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글제: 고향

by 전해숙

올해 여든인 큰오빠가 전화를 걸어오셨다. 고향 집을 처분했다고 한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빈 채로 터만 지키고 있던 집이다. 몇 년 전 갔을 때는 내려앉기 직전이라 마음이 아팠다. 큰오빠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아파트 꼭대기에 사신다. 본인은 운동 삼아 좋다고 하지만 노구로 계단을 오르내리는 걸 보는 동생들은 내내 신경이 쓰였다. 더 늦기 전에 고향 집을 처분해 엘리베이터 있는 곳으로 이사하라고 몇 번을 권해도 듣지 않았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집이고 우리 오 남매가 나고 자란 곳이니 쉽게 처분할 수 없다며 매번 일축하셨다. 덕분에 가끔 고향엘 가면 부모님은 안 계셔도 집을 둘러보며 허전함을 달랠 수 있었다.


인간의 마음이란 게 참 묘하다. 어서 팔아서 이사하라던 때는 언제고 처분했다는 소식에 가슴 한구석이 뻥 뚫려버린 것 같다. 부모님도 집도 없는 고향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근처에 있던 부모님 산소마저 이장했으니 더 이상 찾아갈 고향이 없다는 생각에 빈 가슴만이 남았다.


올해도 6월이 되니 어김없이 뻐꾸기 소리가 들린다. 다른 새와 달리 이상스레 뻐꾸기 소리는 향수를 자아낸다. 고향 뒷산에서 들려오던 그 소리다. 이 산에서 뻐꾹 하면 화답하듯 저 산에서 뻐꾹 하는 것까지 똑같다.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니 언제든 오라고 손짓하고 있다.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고향이 다시 살아난다.


쩔걱! 쩔걱쩔걱! 골목 끝에서 시작된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일곱 살 계집아이는 얼른 마루 밑을 훑었다. 저~기 안쪽 구석에 쇳조각 하나가 보였다. 제힘으로 꺼내긴 턱도 없다. 긴 막대기를 찾아와 기어코 꺼내 들고 골목길을 냅다 달렸다. 아저씨는 어른 손바닥만 한 쇠도끼를 엿판에 대고 큰 가위로 툭툭 쳐서 엿 조각과 바꿔주었다. 오빠와 남동생이 보기 전에 얼른 먹어야 한다. 이빨에 쩍쩍 붙어 떨어지지도 않는 그 달콤한 엿을 계집애는 아까워하며 삼키기에 바빴다.


간밤에 비가 내렸다. 아이는 일어나자마자 뒤뜰로 갔다. 역시나! 감나무 아래에 베이지색 종 모양 꽃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다. 치마 앞자락을 모아 쥐고 감꽃에 상처라도 날라 조심조심 주워 담았다. 엄마더러 바늘에 실을 꿰어 달래서 하나씩 끼웠다. 예쁜 감꽃 목걸이가 만들어졌다. 동갑내기 영자에게 자랑하러 춤추듯 뛰어갔다. 그 집에는 감나무가 없다. 종일 목에서 일렁거렸던 감꽃 목걸이를 아이는 고이 벽에 걸어놓고 잠이 들었다.


아버지와 삼촌이 벼 타작을 하는 날이다. 볏단은 미리 날라와 마당 한쪽에 쌓아져 있다. 커다란 멍석을 깔고 한쪽 끝에 나락 훑는 탈곡기를 가져다 놓으면 본격적인 타작이 시작된다. 두 분이 나란히 서서 한쪽 다리로 몸을 지탱하고 다른 다리는 열심히 발판을 밟는다. 웽웽 요란한 소리가 온 집안을 울린다. 두 팔은 볏단을 요리조리 돌려 가며 벼를 훑어 내린다. 의좋은 형제는 손발이 척척 잘 맞다. 휙휙 뒤로 던져지는 볏짚들! 일 년에 한 번 갖고 놀 수 있는 최고의 장난감이다. 영자와 계집아이는 그 볏짚들로 집을 지었다. 짚으로 묶은 밑동과 알맹이가 없어진 줄기 부분은 굵기가 다르다. 정 사각형 집을 무너지지 않게 짓기 위해선 밑동 부분을 교차로 잘 포개야 한다. 키 높이만 한 집이 지어지면 둘은 그 안에 나란히 드러누웠다. 파란 하늘과 가을 햇살이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을 앞엔 제법 큰 저수지가 있다. 유난히 가뭄이 심했던 해였다. 둑 아래 논들이 물 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가장자리까지 차 있던 물이 조금씩 줄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장난꾸러기 머슴애들은 참지 못했다. 푹푹 빠지는 진흙도 아랑곳하지 않고 경쟁하듯 저수지 안으로 들어갔다. 다음날은 계집애들도 합류했다. 뒷집 총각이 미꾸라지를 제법 많이 잡았다는 소식을 엄마가 저녁 밥상에서 전했다. 다음날은 어른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물은 퇴각 군인들처럼 둑 쪽으로 뒷걸음치고 온 마을 사람들은 점령군이 되어갔다. 온갖 도구들이 등장했다. 뜰채 호미 삽 막대기 등 크기와 종류도 다양했다. 미꾸라지와 이름 모를 고기들이 전리품이 되어 주전자와 양동이에 담겼다. 온몸이 진흙투성이가 되어도 모두가 달려들던 그곳은 즐겁고 신나는 전쟁터였다. 평생 어디서도 볼 수 없을 진풍경이었다.


