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통곡의 밤

2020. 3. 20 금

by 전해숙

이런저런 검사에도 정확히 드러나지 않아 결국 복강경으로 조직을 떼어내는 단계까지 오고 말았다. 아침 회진 시간. 의사는 복강경에 걸리는 시간, 어떤 조치가 취해질지,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조직 검사 결과에 따라 모든 게 결정될 거라고 한다.


지루한 기다림 끝, 오후가 되어서야 일정이 시작되었다. 따라오던 남편을 뒤에 남긴채 이동 침대는 육중한 문 저편으로 들어갔다. 아무 말 없이 분주히 움직이는 남녀 젊은이들. 먼저 와 대기 중인 환자. 모든 게 낯설다. 들어가자마자 신분 확인을 했는데 한 가지 조치가 이어질 때마다 확인은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점검을 기다리는 컨베이어 벨트 위의 물품 같다. 천장에서 화사한 벚꽃 사진이 내려다 보고 있었다. 어서 나아서 날 보러 오라고 재촉하는 듯이. 맞아. 조금 있으면 벚꽃이 흐드러지게 필 테지. 벚꽃 구경 갈 수 있을까?


수술실.

역시나 대여섯 명의 젊은 의사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둥글고 큰 천장 조명과 수술대 부근의 온갖 기기들! 잔병치레는 많았어도 수술대 위는 처음이다. 다시 신분 확인과 수술 부위를 확인하고, '마취하겠습니다'란 말을 들은 것 같은데 깊은 잠으로 빠져들었다.


“000 님, 정신 차려 보세요.”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한숨 푹 잘 자고 난 느낌이다. 직감적으로 분명 아까와는 다른 곳이다.

"지금 몇 시예요?"

힘이 없었지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사항이었다.

“3시 조금 지났네요.”

아니, 그럴 리가. 겨우 3시 조금 지났다고? 1시 지나 수술대에 누웠는데 그럼 불과 두 시간 만에 다 끝났다고?


믿기지가 않았다. 갑자기 희망이 샘물 솟듯 솟구쳤다. 암의 진위는 조직을 떼어내 현장에서 바로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럼 암이 아니었던가 보다. 그러니까 그렇게 빨리 종료했겠지. 너무 일찍 병실로 돌아온 날 보며 남편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아, 결국 오진이었구나. 하늘이 도왔구나 했단다. 한 달 동안, '혹과 복수가 보이지 않는다', '오진이다' '잘 모르겠다'를 오락가락 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런데… 희망은 두어 시간 후에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오후 회진 시간에 주치의 표정을 본 순간 무엇이 잘못되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조직을 떼어 보니... 역시 암이었습니다. 난소암 3기. 너무 많이 퍼져 있어 그냥 닫았습니다. 일단 항암을 3차까지 하고, 그다음 수술을 하고, 다시 항암을 하는 쪽으로… 또 임상 참여하는 방법도 있고… 한 달에 900여만 원을 들여서라도 먹으려고 다들 난리인데...”


충격적인 몇 마디와 무슨 말인지 이해도 안 되는 말을 뱉고 의사는 가 버렸다. 두어 시간 만에 서둘러 봉합한 것이 너무 퍼져 수술을 할 수 없어서였다니. 최악의 경우였다. 거대한 망치로 한 방 맞은 듯 멍했다. 많이 퍼져 있으면 수술 먼저 하게 되냐는 질문에 그 반대라고 했던 게 비로소 이해 되었다.


몇 번인가 들었던 어른들의 말이 떠올랐다.

‘글쎄, 막상 열어보니 손을 쓸 수가 없어 도로 덮었대, 쯧쯧.’

놀라고 안타까워하며 주고받던 그 말이 이런 경우였구나. 내가 그런 환자였구나. 이렇게 해서 어려서부터 들었던 명이 짧다는 말이 증명되는구나. 얼마나 살 수 있을까. 난 이제 어떡해야 하나. 자식들에게는 언제 어떻게 말해야 할까. 오빠들에게는 또 어떻게? 두 달 동안 남편과 나의 생활을 송두리째 흔들어 놨던 일의 결과가 결국 이거였던가.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남편도 말이 없다. 침상 커튼을 꼭꼭 닫고서 숨었다. 담배를 피우러 가는지 남편이 나갔다.


