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장 작성

2025. 12. 31

by 전해숙

유언장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썼다’가 아니라 ‘쓰기 시작했다’ 함은 완성형이 아니라 진행형이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암 카페에서 들은 조언 중엔 컨디션 좋을 때, 정신 맑을 때 유언장을 작성해 두라는 것도 있었습니다. 처음엔 왜 이리 앞서가는 거야?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일리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죽음에 임박하면 체력도 마음 여유도 없을 테니까요. 그러면서도 정작 실행은 차일피일 미뤄졌습니다. 죽음, 유언장 등의 말이 그리 반가운 단어는 아니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최근 자극이 된 일이 생겼습니다. 어느 날 들려준 친구의 얘기입니다. 10년도 더 전에 업무상 잠깐 연락처를 주고받은 분의 부고를 받았다는군요. 부조나 조문을 할 관계는 아니어서 모른 척하려니 고향 친구 오빠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고 합니다. 고인의 인간관계를 속속들이 알 수 없는 자식들이 폰 연락처를 보고 일괄 부고를 보낸 듯하다는 결론을 내리더군요.


문득 그와 대조되는 경우가 떠올랐습니다. 예전에 본 드라마 얘기입니다. 겨우 39세에 암으로 시한부 삶을 살게 된 여주인공은 차근차근 ‘죽음 준비’를 하더군요. 그중 하나가 부고 리스트 작성이었습니다. 기준은 ‘밥 한 끼 먹자는 연락을 해오면 반가운 마음으로 만나고 싶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땐 제가 암 경험자가 되기 전이었는데 자신의 죽음을 직접 하나씩 준비해 나가는 설정이 충격이면서도 감동이었습니다. 주인공은 부고 리스트를 절친 두 명에게 건넸습니다. 절친들은 당사자 몰래 리스트 사람들에게 연락하여 마지막 이별 만남을 주선합니다. 인연이 닿았던 모든 분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장면이 진한 감동으로 남은 드라마입니다.


바로 지면을 찾았습니다. 맑은 정신으로, 평온한 마음으로 써 내려갈 수 있는 지금 상태가 비로소 감사로 와닿더군요. 마지막 순간 옆에 있을 사람은 누가 됐든 참 고마울 것 같습니다. 자식들일지 친구일지 호스피스 간호사일지 알 수 없지만 옆에 있어 준다는 것만으로도 무한감사를 드렸습니다.


가장 먼저 부고 리스트를 만들었습니다. 친인척, 친구들, 모임 멤버들, 대개 비슷하겠지만 저의 평생 일, 과외에서 만난 학생들을 빼놓을 수가 없더군요. 200명이 넘는 학생들 중 잊을 수 없는 몇 명이 추가되었습니다. 놀랍게도 그 옛날 연락처가 그대로인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가장 인상에 남는 학생(?)은 군 복무 중 스승의 날에 전화를 걸어온 학생이었어요. ‘가장 생각나는 스승에게 전화를 걸어라’는 상관의 명령에 따라 군 내 공중전화라고 했습니다. 어찌나 고맙던지요. 다시 돌아봐도 그만큼 값진 제 인생 찬사는 없겠습니다. 안타깝게도 이제 40대 가장이 된 그 녀석의 연락처는 011-로 시작되는 번호만 남아 있네요. 최대한 찾아보고 고마움을 꼭 전해달라는 부탁을 남겼습니다.


빈소에 팝페라 가수 임형주가 부른 ‘천 개의 바람이 되어’를 틀어달라는 부탁도 넣었습니다. 빈소에 웬 음악?할 수도 있지만 가사 구절구절이 그대로 제 마음이니까요.

부모님 사후, 재산 분배 싸움이 벌어지는 경우를 참 많이 봤기에 무조건 똑같이 나눌 것을 명령(?) 했습니다. 다행히(?) 기껏해야 집 한 채일 테니 다툼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또한 남매 사이에도 돈거래는 줄 것과 받을 것을 확실히 하라고 했습니다. 물론, 가능하면 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도 했지요. “돈은 발언을 한다”라는 말도 있으니까요.


비혼주의를 고집하는 아들에겐 50세 전에 동거할 여자 찾기를 특별히 부탁했습니다. 노후에 혼자 쓸쓸히 늙어가는 아들 모습은 하늘에서도 보기 싫거든요. 해마다 다시 펼쳤을 때 가장 먼저 삭제할 조항이 되기를 빌어봅니다.

딸과 사위에게 한 특별 부탁도 있습니다. 생각차이도 있을 수 있고 꼰대의 잔소리로 여길 지 모르지만 어미의 진심이니까요. 읽어 주시는 분 중엔 젊은 여성분들이 많아 참고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부간에 가장 큰 위기는 배우자의 일탈이라 생각합니다. 맞벌이 사회니, 남녀 불문 배우자가 아닌 이성에게 끌릴 기회와 유혹은 예전보다 많아졌습니다. 이성과 감정은 따로 놀 수도 있기에 그 자체를 어찌 부인하겠나요? 하지만 아무리 강한 불꽃 감정도 유효기간이 길어야 2년이랍니다. 그 감정을 위해 치러야 할 대가는 너무 큽니다. 자식이 있다면 그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명심 또 명심해야 합니다. 말 그대로 한 때의 ‘바람’입니다. 바람은 한곳에 영원히 머물지 않습니다. 지나갑니다. 혹시라도 배우자의 일탈을 눈치챈다면 모른 척하십시오. ‘나도 그럴 수도 있다’ 생각하면 참지 못할 일도 아닙니다. 가정의 위기를 잘 극복하는 것, 그것은 결혼과 동시에 주어지는 책임이자 의무입니다.


이제 해마다 할 일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12월 31일이면 유언장을 다시 열어볼 것입니다. 삭제하기도 하고 새로 첨가도 하겠지요. 그러고 보니 유언장을 미리 쓴다는 것은 남은 생을 더 가치있고 보람차게 살겠다는 다짐이 되기도 하는군요. 다음날 새해 첫날을 조금은 다른 마음으로 맞을 것 같으니까요.

호스피스 병동에서 많은 임종을 지켜본 간호사가 그랬답니다. 죽음을 오래 준비한 사람일수록 가장 평온한 미소로 맞이했다고요. 그 말이 이젠 이해 되고 고개도 끄덕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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