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첫 기일을 보내고
‘쏜살같은’이란 말로는 부족하다. ‘빛의 속도로 스치는’이라면 모를까. 어제 일 같은데 그새 첫 기일이라니.
'23년 7월 28일. 시아버님 시숙에 이어 심 뇌혈관 질환이라는 가족력 앞에 남편은 갑자기 무릎을 꿇고 말았다. 백세 시대라는데 칠십 년도 못 채운, 겨우 예순아홉의 나이였다. 사십 년을 함께 산 남편이 이십일 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것은 꿈이지 현실일 수 없었다. 퇴근 시간이면 현관문으로 들어올 것만 같고 옷장 문을 열면 남편이 거기 있었다. 식탁 맞은편에도 소파에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아침에 눈 뜨기 싫다는 드라마 주인공의 대사가 처음으로 와닿았다. 잠자리에 들며 다음 날 깨지 않기를 빌었다. 숨소리만이 온 집안을 채우고 있는 아침. ‘이게 뭐지? 인생이란 게 이런 거였어? 뭘 위해 살았고 왜 태어났던 거야?’ 힘이라곤 모조리 빠져버린 몸을 겨우 붙잡고 멍하니 앉아 있기 일쑤였다. 견딜 수 없는 허무감이 일상을 흔들었다.
외출 후 귀가했을 때의 뚫린 가슴도 그 못지않게 힘들었다.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돌아간다는 것. 그 사소한 일이 그토록 큰 의미를 지닐 줄이야. 친구들이 의도적으로 마련한 여행에서 돌아왔던 때가 잊히지 않는다. 버스는 집에 가까워지는데 마음속 구멍은 점점 커져만 갔다. 도어 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을 열자 맞아주는 건 침묵의 공기뿐. 낯선 곳이다. 생전에도 항상 그가 맞아줬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그 이질감이란.
수도 없이 읽고 들었던 ‘부질없음’이란 단어가 뼛속까지 파고들며 실체를 띠기 시작했다. 갑자기 떠난 연인이나 가족을 따라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의 심정을 비로소 알 것 같았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시도 때도 없이 파고드는 질문이 머리를 흔들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같은 답 하나가 남았다. ‘내가 겪은 아픔을 내 자식들이 똑같이 겪게 할 수는 없어. 결코, 네버, 절대로.’
친정 엄마는 위암으로 외동딸 결혼도 못 본채 58세에 떠났다. 내 나이 겨우 스물다섯이었다. 세상 어디에도 발 디딜 곳이 없이 허공에 떠다니는, 딱 그 느낌으로 몇 년을 방황했다. 그 아픔과 슬픔을, 평생 붙들고 살아야 하는 그리움을 나의 자식들에게 줄 수는 없다.
부모는 자식의 등대다. 망망대해에서 표류해도 어딘가에 부모 등대가 불 밝힌 채 기다리고 있음을 아는 자식은 절대로 절망하지 않는다. 이제 혼자라고 해서 그 불빛을 꺼뜨려서는 안 된다. 태풍이 닥쳤다고 위치를 옮겨서도 안 된다. 그곳에 가면 분명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 그것이 내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빛이다. 증명이라도 하듯, 전화상의 목소리가 가라앉아도, 힘이 없어도 금방 근심 모드로 변하는 그들이 아닌가. 내가 안정을 찾지 못하면, 등댓불이 꺼질락 말락 하면, 그들이 자기 삶에 몰두할 수가 없겠구나. 내가 살아야 할 의미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어느 날 그렇게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남편의 양말 한 짝도 치우지 못한 사이 6개월이 지나가고 연말이 지나고 있었다. 친구가 언제까지 끌어안고 있을 거냐고, 음력 설이 오기 전에 정리하고 새 마음으로 새해를 맞으라고 재촉했다.
남편의 물건들을 도저히 분리수거장 쓰레기로 내다 버릴 수는 없었다. 성당과 교회 몇 곳에 물품 기증을 노크했지만, 처리 곤란이라며 미안해했다. 다행히 인터넷에서 ‘굿윌스토어’라는 사회적 기업을 발견했다. 기증 물품을 손질해 저가로 판매, 그 수익금으로 장애인의 자립을 돕는다고 한다. 아직 사용 가능한 물품에 정성을 보태 몇 상자를 보냈다. 누군가에게로 가서 끝까지 잘 사용되기를 기도하며. 지금 돌아봐도 가장 잘한 일이다.
지금도 문득문득 찾아드는 외로움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럴 때마다 채찍이 되어준 것은 섬세한 성격의 아들이 던지는 한마디였다.
“엄마, 아빠 생각하며 슬픔에 젖을 여유가 없어요. 엄마 인생도 겨우 13년밖에 안 남았어요.”
헉, 13년이라니. 그 사이 또 1년이 줄어버렸다. 나의 희망 나이는 팔십이라고 입버릇처럼 뇌던 어미의 말을 아들이 절묘한 때에 이용하고 있었다. 스스로 밥 못 떠먹고 혼자서 화장실 가지 못하는 삶은 의미가 없다. 누군가에게 짐이 될 것이 분명하기에 대충 여든이 그 나이가 아닐까 했다. 그런데 남은 시간이 너무 짧다.
2022년, 수학계의 노벨상이라는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교수는 카이스트 졸업식에서 학자답게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태어나 80세까지 산다면 약 3만 일을 산다고. 난 이미 2만 4천 일을 살았고 대략 6천 일밖에 남지 않았다.
어느 날 통장을 확인하다 울컥했다. 아들이 용돈을 자동 이체하며 붙인 문구가 많은 얘기를 한다. ‘13년 정기 용돈.’이라고 찍혔다. 그 기간마저 다 못 채울지, 너무 오래 살아서 짐이 될지는 신만이 안다. 어쨌든 슬픔과 실의에 빠지지 말고 이 돈 쓰며 목표 나이까지 활기차게 살라는 암묵적 배려와 요구가 담겼다. 어느새 아들이 나의 등대가 된 셈이다.
겨우 십여 년 남았을지도 모를 세월을 허투루 쓸 수는 없다. 그건 나를 이 세상에 보낸 신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분명 나만이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역할이 있다. 이젠 그것이 보인다. 동시에 자식이라는 또 다른 등대가 밝히고 있는 불빛을 외면하는 못난 어미가 될 수는 없다. 아직 하고 싶은 것, 가보고 싶은 곳도 많지 않은가. 실현하지 못한 버킷리스트도 있다.
이 세상 소풍이 끝나는 날까지 자식들에게 흔들림 없는 등대가 되기. 나의 인생을 최대한 사랑하기. 내게 주어진 마지막 두 가지 임무다. 충실한 이행을 위해 오늘도 1분 1초를 아껴 쓴다. 남편도 응원해 주리라 믿으며.
(시립도서관이 시행한 에세이 공모전에서 우수상에 선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