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을 닮은 여자, 꿀벌에 쏘인 남자

나와 카페 주인과 벌

by 파랑나비


episode1 . 그 여자

꿀벌들이 제우스신에게 아주 무서운 독침을 달라고 했다. 그러자 제우스신은 그들의 소원대로 아주 무서운 독침을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 독침을 사용하는 순간 너희들도 같이 죽게 될 것이다.



커피 방앗간은 지난봄, 집 앞 사거리 큰 길가에 오픈한 아담한 카페다.

주요 메뉴는 커피와 음료 간단한 샌드위치.


카페 주인은 하얀 얼굴과 적당한 키에 날씬한 체형을 가진 미소가 고운 여자이다.

타고난 천성이 부지런한 것인지, 피치 못할 절박한 사정이 있는 것인지 그녀는 쉬는 날 없이

정확하게 아침 8시 30분에 카페를 오픈하고 밤 9시면 문을 닫았다.

영락없이 이 꽃 저 꽃을 찾아 꿀을 모으는 부지런한 꿀벌을 꼭 닮았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 가격은 천 원. 부드러운 버터크림이 양쪽에 발라진 폭신하고 샤르르 녹는 식감이 기분 좋은 대만식 샌드위치는 천오백 원이다.


집에서 약 7분 거리 착한 가격과 심플한 실내 인테리어까지 딱 내 취향이었다. 입소문이 난 건지 오전 9시가 지나면 샌드위치는 품절되어 내 몫은 없는 날이 점점 늘어났다.


모든 조건이 완벽해 나는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 듯 두 달 넘게 거의 매일 카페를 방문했다. 카페 방문 횟수와 비례해 친밀함도 자연스럽게 쌓여 일상의 소소한 대화는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평범한 일상이 반복되던 5월의 어느 날, 그날도 카페에 들렀다가 신기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그녀가 파리채를 열심히 휘두르고 있었다. 마치 리듬체조 선수가 부드럽게 리본을 휘두르는 것처럼.


그랬다 그녀는 카페에 들어온 꿀벌 한 마리를 쫓고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벌을 쫓는 그녀를 보며 그냥 잡으면 될 것을 왜 저러지?


”에이 좋은 일 하는 이쁜 녀석 이잖아요 살려보내 줘야죠”. 환하게 웃으며 그녀가 계속 우아한 파리채 춤 동작을 선보인다. 몇 분간의 실랑이 끝에 기어이 꿀벌을 살려서 내보내는 그녀.


벌이 창문 밖으로 “윙윙” 하고 날아간 그 순간, 갑자기 내 심장 한켠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마치 호박이 넝쿨채 퉁 하고 땅에 떨어진 것처럼. 명색이 수년간 불자 생활을 하고 있는 나보다 자비한 모습이라니.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분 좋은 설렘이 시작되었다.


사장님! 샌드위치 남았나요?

벌을 닮아 부지런한 그녀와 달달한 샌드위치, 그리고 향긋한 커피 향에 취할 생각에 아침 출근길 내 몸과 마음이 덩달아 달뜨다.





episode 2. 그 남자


아나필락시스는 특정 물질에 대해 몸에서 과민반응을 일으키는 것을 의미.

특정 물질을 극소량만 접촉하더라도 전신에 증상이 나타나는 심각한 알레르기 반응입니다. 진단과 치료가 늦어지면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10년 가까이 배드민턴을 쳐댔더니 어깨가 그만 하라고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다. 팔이 잘 돌아가지 않아 정형외과를 방문했더니 회전근개파열을 진단했다. 세월 앞에 어쩔 수 없이 우울해진다.

유명한 정형외과를 찾아 물리치료와 도수치료를 받고 실력 있는 한의원을 찾아 침과 뜸을 뜨고 한 달 넘게 집중 치료를 해도 손상된 어깨는 쉬이 나아지질 않았다.

옆으로 누워 밤잠을 이룰 수 없을 만큼 통증은 더 심해졌다. 그날도 집 근처 한의원에 누워 어깨에 부황을 뜨고 있는데 옆 침대에 누운 어르신께서 “ 어깨나 허리 아픈 데는 봉침이 최고요 한번 맞아봐요” 하신다.


태생이 호기심 많고 팔랑귀인 나는 그 말에 홀랑 넘어가 속는 셈 치고 한번 맞아 봤다.

