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에 일기를 올리던 중에
'24년 9월. 처음 결심대로 그동안 써온 병상 일기를 블로그에 매일 한 편씩 올렸습니다. 어느 날 보니 남편이 쓰러졌던 날의 기록이 기다리고 있더군요. 올려야 되나 말아야 되나 며칠을 고민했습니다. 투병 일기에 남편의 쓰러짐이 무슨 상관? 생각이 들어서요. 하지만 일기를 공개하는 이유 중엔 암 환우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는 소망 외에 '내 삶의 흔적 남기기' 한 가지가 더 있었습니다.
잠깐 왔다 가는 인생이지만 흔적마저 없이 사라지는 건 너무 허망했으니까요. 그러자 남편의 쓰러짐도 제 삶의 일부였고 이미 흔적마저 남아 있지 않은 남편의 삶도 일부나마 남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넘겨보니 겨우 일곱 편이 전부였습니다. 기록하는 것도 희망이 남아 있을 때에나 가능했음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그날 막혔던 남편의 뇌혈관은 바로 뚫렸고 곧 의식도 돌아와 모두 희망에 부풀었지요. 하지만 심장에 있는 제법 큰 혈전이 근본 문제였습니다. 뇌를 막았던 것도 그 혈전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없애지 않으면 언제 어느 혈관을 막아 다시 응급 상황이 될지 모른다더군요. 혈전용해제가 소량으로 조심스럽게 투여되었지만 이미 손상된 뇌혈관은 버티지 못하고 출혈을... 불행히도 한 번 손상된 뇌신경은 회복이 안 된답니다. 새벽에 병원에서 가족을 불러 모았고 남은 생을 식물 상태로 누워 지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남아있는 선택은 연명 치료 여부밖에 없더군요.
연명 치료? 화장실 다니는 것도, 밥을 떠먹는 것도, 가족을 알아보는 것도 안 되는 삶을 이어간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저 역시 암 환자가 되고 바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했지만 막상 가족의 일이 되자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가족 중 누군가는 최종 결단을 내리는 총대를 메야합니다. 말이 좋아 연명 치료 안 하는 거지 극단적으로 말하면 '굶겨서 임종에 이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의학 공부를 한 아들은 단호했습니다. 의미 없는 연명임을. 뇌신경이 죽은 몸은 필라멘트 끊어진 전구와 같다고.
저의 결심을 굳혀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암환자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생존율 20%. 언제 재발할지 모른다.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도 모른다. 아빠는 식물 상태로 누워 있는데 엄마가 먼저 떠나기라도 하면 자식들이 어떻게 살아갈까. 그것만은 안 된다. 꼭 선택하라면 내 손으로 남편을 먼저 보내는 것이 자식을 위하는 일이다.'
결국 남편은 요양병원으로 옮겨졌고 그날부터는 저도 식물 인간이 되었습니다. 이별 시작임을, 어떻게 해도 되돌릴 수 없음을 안 순간부터 숨 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요양 병원 입구에서 앰뷸런스에 실려 온 남편을 맞았을 때 무너져 터뜨렸던 폭풍 오열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은 어찌 알 수 있을까요?
먼저 들어와 있던 세 분 중 한 명은 호흡기도 필요 없이 자가 호흡으로 6년째 누워 있다고 하더군요. 코로나 감염 예방을 위해 그런 상황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가끔씩 괴성을 지르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오던 가족도 어느 순간부터 오지 않고 전화로 상태 확인만 한다더군요.
'그래, 저건 아니지. 저렇게 되어선 안 되지.'
그 순간 스며들던 위로 또한, 경험자가 아니면 어찌 알겠습니까?
그날밤은 심한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마누라가 돼 가지고 어떻게든 살려 달라고 마지막까지 매달렸어야지,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이러고도 마누라라고? 천벌이 있다면 나에게 내려질 거야.'
혼란과 두려움에 잠들 수가 없었어요. 그 죄책감은 지금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제게 닥친다면 당연히 연명 치료 말라 하고 있으니, 혼란의 연속입니다.
남편은 결국 요양병원으로 옮겨진 지 열흘 만인 '23년 7월 28일 영영 떠나고 말았습니다. 40년을 함께 한 사람이, 70년도 못 채우고, 20일 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다니!! 기가 막히고 억장이 무너졌지만 꿈이 아닌 현실이었습니다.
결국 제 인생 가장 큰 슬픔과 고통을 받아들이게 해 준 것이 '암'이더군요. '고약하면서도 고마운 친구.'라는 말 그대로였습니다. 일곱 편의 남편 기록을 올린 지난 한 주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생생히 되살아나는 기억 속에 눈물을 억제할 수 없었지만, 이 또한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치르는 의식이라 생각합니다.
('25. 8. 29 금-- 2년을 돌아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