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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게를 싫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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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나비
Sep 1. 2021
용서는 단지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그를 향한 미움과
원망의 마음에서 스스로를
놓아주는 일이다.
그러므로 용서는 자기 자신에게
베푸는
가장 큰 베풂이자 사랑이다.
- 달라이 라마 -
손안에 또 다른 세상. 스마트폰이 우리 곁에 온 지 한 10년쯤 된 거 같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삶에서 스마트폰의 존재감은 가히 절대적이다. 세대불문 폰 없이 단 몇 분을 버틸 수 있을까?
파출소 근무 중 전화응대는 하루 일과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요 업무 중 하나이다.
특히 공무원이 제일 무서워(?) 한다는 민원전화.
차량이 빠졌으니 꺼내 달라는 사소한 것에서부터 불법조업을 단속해 달라,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다오, 김종욱 찾기 같은 사람 좀 찾아 달라는 전화까지
색으로 치면 빨, 주, 노, 초, 파, 남,
보 일곱가지 무지개 빛깔에 유채색 무채색까지 더해져 형형색색 너무나 화려해서 눈을 뜰수가 없는 지경이다.
하룻밤에 두 가지 이상의 사건이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하는 날이 많지 않지만 가끔 그렇게 꼬이는 날이 있다. 근무 인원은 한정되어 있는데 짱가나 홍반장이 되어야만 하는 그런 날.
이날이 그러했다. 8월 중순 꽃게
금어기 (잡으면 안 되는 기간 : 국법으로 두 달 지정)
해제 이틀을 앞두고 밤 11시가 넘어 전화벨이 울린다. 이 야심한 시각에 걸려온 전화라면 백퍼 신고전화 일거라는 느낌적인 느낌.
파출소 인근 항포구에 물때를 맞춰 나간 마을 어선이 꽃게를 그물째 잡아가지고 와 시장에 내다 팔려고 입항한다는 은밀한 신고 전화였다
.(적은 항상 가까운 곳에 있다.)
식당개 3년이면 라면을 끓인 다더니 영락없이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작두 타는 신들린 만신 무당이 되는 순간이다.
팀원 2명과 신속하게 순찰차를 몰고 항포구에 도착해 은밀하게 잠복하고 있자니 달빛도 없는 깜깜한 항포구를 발 없는 유령처럼 소형선박 1척이 살며시 미끄러져 들어온다.
“00 파출소 해경입니다.” 소속을 밝히고 어둠 속에서 불쑥 튀어나가니 놀란 노부부가 지옥의 저승사자를 본 듯 화들짝 놀라더니 뱃머리를 돌려 바다 쪽으로 줄행랑을 놓는다.
아차! 이런 돌발적인 긴급상황에서는 20년 차 짬밥이 빛을 발한다.
순간적인 위기의식을 느끼고 2톤짜리 소형 어선에 잽싸게 뛰어올랐다. 입으로는 달래고 팔로는 물속으로 어구를 투척하며 증거인멸을 시도하는 선장님을 저지한다.
폭이 1미터 남짓되는 좁은 배의 갑판 위에서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자, 증거인멸을 시도하려는 자와 증거를 확보하려는 자 사이의 밀치고 당기며 한 밤중
必死則生 필사즉생 必生卽死 필생즉사
의 각오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다
.
(각자 쫓는 것을 찾아 죽기로 싸움)
항포구에서는 동료 신 경장이 달콤한 말로 낭랑하게 외친다. ”선장님 정상참작을 할 테니 무리한 행동은 하지 마세요. 얼른 포구로 돌아오세요 “ 목이 터져라 외치며 나를 지원 사격한다.
‘기특한 놈 난 역시 부사수 복이 있어’ 긴박한 순간에도 내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감돈다
어렵게 선장님을 진정시키고 항포구로 배를 돌려 정박시키고 사연을 들어보니 이 아저씨 삶도 참 파란만장하다. 변변한 집 한 채 없이 빚만 잔뜩 짊어진 형편 딱한 가난한 어부 아저씨.
솔직히 이럴 때가 제일 난감하다.
신고받고 현장을 나가면 자신의 범법행위에 적극적인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단속 경찰관을 비웃고 대들어야 분노 게이지가 상승하고 더 신이 나는데 극악한 빌런이 본분을 망각하고 한쪽에서 백기를 들고 날 잡아 잡수 하면 전투력은 급격히 소멸되고 만다.
순간 갈등이 되었다. 그야말로 취약계층의 생계형 범죄인데 원칙대로 처벌하자니 형편이 딱하고 안 하자니 국가의 녹을 먹으면서 법집행을 제대로 안 한 만고역적이 될 거 같아 한참을 망설이다 원칙대로 법집행을 하고 만다.
항포구 어두운 가로등 불빛 아래 아주머니의 파마기 없이 삐뚤삐뚤 짧게 자른 질서 없는 단발머리가 내 눈과 맘속에 아프게 박힌다. 시일 내로 파출소로 방문하시라 하고 그날 한밤중 액션 활극은 그렇게 끝이 났다.
복귀 중인 순찰차 안에서 갑자기 소설 레미제라블이 떠올랐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않았던 미리엘 주교처럼 타인을 동정할만한 따뜻함도 부족하고 너그러움도 부족한 내가 어설프게 용서를 생각했을까? 용서는 인간이 아닌 신의 영역이라는데.
사실 생계형 범죄행위는 경미한 사안일 때가 거의 대부분이다.
소위 말하는 목구멍이 포도청,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범법행위,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는데
단죄와 인정 사이에서 짜장이냐 짬뽕이냐, 모카커피야 라떼야. 쉬운 거 같지만 결정장애는 제복을 입은 나에게도 피해 갈 수 없는 성장통 같은 것이다.
무미건조한 삶을 사느라 사람 냄새나는 사람 찾아보기가 점점 힘들어진 요즘. 민원은 파도처럼 거세게 밀려오고 책임감은 눈덩이처럼 늘어만 간다.
20년 넘게 해양경찰에 몸담고 팀장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순간의 판단과 선택이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수도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법에도 눈물은 있어야 한다
는 말이 선택이 아닌 필수로 다가오는 오늘 밤이다.
저녁밥을 든든히 먹었는데도 갑자기 알 수 없는 허기가 진다 당뇨인가? 마음이 허한 것인가?
”신경장 배 안 고프냐? 편의점 들려 뭐라도 먹고 가자 “
신 경장이 고른 삼각김밥을 보고 있자니 또 괜히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아니 이놈의 김밥은 둥근 원모 양도 있고 별 모양도 있고 이쁜 도형이 얼마나 많은 데 왜 하필
모나고 각진 삼각형이냐고’?
호박같이 둥근 세상 둥글둥글 살면 가까운 이웃들끼리 민원신고도 좀 덜할 것 같은데. 뾰족뾰족 고슴도치 마냥 가시만 세우고 살고 그래. 전자레인지에서 멋모르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삼각김밥에게 눈을 흘겼다.
‘에라 퇴근하면 멸치랑 다시마 우린 물에 된장 풀고 호박이랑 풋고추 두부 숭덩숭덩 썰어 넣고 꽃게나 한 마리 텀벙 던져 넣어서 시원한
해물 된장찌개
나 끓여야겠다.’
그나저나 그 노부부, 없는 살림에 벌금이나 제대로 낼 수 있을까?
심란한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월하 포구 밤하늘에 잔별들만 총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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