웬걸 분명 효과가 있네. 세 번 정도 봉침 시술을 받고 상태가 호전되어 오래간만에 꿀잠을 잘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제법 비싼 시술비였다. 무슨 좋은 수가 없을까? 잔머리가 초고속 LTE급으로 번개처럼 돌아갔다.


그것은 바로 내가 봉침을 직접 놓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 발상이 얼마나 위험한 것이었는지를 깨닫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폭풍 검색을 한 후 생벌 1통을 샀다. 주문한 벌통에 꿀벌이 약 100마리 정도 들어있었다.


벌통을 살짝만 열고 핀셋으로 한 마리를 잡아 올려 통증 부위에 벌의 엉덩이를 대주면 나를 쏘고 벌은 장렬하게 전사한다.



벌침을 맞는 순간 따끔함과 동시에 그 부위가 붓고 홍조를 뛰고 가렵고 후끈후끈한 열감이 확 퍼지면서 짜릿하면서 시원하기도 한, 한마디로 표현 불가한 복잡하고 묘한 느낌이다.

이런 식으로 매일 10마리씩, 한 열흘 동안 본의 아니게 살생을 하면서 어깨에 봉침을 꽂자 나를 쏘고 죽어가는 벌들과는 다르게 내 어깨는 밤새 이슬 먹고 아침에 활짝 피는 나팔꽃 마냥 생생해졌다.


참사가 발생한 날은 미니 벌통에 100마리 벌이 거의 동날 즈음이었다. 봉침 효과에 확신이 들자 이번 기회에 수년간 날 괴롭혀 온 허리디스크를 뿌리 뽑자 굳은 결심을 하고 딸 에게 허리에 20방을 놔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지나친 욕심이 화를 불렀다. 침 맞은 부위가 퉁퉁 부으면서 새 빨게 지고 온몸이 뻣뻣해졌다.


나란 인간, 119를 불러 병원엘 갈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 순간에도 미련하게 민간요법에서 좋다고 한 식초를 바르고 있었다. 온 집안에 시큼한 냄새가 진동한다. 심한 두통과 호흡곤란이 오기 시작했다.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지면서 그대로 의식을 잃고 말았다.


눈을 떠보니 집 근처 오거리 종합병원이었다. ”생 봉침 함부로 맞다가 부작용으로 사망한 사례도 있어요. “

의사는 지극히 사무적인 말투로 못마땅하게 날 째려보며 말했다. 젠틀하게 말하는데 듣고 있는 나는 왜 이리 불편한 건지. 항히스타민제를 맞고 처방전을 받아 도망치듯 잽싸게 병원을 빠져나왔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그날 조금만 늦었어도 극락세계에 가 미륵불을 만났거나, 검은 갓을 쓴 남자 두 분 손을 잡고 삼도천을 건널뻔했다.


그 사건 이후 나의 꿀벌 죽이기 만행은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약이 독이 될 수는 있어도 독은 독만 되더라는 것, 그리고 독은 독으로 치료가 불가하다는 걸 깨달았다.

(적어도 내가 겪어본 봉침 임상실험에 있어서)

여러분 진료는 의사에게 치료도 의사에게 웬만하면 지키고 사시게요^^.


벌에 쏘인 댕댕이 (아프겠다ㅠㅠ)



유년시절 양봉을 한 부모님 덕분에 날아다니는 꿀벌은 어디서 만나도 두렵기보다는 오래 만난 옛 친구를 본 듯 정겹다.

한 마리의 꿀벌은 1킬로의 꿀을 만들기 위해 백만 번 꽃을 찾아다녀야 하고 45만 킬로 미터를 날아야 하며 지구의 적도를 11 한번 돌아야 한다. 쉼 없이 꿀을 모으고 여왕에게 헌신하며 일평생 부지런히 살다가 가는 꿀벌의 일생. 삶의 지혜를 배우는데 모자람이 없는 참 좋은 스승이다.

초가을, 텃밭에 울타리를 타고 넘어온 둥근 호박이 탐스럽다. 노란 호박꽃 속으로 꿀벌 두 마리가 들어간다. 유치한 장난 끼가 발동한 나는 호박꽃을 오므려 입구를 닫아버린다. 꽃잎 속 날갯짓이 진동을 일으키고 그 붕붕 거림이 기분 좋게 손마디를 타고 오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개진상과 닭 민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