복강경 검사는 알던 것과는 달리 삼각형 모양으로 세 군데나 구멍 자국을 남겼다. 오른쪽과 그 반대쪽 그리고 아래쪽. 그래도 배를 가르는 것에 비하면 수술이랄 것도 없다. 통증도 거의 없다. 저녁엔 식사도 정상적으로 나왔다.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를 후유증 관찰을 위해 이틀 후 퇴원하라고 했다.


밖에 나갔던 남편이 들어왔다. 애들한테 얘기를 해야겠단다.

“도저히 혼자 감당할 수가 없어.”

가능하면 얘기하지 말고 하더라도 최대한 늦게 알리겠다는 나의 다짐은 남편의 그 한 마디에 무너지고 말았다. 얼마나 충격이었으면 혼자 감당할 자신이 없다니. 대신 토요일인 내일 저녁 말하라고 절충을 했다. 날 닮아 눈물 많은 아들이 잠 못 잘 것은 뻔하고 다음 날 진료에도 지장을 줄 것 같아서다.(아들은 한의사). 주말 동안 마음을 조금이나마 추스르면 월요일 업무에 지장이 덜할 것이다. 딸에게는 최대한 늦게 알리기로 했다. 결혼 1년째인 딸이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음이 표정에서 읽히는데, 돕지는 못할망정 찬물을 끼얹는 것은 죽기보다 싫다. 더구나 모유 수유 중이다. 모유 분비에도 영향을 줄 수 있고 손자에게 악영향을 끼칠 것이니 할미로서 더더욱 해서는 안 될 짓이다. 잠자코 듣던 남편이 동의해 주었다.


점점 조용해지는 밤의 병실.

절친 H가 전화를 걸어왔다. 많이 기다리다 했음이 분명하다. 폰을 들고 복도 끝으로 나갔다.

“난소암 3기래.”

“뭐?”

그렇게 온갖 검사를 해도 정확히 모르겠다 했으니 어쩐지 해프닝으로 끝날 것이라고 몇 번이나 주문을 걸어주던 친구다.

“세상에 무슨 이런 일이 다 있니? 올바르게 열심히만 살아온 니가 잘못한 게 뭐가 있다고 결국 이렇게 가혹한 일이...”

친구가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였다.

그랬다. 난 그때까지 울음을 꾹꾹 눌러 참고 있던 어린이였다. 마음을 읽어주는 엄마의 한 마디에 울음보가 터져 버린 아이. 더 이상 복도에 있어서는 안 된다. 복도가 울려 병실 사람들에게 다 들릴 것이다. 나의 서러움을 쏟아 놓아도 되는 장소는 아니다. 앞에 보이는 비상구 문 손잡이를 돌려 보았다. 아! 고맙게도 저항 없이 열린다. 야외 정원으로 이어졌다.


폰 저편 이편의 울먹임이 통곡으로 이어졌고 가슴속 저 아래에 쌓여있던 서러움이 분수가 되어 더 큰 통곡으로 분출되고 말았다. 엉엉 소리 내 울었다. 그래, 내가 뭘 잘못 했다는 말인가.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딸이었고, 두 녀석 모두 존경하는 엄마라 했고,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무료 수업도 해 줬고(난 영어 과외 교사), 잘못한 것 아무것도 없는데… 서러움은 푸념이 되어 통곡과 범벅이 되었다.


얼마를 친구와 그렇게 울었을까. 여전히 울먹이는 소리로 친구가 정신이 번쩍 드는 명령을 내렸다.

“너, 이대로 무너지기만 해 봐. 내가 지옥까지 따라가서라도 용서 안 할 거야. 넌 내게 그냥 친구가 아니란 말이야. 내가 기댈 수 있는 큰 느티나무란 말이야. 어떻게든 이겨내. 그래야 나도 살 수 있어.”

아, 내가, 보잘것없는 내가, 언제나 도움만 받던 내가, 친구에겐 큰 느티나무였다니.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가 또 있었구나.


3월이긴 해도 여전히 싸아한 밤공기가 비로소 볼에 와닿았다. 참 이상했다. 그렇게 10분이 넘도록 이어진 통곡의 눈물은 현실을 현실로 받아들이게 했다. 친구의 명령은, 아무리 힘들어도 이겨내야 한다는, 이겨내겠다는 각오를 조금씩 피어오르게 해 주었다.

일생 가장 힘들고 길었던 하루, 2020년 3월 20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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