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명이 짧다’

2020. 2. 1 토

by 전해숙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다시 폰을 열었다.


1기: 한 쪽 또는 양쪽 난소 안에만 종양이 있는 경우.

2기: 난소를 벗어나 골반 내 장기, 즉 자궁이나 나팔관 등으로 전이되었으나 다른 기관으로는 전이되지 않은 상태.

3기: 암이 복강 내, 즉 간, 대장, 소장, 림프절 등에 전이된 경우.

4기: 복강 외 뇌, 폐, 목 주위까지 퍼진 경우.


이젠 4기가 아니기만을 비는 수밖에. 치료법도 무섭다. 기본적으로 난소 난관 자궁을 들어내고 인접한 장기까지 전이되었을 땐 그 장기의 일부나 전부를 절제할 수도 있고 림프절도 제거한다고 한다.

아무리 임무를 다한 난소와 자궁이지만 내 몸의 일부를 잘라낸다니. 그러고도 살 수 있을까.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 하더라도 여생의 건강에 어찌 영향이 없을까. 결국 나의 몸은 그렇게 서서히 무너져 가는가. 어릴 때부터 들었던 그 말, '명이 짧다'던 말이 결국 이거였던가?


엄마는 해마다 정월이면 쌀을 한 되박 싸서 불공을 드리러 가셨고, 스님으로부터 가족의 새해 신수를 받아 오셨다. 그럴 때마다 지금도 똑똑히 기억나는 넋두리를 쏟아냈다.

“우리 00이는 총명하고 착하고 다 좋은데 딱 한 가지, 명이 짧다네, 우짜지?”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 말이 뇌리에 선명히 박혔는지 모르겠다. 여러 번 듣다 보니 세뇌가 된 게 분명하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도 그 말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고 차츰 정말일지도 모른다고 믿게까지 되었다.


삶은 예측하고 원하는 대로 펼쳐지기보다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간 게 더 많았다. 개인 노력에 따라 작은 변화는 있겠지만 인생 큰 줄기는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정해진 게 아닐까? 나이 들면서 점점 그 생각이 짙어졌다. 그래서인지 1분이라도 헛되이 보내면 참 속상했다. 건강에 항상 신경 썼고 운동도 규칙적으로 했고 보험도 때맞춰 가입했다. 아님 사고일까? 젊은 나이에 불치병이라도?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믿어 버렸는지 그런 생각도 했었다.

“그렇게 노력해도 일찍 죽게 된다면 소위 사주팔자라는 게 있다고 믿어도 돼."

두 녀석에게 농담도 했다. 그런데 이제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가? 겨우 64세인데? 결국 이거였던가? 암.


엄마는 58세 나이에 위암으로 떠나셨다. 내 나이 스물 다섯이었다. 마지막까지 극심한 고통에 몸부림치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종류는 다르지만 나도 그런 고통 속에서 죽어간다는 말인가. 생각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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