런데 1,2기엔 전혀 증상이 없어 이상을 느끼고 병원을 찾으면 거의가 3기 상태라고. 난소암이 침묵의 살인자로 불리는 이유이고, 부인암 중 최고로 악명 높은 까닭이라고 한다.
난 어디쯤일까? 아주 미세한 생리통 같은 증상이 있으니 최소한 3기라는 얘기다. 더 어마무시한 글도 있었다. 이상을 느껴서 검사해 보면 이미 복수가 차 있고 그 복수에 암세포가 둥둥 떠 다니다 장기 여기저기에 붙어 뿌리를 내린다고. 소름이 돋았다. 내 뱃속에도 복수가 있다고 했다. 검사를 해 보나마나 난소암 3기인가 보다. 더더 무서운 기사도 있었다. 수술과 항암을 해도 80%의 환자가 18개월을 전후로 재발한다는. 그럼 치료는 불가능이라는 말인가? 그럼 죽음?
퇴근 시간이 한참 남았는데 남편이 들어왔다.
“일이 손에 잡혀야지, 얘기하고 와 버렸어.”
얼마나 충격이었으면. 하기야 나라도 일이 손에 잡힐 것 같지 않다.
“아직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어. 정확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아무 생각도 추측도 하지 말자.“
남편은 애써 담담히 말했다. 취침 시간까지 꼭 필요한 말 외에는 두 사람 모두 말이 없다. 무거운 침묵만이 온 집안을 에워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