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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진상과 닭 민폐

참을수 없는 아파트 주변 소음들

by 파랑나비

작년 이맘때 평수를 넓혀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높은 터에 자리한 남향 아파트라 앞 뒤로 걸리는 것 없이 멀리 보이는 초록의 논 뷰 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지저귀는 새소리에 눈을 뜨고 내 목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따뜻한 햇빛과 달콤 쌉싸름한 향긋한 커피에 취해 날마다 행복했다.

평온하던 일상이 깨 진건 아파트 후문에 인접한 단독주택에 개 한 마리가 들어오면서부터 였다.

목넘이 마을의 개(황순원 님의 소설)

신 둥은 강인한 삶에의 의지를 보여준 개 이름


주택 호위무사로 쓰려고 데려왔는지 이쁜 여우를 닮은 하얀 개 한 마리가

목청 좋게 시도 때도 없이 짖어 대는 통에 창문을 닫지 않고는 잠을 이룰 수가 없는 날이 많아졌다.

이쁜 외모와 다르게 앙칼진 이 개 때문에 내 인생 최대의 위기가 시작된 것이다.


우렁찬 사자후에 시달릴 때마다 성대 수술을 권해볼까? 시간정지를 시키는 초능력을 발휘해 얼음땡 된 이놈을 어디에 숨길까? 음식에 수면제를 타서 재울까? 온갖 쌈박한 궁리를 해보며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지만 개진상을 치워버릴 생각 만으로도 첫사랑에 눈뜬 소녀처럼 온몸이 짜릿해지곤 했다.

더위가 절정으로 치닫던 중복 즈음, 설핏 잠이든 것 같은데 천지를 울리는 쩌렁쩌렁한 개진상의 짖는 소리에 깨어나 비몽사몽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30분. 잠들 때면 항상 문단속을 하고 자는데 이날은 피곤했는지 실수로 그냥 잠이 들었나 보다.

광야 (이육사 님의 시)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그런데 그날은 평소와는 다른 지금까지 듣지 못했던 한옥타브 높은 소프라노 닭울음소리가 함께 들려오는 거다

개진상이 먼저 “멍멍멍” 하면 잠시 후 닭 민폐가 “꼬끼오” 하고 운다.


아니 뭔 지들이 브레멘 음악대 리드보컬도 아니고 박자와 리듬감이 어찌나 정확한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어떤 유명 음악회 남녀 가수의 콜라보가 이보다 환상적일 수 있을까? 진짜 뭐 선일이고?

이날을 시작으로 진상 개와 닭 민폐의 시도 때도 없이, 지치지도 않고 짖고, 울어대는 달갑지 않은

노래대결이 시작되었다.


내 나이에 불면은 예민함을 시작으로 업무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대인관계를 무너뜨리는 최대의 적이다.

두 녀석의 엄청난 가창력 덕분에 나는 나날이 수척해져 갔다.

이대로 살 수는 없다. 적을 알면 백전백승. 노랫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나섰다.


먼저 개진상, 진짜 이쁘다 온몸이 하얀 털로 덮인 눈동자는 반짝거리고 체구는 날씬하다.

그 옆집 닭 민폐, 기골이 장대하고 윤기 나는 갈색 털에 눈은 갈고리 눈에 부리와 발톱은 갈고리처럼 튼튼하다.

아름다운 꽃은 가시가 있다더니 그 절대 진리를 몸소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적의 정체를 알았으니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고 시간만 흘러갔다. 말복이 다가오니 슬슬 내 맘속 진상 개와 닭 민폐에 대한 살해 충동이 더욱 맹렬해졌다. 내 저것들을 기필코 처단하리라.

호위무사 개진상은 차마 그렇다 치고 닭 민폐는 춘포에 있는 삼계탕 전문 장수촌으로 보내 푹 고아서 한여름 허한 사람들 몸보신시키면 참 좋겠다.

상황이 이쯤 되니 아파트 게시판에도 내용이 게재가 되었고 뜻있는 입주민 몇 분이 관리사무소를 방문해 민원을 넣었다. 하지만 현행법상 기르는 가축은 마땅한 단속방법이 없다는 해당 기관의 친절한 답변을 받았을 뿐이다.