중학교는 저수지 옆길을 따라 20분 걸어가야 하는 곳이다. 이맘때면 올망졸망 조그만 꽃들이 수면의 한구석을 노랗게 뒤덮었다. 둑을 넘어 펼쳐지는 들판은 또 다른 아름다움이었다. 여름엔 짙푸르게 자란 벼들이 바람결 따라 녹색 춤을 추었다. 가을이 되면 황금빛 파도가 색의 잔치를 펼쳤다. 계집애는 어느새 소녀가 되어 있었다. 또래와 어울리기보다 혼자서 큰길 대신 논둑길을 사랑했다. 생각과 상상을 키우며 사춘기마저 아름답게 보냈다.


모두 경남 창녕군 대합면 십이리 고향 마을 추억들이다. 돌아보면 그때가 내 인생의 황금기였다. 도시 고등학교는 시골 전교 1등이 우물 안 개구리임을 냉혹하게 일깨워 주었다. 두고 보라지. 공부에만 매달렸다. 결과로 국립대 합격증을 받았다. 기쁨은 잠시뿐. 입학식에 곤색 정장 치마와 재킷을 입고 오라는 안내문을 받고부터는 우울해졌다. 지독한 가난은 교복 한 벌 맞출 여유를 주지 않았다. 친구들은 시내 양장점에서 치수를 재고 옷을 맞췄다. 합격 선물로 그 정도야 당연시하는 듯했다. 형편은 안 되고 마음은 찢어질 게 분명한 부모님께 차마 얘기할 수 없었다. 함께 자취하던 오빠가 시장에서 색깔만 맞춰 사 입자고 대안을 냈다.


맞춤 정장에 구두까지 색깔 맞춰 신은 새내기들은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 그들 사이에서 시골뜨기 여대생은 출발부터 주눅이 들었다. 아래위 천도 다르고 어정쩡한 길이의 치마에, 비슷하게 색만 맞춘 카디건은 영락없이 아줌마 패션이었다. 그들은 스튜어디스였고 난 시장 보러 나온 아낙네였다. 당시는 신입생들이 국립대 배지를 자랑스럽게 달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나의 후줄근한 옷은 그런 배지의 위력마저 감춰 버렸다. 뒤처지지 않으려 열심히 뛰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저만치 앞서가 있는 주자는 한숨 돌리며 미소 짓고 있는데, 마실 물 한 모금도 없어 헉헉대는 선수가 나였다. 이질감이 주는 불편함!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지만, 그것은 결혼할 때까지 쭉 나를 따라다녔다.


그럴 때마다 위로와 힘을 준 것은 고향이었다. 그곳엔 불편과 불만, 부러움도 경계심도 없었다. 오히려 나는 도시 여자들에겐 없을 것 같은 보물을 품은 공주였다. 허약하다고 나만 먹으라며, 키우던 닭을 고아 주시던 부모님이 계셨다. 학교 뒷산 소나무도 저수지 꽃도 언제나 그 자리에서 반가이 맞아 주고 울적했던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사방엔 오로지 평온만이 가득했다. 뜨끈한 온돌방에서 부모님과 하룻밤 자고 나면 몸과 마음에 에너지가 생겼다. 고용량 영양제를 먹은 듯했다.


취직과 결혼을 거치면서 고향은 점점 더 가기 힘든 곳이 되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 떠난 적은 한 번도 없다. 이젠 집마저 없어졌으니 나를 반겨줄 고향이 없다는 생각에 허전함을 금할 수 없었지만 착각이었다. 해마다 뻐꾸기는 나를 부를 것이고 매번 나는 고향으로 달려갈 것이다. 골목 가득 채우던 바람결과 아이들 웃음소리까지도 생생한데 사라질 수가 없다. 현실이 힘들수록 더 그리울 곳이다. 언제 어디서 떠 올려도 엄마 품처럼 포근하고 나만 먹을 수 있는 마음 영양제가 무한으로 있는 곳이다. 나의 고향 그곳은 영원히 그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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