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왜?” 하고 밖을 보니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일기예보에서 가을장마라고 하더니 이번 주 내내 비가 자주 내릴 것 같다.
하필 딸 등교 시간에 맞춰 비가 세차게 퍼붓는다.
올여름 장마는 내 기억이 맞다면 장마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40일이 넘는 동안 비를 거의 뿌리지 않았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부는 이 계절. 갑자기 찾아온 가을장마는 농부에게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이다. 추수를 앞두고 내린 가을비는 다된 밥에 재를 뿌릴 수 있다.
비 내리는 이 아침. 갑자기 난 왜 그해 여름 이야기가 하고 싶어진 걸까?
내 고향 정남진 장흥에 70일 가까이 비가 내리지 않은 적이 있었다.
그해는 벼뿐만 아니라 봄에 파종해 놓은 각종 채소류며 고구마 등 밭작물들도 잎과 줄기가 볕에 타 남아나는 게 거의 없을 만큼 극심한 가뭄이 들었다.
학기 수업을 마치고 방학이라 엄마를 돕기 위해 고향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지 만은 않았다.
단군이래 최악의 가뭄이라는 그 여름, 엄마는 밤 열 시부터 새벽 2~3시까지 논 옆에 파라솔을 쳐놓고 소위 말하는 물꼬 도둑을 막기 위해 불침번을 3~4시간씩 서고 계셨던 것이다.
“아랫동네 구 씨 저것이 나만 안 보이면 우리 논에 물도 아직 덜 찼는데 꼭 즈그 논으로 물꼬를 틀어버린다. 아주 도둑놈 심보여”
한마디 하시며 논에 나가시는데 그날따라 엄마의 발걸음이 유난히 비장하게 느껴졌다.
새벽녘 우리 논이 위치해 있는 신작로 근처에서 큰소리로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와 여자의 목소리였다.
순간, 본능적으로 짚이는 게 있었다. 이상하게 슬픈 예감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어서 소리 나는 곳으로 잽싸게 뛰어나가 보니 역시 엄마와 구 씨 아재가 언성을 높이며 싸우고 계셨다.
그 당시 학생이었고 철부지였던 나는 그런 두 사람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그냥 사이좋게 이 집 물 대고 나면 저 집 대고 하면 되지 왜 저래’?
순간 엄마가 살짝 창피했다. 적극적으로 나서지를 않고 강 건너 불 보듯 미적미적 그 자리에 서있는데 마침 동네 이장님이 와서 말리고 나서야 한밤중 물대기 싸움은 끝이 났다.
집에 돌아오신 엄마는 불같이 화를 내셨다
“먹고사는 게 얼마나 치열하고 징한 것인지 너는 몰라야
대학교나 다니고 한께 농사가 별거 아닌 것처럼 우습게 보이 지야.
아야! 너는 내 새끼여. 어미가 딴 놈하고 싸움을 하고 있으면 무조건 내 편을 들어야지 너는 뭣하고 있냐?
그것이 가족이고 식구 아니여?”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영화 마더
당시 논 3 필(3,600평)을 경작하며 소작농이었던 우리 집 형편에 모내기를 해놓고 초기에 제때 물을 주지 못하면 어린 모가 타 죽고 그 모가 자라지 못하면 그해 농사는 쌀 한 톨 건지지 못하고 망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곧 생존과 직결되었고 아버지 없이 혼자 농사일을 하시는 엄마에게는 목숨줄 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가뭄에 논물대기는 총성 없는 전쟁터요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밟고 일어서야만 하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었던 것이다.
그 여름 엄마가 핏대를 세우며 건장한 남자들과 싸워서 지키고자 했던 것은 단순히 그냥 물이 아니라 가족과 세상 앞에 무너지고 싶지 않은 당신의 홀로서기는 아니셨을까?
일 년 농사를 지어 내 학비도 보태야 하고, 가계 생활비도 벌어야 하는 절박함 앞에서 엄마의 논물대기는
체급도 전적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사각의 링위에 선 무패의 격투기 챔피언 같았다.
엄마의 맘을 몰라주는 못난 아들 탓에 그해 여름 엄마는 가뭄으로 목만 탄게 아니고, 속도 새까맣게 타셨을 것이다. 미안해 엄마.
연일 계속되는 가뭄으로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마을 저수지의 물도 거의 바닥이 드러나 저수지 깊은 부분에 조금씩 고여있는 곳의 물을 찾아 양수기를 들이대고 저수지 밑 전답들로 간신히 물을 퍼내리는 지경까지 되었다. 이제 정말 하루 이틀 내로 비가 내리지 않으면 마을에 뭔가 큰 사단이 날것처럼 분위기는 더욱 흉흉해졌다.
가뭄은 수해보다 훨씬 무섭다. 수해를 입으면 불쌍하다고 여기저기서 식량과 다른 생필품들도 지원해주면서 곳간에서 인심이 나기도 한다. 언론홍보 효과도 가뭄보다 수해 쪽이 시각적으로 훨씬 자극적이다. 장면 연출도 더 생생하고 시청자들 눈에도 심각하게 보인다.
가뭄은 논 밭만 메마르게 만드는 게 아니고 마을 사람들 마음까지 불에 구워 갓 꺼낸 초벌의 투박한 질그릇처럼 태석 태석 거칠고 까칠한 물기 없는 사람으로 둔갑시켜버렸다. 자고 나면 어제는 물 때문에 누구 두 집이 싸웠네, 고구마 밭에 물 떠 나르다가 서로 다투다 밭을 다 뒤집어엎어 버렸다는 살벌한 소리까지 들려왔다.
갈수록 마을은 물기라고는 전혀 없어 길가 잡초 위에도 먼지만 내려앉아 온통 회색빛으로 우울하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비가 내리지 않는 그 두 달 동안 엄마의 물대기 불침번은 하루도 쉬는 날이 없이 계속되었다. 마치 후손을 잉태하게 해 주십사 부처님 앞에서 간절히 백일기도드리는 양반집 며느리처럼 정성을 다했다.
나는 매일 밤 비를 내려주십사 간절히 기도하며 잠자리에 들곤 했다.
비내리는 산사
그날도 새벽 1시 넘어 집에 돌아온 엄마와 꽤 오랜 시간 두 분의 결혼생활과 시집살이 얘기, 아랫집 살 때 얘기 등을 도란도란 나누고 있는데 양철지붕 위로 후드득 빗소리가 들렸다.
징용 끌려가 죽은 줄 알고 있던 님이 살아 돌아와 버선발로 님 마중 나가는 새색시 마냥 마당으로 뛰쳐나가 엄마와 함께 온몸으로 비를 맞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두 달이 넘는 가뭄으로 그렇게 흉흉했던 마을 인심도 내린 비와 함께 순식간에 촉촉해졌다. 비는 그렇게 꺼져가던 대지에 숨을 불어넣고 사람들의 가슴과 허파에도 넉넉함과 사랑을 다시 채워주었다.
폭염이 찾아오고 쏟아지는 땡볕에 온몸이 녹아내릴 때면 멀리 하늘로 떠난 울 엄마가 또 그립다.
쌀 한 톨이 밥상에 오르기까지 농부의 고단함을 너무 잘 아는지라, 저녁 식탁에 함께 앉은 딸의 밥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