게시판.jpg


동물 소음 처벌. 딱히 방법이 없어요 ^^

소음·진동관리법 제2조 제1항은 층간소음에 대해 ‘사람의 활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강한 소리’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공동주택관리법과 그 행정규칙도 동물이 아닌 사람이 내는 소리를 제재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소음이 발생해도 처벌 방법이 없습니다. 경찰도 시청도 아파트 관리사무소도 정식으로 접수하기보다는

“이웃끼리 잘 원만하게 해결하세요”합니다.


하필 개진상 집과 제일 가까운 게 우리 동 이라 하루는 개진상과 닭 민폐의 줄기찬 하모니에 질린 내가

용기를 내어 앞 주택을 방문했다. 앞머리가 반짝거리고 체구가 튼실한 60대 중반의 남자가 나왔다.

그 순간에도 개진상은 나를 쳐다보며 평소보다 한옥타브 높은 고음을 구사하며 또 미친 듯이 짖어댄다.


굴러들어 온 돌은 박힌 돌을 빼낼 수 없다.

아파트 입주민이라고 얘기하고 잠을 잘 수가 없어 그러는데 좀 덜 짖는 품종으로 바꾸거나 어디로 보낼 생각은 없으신지요? 최대한 품위를 지키며 정중하게 물었다.

참, 나! 주택을 안 살아 봐서 그러시구나. 보안이 잘 안 되는 주택 살라면 큰 개 한 마리는 필수로 있어야 하는데, 우리 금순이가 최고요. 별게 다 거슬리는가 보네 짖는 것이 지일이고 밥값 하느라 열심히 사는 애한테.

‘이런 젠장’ 관상은 과학 이라더니. 역시나. 견주를 처음 본 순간 별 기대도 안 했다.

배려심 1도 없는 이 아저씨한테 진심 플라잉 니킥을 선물하고 싶어졌다.


이미 터를 잡고 있던 주택가에 우리 아파트가 들어온 거라 어느 정도 생활소음은 예상했지만

개와 닭이 이토록 나를 괴롭힐 줄이야.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는데 미친개는 있는 것 같다 고 내가 그럴게요.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라는데 그럼 악쓰는 닭은 뭐가 약일까?


날마다 두 짐승의 노래대결에 스트레스 가득. 속앓이를 하고 있지만 마땅한 해결책도 없어서 그저 기도만 드린다. 개진상과 닭 민폐 보다 오래 살게 해 달라고. 평균 수명은 내가 더 기니까 당연히 이길 것 같기는 하다.

시간 지나 늙으면 저 녀석 들도 기운 떨어져 덜 울고 덜 짖겠지.


평소 30분 뛰던 러닝을 두 민폐들에게 시달려 깊은 잠을 못 이루는 날에는 1시간 이상을 뛴다. 저것들보다

‘내 오래 살 거다’ 분노로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오후 4시. 3살 된 우리 집 강아지 토토와 산책을 나간다. 울타리 너머 개진상이 나와 눈이 마주치자 별로 다정한 사이도 아니건만 또 격하게(?) 인사를 하기 시작한다. 개진상을 째려보며 내가 물었다.

“너 오늘 밤 에도 짖을 거냐?” 개진상이 까만 눈으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글쎄 생각 좀 해보고.”

개새끼가 누런 이를 들어내며 사악하게 웃는다.


♤ 동물을 키우고 계신다면 ♤

이 순간에도 아파트 층간소음과 아파트 내, 개 혹은 주택가 닭 우는 소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이 땅의 모든 아파트 거주자들을 위로합니다.

동물을 키우고 계신다면 이웃집에 피해가 가지 않게 최소한의 배려는 해주세요.


심하게 짖으면 달래고 산책도 시키고, 멀리 갈 때는 함께 가고, 케어가 안될 때는 전문 조련가에게 맡겨봅니다.

“우리 개는 안 짖어요” 하시다가 진짜 인간 개진상으로 오해받으십니다.


닭은 빛에 민감해 운다고 하니 닭장 앞에 검은 천을 치든 커튼을 쳐서

꼭두새벽부터 이웃들의 소중한 잠을 빼앗지 말아 주세요.


지금은 농경사회가 아닌 디지털 언택트 시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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