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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나비 Oct 31. 2021

누군가 바다에 검은 똥을 쌌다

해상 기름유출 방제


해상종합훈련도 잘 끝났고 한해의  근무평정 이다음 달이면 시작된다. 이번 출동(23~27)은

큰 일만 안 생기면 그럭저럭 평안한 해상치안 일 수도 있겠구나. 달콤한 상상을 하며  23일 오전 8시 30분 목포항을 출항해 진도 앞바다로 항해를 시작했다.  

    

주말 이틀은 가을철 낚시객들이 많은 편이라 다중이용선박 사고를 걱정하며 긴장 속에 항해 당직을 섰는데 별일 없이 지나가서 한시름 놓았다.   

   

입항 하루를 남겨둔 날. 3박 4일 출동기간 중 1건의 선상폭행 사건 말고는 큰일이 없어 정해진 표준 일과표와 자체 정비를 하며 비교적 평범한 기본근무를 하고 있었다.  

    

입항 하루 전날 10월 26일 월요일 오전 11시 10분경 진도군 맹골도 북방 1해리 해역에 어떤 상선이 검은색 물체를 배출하며 항해를 하고 있다며 확인해달라는 민원 전화가 접수되었다.

 

신고 접수 당시만 해도 인근 어민이 버린 휘발성 강한 경질유나 오일을 교환하고 무단 투기한 빌지(기름찌꺼기) 정도로 생각하고 기름 유출 해역으로 이동을 했다.  

   

막상 현장에 도착하니 예상보다 상황은 훨씬 심각했다. 기름띠는 생각보다 규모가 컸고 맹골도 동. 북방을 휘돌아 서거차도 인근 해역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무엇보다 새까맣게 선명한 끈적한 타르가 다수 포함된 벙커 C유 임을 확인한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갑자기 2007년 12월 7일 충청남도 태안군 앞바다에서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 유조선 탱크 7만 8,918배럴의 원유가 태안 인근 해역으로 유출되어 바다를 오염시킨 그 끔찍한 재앙이 떠올랐다. 그때 터진 원유와 성분이 비슷해 보였다.(물론 시료채취를 통해 정확한 성분 분석을 해봐야겠지만) 

※ 벙커C유는 점착도가 50도 이상으로 끈적임이 강한 중유로서 C중유라고도 한다. 사람 손으로 한때 한 기름 일일이 닦아내야 함.           

일단 네 군데 샘플을 떠서 시료채취를 실시하고 함정에 비 치중인 유흡착제를 뿌리며 초기 방제작업을 시작했다. 진도군 서거차도와 맹골수로는 많은 양식장이 분포해 있어 초기에 대응을 하지 못하면 어민들의 큰 피해는 불 보듯 뻔했다. 

그 사이 대형함정인 1509함에서는 해양오염 의심선박을 추적하여 해상 무단투기 여부를 조사하고 있었다. 그 시간 항로대를 통과한 의심선박은 (2,497톤, 토고 선적)으로 여수에서 출항하여 충남 대산항으로 운항 중인 화물선으로 연료는 벙커 C유를 쓰고 있었다.     

 

13시 41분경 진도파출소 연구 정이 현장에 도착했고 특수정인 방제 25호가 비상소집을 실시, 목포항공대에서 헬기가 뜨고 예찰활동을 실시했으며 인근 대형함정도 방제작업에 합류했다. 

     

                                                       수거한 유흡착제  


각 세력들이 현장에 도착하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릴 것이고 본함이 주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 해양오염방제도 안전팀 주요 업무 중 하나라 우리 팀은 본격적으로 바빠지기 시작했다.  

    

선수 갑판창고에 있던 유흡착제 40킬로 (1박스 100장 10킬로), 유처리제 1 드럼, 방제복 세트, 중질유 유흡착제 , 이중 수거 포대, 갈고리와 뜰채를 신속하게 꺼내 적정량을 단정에 싣고 방제작업 1조 5명이 단정에 탑승 본격적인 해양오염 방제 작업을 실시했다.  

    

유흡착제는 (정 사격형 모양으로 50 × 40센티) 하얀색 만들어진 기름 흡착 패드다. 해상에 투여하면 흡착제가 기름을 빨아들인다. 해상 투여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흡착제를 뜰채 등으로 수거해서 속에 비닐을 덧댄 2중 마대에 담는다.     

 

자동화 기기가 없어 일일이 수작업을 해야 한다. 비좁은 단정에서 허리를 굽히고 좌우로 뜰채질을 계속하다 보면 어깨부터 다리까지 온몸이 쑤시고 몸이 뒤틀려 통증이 심해진다. 

     

작업 중 정말 힘든 것은 마스크를 써도 타르 성분의 기름 냄새를 오래 맡고 있으면 머리가 띵하고 속이 메스껍다 는 것이다. 1조가 3시간 정도 작업을 하고 2조와 교대를 했다. 작업을 마치고 함정에 올라온 오순경은 기름 냄새로 토할 거 같다며 거의 멘털이 나가 있었다.    

  

나는 그사이 조타실의 지시에 따라 본함 대기인원 3명과 함께 아프리카 토인들이 허리에 두르는 먼지떨이처럼 생긴 중질유 유흡착제 10미터짜리를 함정 앞․ 뒤․ 좌․우현에 메달았다. 

이제 이 아프리카 토인의 먼지떨이 같은 흡착제가 해상에 떠 다니는 기름을 제 몸에 묻혀 어느 정도는 수거해줄 것이다. (물과 기름을 가득 먹은 녀석을 끌어올릴 일이 걱정이긴 하지만)  

   

본함 팀원들은 장대 보드 호크(갈고리)를 이용해서 3~4명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바다에 떠다니는 기름 먹은 유흡착제를 낚시하듯 떠올리면 한 사람이 포대를 잡고 손으로 기름덩어리 유흡착제를 포대 속에 넣는다. 단정 올림 요원 배치 방송이 나오면 하던 작업을 잠시 멈추고 단정에서 수거해온 유흡착제 포대를 본함에다 옮겨 싣는다. 


높은 너울을 헤치고 좁은 단정에서 몇 시간씩 방제작업을 실시하는 현장요원 들은 적어도 이 무대에서 꼭 필요한 멋진 주연들이다. 비록 단정을 직접 타지는 않지만 나는 스포트 라이트에서 비껴 난 무대나 영화에서 꼭 필요한 감초 같은 빛나는 조연이고.   

    

                                                     단정 작업 사진


 본함에서 이것저것 물품을 챙기고, 조타실 지시를 받고, 단정을 올리고 내리고, 기름수거 포대를 운반하고, 중질유 유흡착제를 설치했다 회수하고, 갑판에 묻은 기름얼룩을 지우고, 여기저기 널려진 기름 쓰레기 들을 줍는다. 작업이 끝나는 밤 시간까지 허리 펼새 없이 정신없이 바빴다. 이날 나는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했다.      

다행히 첫날은 해상날씨가 좋아 밤늦도록 방제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이날 방제작업을 실시하여 기름 먹은 유흡착제를 300킬로 정도 수거했다. 


함정이 온통 기름으로 범벅이 돼서 바닥은 미끌거리고 단정의 밑바닥과 충돌 예방 차 앞에 매달아 둔 소시지 모양의 노랑 헨다에 붙은 기름 덩어리가 마치 잘 익은 튼실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매달렸다. 

나중에 단정을 씻을 생각을 하니 한숨이 절로 난다. 

      

방제작업을 마치고 각자 직수에 맞춰 항해 당직을 서야 하기에 조타실로 올라갔다. 피로가 몰려와 급 졸린다.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정신력으로 네 시간을 버텨낸다.

     

다음날 27일은 입항 날이다. 해양오염 사고가 없었다면 이날 13시에 현지를 이탈해 15시면 목포항 전용부두에 입항해야 있어야 했다. 기름유출로 오염상황이 심각해 이날 18시까지 방제작업을 실시하고 입항하라는 본서 지시를 받았다. 꼭 무슨 사형선고를 받은 것처럼 맥 빠지는 소리였다. (진심 화남)

     

오전까지는 해상날씨가 좋더니 오후부터 날씨가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단정 작업 팀원들도 체력적인 한계에 부딪치니 작은 불평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니 메인인 방제정도 유흡착제만 매달고 수작업을 안 하는 구만 서브인 우리만 이 구역 담당이라고 너무 부려먹는 거 아닌가요?”  맞는 말이다. 순진한 나는 방제정만 오면 바다에 떠있는 새까만 기름덩어리를 쪽쪽 빨아드리고 기름과 물을 분리시켜 상황이 금방 끝날 것이란 헛된 꿈을 꾸고 있었다.

       

웬걸 현장에 도착한 방제정이 구형이라 장비가 오래돼서 바다에 떠있기만 했다. 멍텅구리 느림보 거북이는 제 역할도 하지 못한 채 방제물자나 조달해주며 한심한 조연을 자처하고 있었다. 

     

강한 바람과 높은 너울에 맞서 인근 양식장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타르 덩어리와 36시간 넘게 온 힘을 다해 사투를 벌였다. 극도로 이기적이며 생각 없이 부주의하게 해상에 기름을 배출한 선장을 저주하면서. 

    

그렇게 우리는 입항하는 날 18시까지 쉼 없이 약 1,100킬로 정도의 기름 묻은 유흡착제를 수거했다. 다른 세력들의 수거량까지 합하면 엄청난 량이 될 것이다. 맹골수로에 떠있는 검은 기름띠를 거의 제거를 한 셈이다. 다행히 인근 어촌 양식장에서 기름 덩어리가 추가로 발견되지는 않았다.


힘든 출동을 마치고 목포항 전용부두 입항한 시간은 밤 9시였다. 이것저것 뒷정리를 하고 9시 57분 익산행 KTX를 타야 했지만 결국 이날 집에를 가지 못하고 혜화관 숙소에서 잤다.  


개념 없는 선장이야 당연히 법적인 처벌을 받아 벌금도 내고 응분의 대가를 받겠지만 일과 감정이라는 게 그렇다. 다들 내 인생을 살기에도 바빠 아등바등 정신없이 사는 게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자신의 일이 아닌 타인의 일에 스스로 직접 그 현장에서 그 상황을 겪어보지 않으면 머리로는 이해를 일정 부분 하겠으나 가슴으로 온전히 백 퍼센트 공감하기는 쉽지 않다. 이해와 공감은 별개의 문제니까. 

       

할 수 있다면 무개념 화물선 선장을 잡아다 벌금 혹은 손해배상의 법적인 제재로 끝낼게 아니라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기원전 18세기에 기록된 함무라비 법전의 준엄한 법의 심판을 받게 하고 싶었다.

      

오염 현장에서 파도에 시달리며 기름 냄새를 맡고 헛구역질을 해가며 연속적인 노동을 해 뼈마디가 쑤시는 고통을 느끼면서 자신이 싼 똥을 손수 치워봐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무지몽매한 행위를 뼈저리게 후회하고 맑은 바다에 기름을 함부로 유출시키는 못된 짓거리를 다시는 안 할 테니까.   

  

아침 커피를 내리면서 바다의 기름때는 이렇게 제거하면 되는데 우리를 힘들게 하는 마음속 오염군(일, 사람, 인간관계 등등) 들은 어떻게 제거하지? 뭐 쌈박한 방법이 없을까? 실없는 생각을 잠깐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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