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해상종합훈련을 마치다
드디어 오늘, 올해 경비함정 해상종합훈련 이 끝났다.
오래도록 미뤘던 숙제를 끝냈거나 큰 통에 세제를 듬뿍 풀어 발로 지근지근 밟아 물기를 탁탁 털고 짱짱한 가을 햇볕에 뽀송뽀송 하게 이불 빨래를 마친 것처럼 개운하다.
10월 20일과 21일 이틀 동안 지방청 훈련평가를 앞두고 그동안 매 출동 때마다 기본 임무를 병행하면서 틈나는 훈련 연습을 실시했고 교관의 입회하에 드디어 훈련평가를 받게 되었다.
8개 종목을 평가했는데 훈련에 임한 내가 내 자신에 대해 점수를 매긴다면 제 점수는 한 87점 드릴게요.
아주 잘한 것도 아니고 아주 못한 것 같지도 않은 다소 애매한 점수다. 타고난 성격이 연습보다 실전에 약한 타입이고 평가 날 긴장도 많이 해서 연습량에 비해 점수가 썩 잘 나올 거 같지는 않다.
(학창 시절에도 쭈욱 이랬다. 늘 이런 비슷한 마음가짐, 두근두근, 긴장 초조)
올해 초 뜻하지 않게 거주하는 곳에서 가까워 근무를 희망했던 군산 해양경찰서로 발령이 나지 않고 생뚱맞게 전남 목포로 발령이 났다. 꽤 오랜 시간 육상 근무를 하다가 함정근무를 다시 하게 되었고 거기다 훈련 때도 훈련종목이 가장 많은 안전팀장을 맡게 되면서 내 인생 스텝이 잠시 꼬였다.
타선소화 훈련
평가 첫째 날 교관이 우리 함에 탑승하고 09시부터 첫 훈련이 시작되었다. 하나의 단편적이 상황이 아닌 적의 포탄에 함정이 명중되어 각 포대 사수가 부상을 입고, 물에 빠져 익수자가 발생하고 발전기가 나가 정전이 되었고, 워터제트실이 파공으로 인해 침수가 되어 본함을 버리고 이함 해야 하는 동시다발 종합상황 훈련이다.
입사한 지 두 달 밖에 안된 손순 경과 합을 맞혀 해결해야 하는 훈련종목이 많았다. 손 순경은 위생사 역할이라 부상자와 익수자 응급처치가 주요 임무다. 아무래도 현장 경험이 많이 없어 나보다 더 긴장을 많이 한 것 같다.
쓰러진 61포 사수의 대퇴부 관통상을 치료하기 위해 입으로는 멘트를 하고 손으로는 응급처치를 하면서 그 진행사항을 전투 구호소에서 큰 목소리고 끊임없이 외치고 있다. 팀장인 나는 손 순경의 멘트와 처치 행동을 워키토키로 조타실 지휘부에 큰 목소리로 전달한다. (위생사가 막히면 현장의 진행사항을 눈치껏 내가 보고 해야 한다.)
당연히 위생사가 심폐소생술을 실시하고 자동 제세동기로 심장충격을 할 때는 옆에 호랑이 교관이 매의 눈으로 응급처치 동작 하나하나를 관찰하고 채점표를 메기고 있다.
원격 응급 의료시스템으로 목포시내 병원 의료진과 연결하여 61포 부사수의 신체 바이탈(혈압 맥박, 체온, 산소포화도 등)이 정상임을 통보받고 1차 응급처치가 잘됐다고 보고한다. 잠시 후 환자 안정을 위해 감시자 1명을 배치하고 총원 퇴장하겠다면서 응급처치 훈련이 끝났다.
곧바로 좌현 익수자 발생 훈련이 진행되었다. 현장지휘자인 나의 지휘 아래 구명볼을 던지고 익수자를 함정 측면 가까이 유도하고 안전구역에 도착한다.
구조자가 슈트를 입고 입수하여 크레인에 매달린 해상구조 바스켓에 익수자를 인양하고 함정으로 옮겨 바닥에 내려놓는다. 위생사가 또다시 응급 처치를 실시한다.
신임순경 손순 경이 긴장 탓에 손을 가늘게 떨며 익수자 처치를 하는 모습이 안쓰럽다.(석아! 세월 가면 단단해진다.)
평소 연습한 데로 편하게 잘하면 되는데 평가 관도 옆에서 지켜보고 있고 본인의 작은 실수가 함정의 1년 농사를 좌우한다는 압박감에 멘트도 버벅거리고 처치 동작도 자연스럽고 이쁘게 나오지를 않는다.
안쓰러움에 옆에 있는 나도 함께 애가 탄다. 정신없이 오전 훈련이 끝이 났다.
오후에는 출항을 하여 해상에서 훈련을 실시했다.
여려 척의 함정들이 진을 형성하여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임진왜란 당시 왜 수군을 맞아 일자진을 형성하고 맞서 싸우는 이순신의 함대처럼 멋지다.
훈련 집결지에 도착 후 단정을 내리고 다수 인명구조 기구 중 하나인 구명줄로 익수자를 구하는 훈련이다. (인명구조 줄은 손가락 세 개 굵기의 200미터 줄에 럭비공 크기의 노란 소시지 펜더를 20센티 미터 간격으로 끼어 넣어 만든 인명구조 줄) 끝을 단정에서 잡고 본함 우현 뒤쪽 매달린 구명줄과 함께 J자 형상을 만드는 훈련이다.
물에 뜨는 가상의 익수자 3명을 건져오면 위생사는 현장에 도착해 의식 없는 익수자에게 또다시 응급처치를 실시한다. 본함 연결 구명줄과 단정 연결 구명줄이 합이 잘 맞아 바다에 그려진 J자가 이쁘게 잘 나왔다. 조타실 지휘부와 평가 교관의 표정이 밝았다.
(이 훈련은 연습 때 했던 거랑 실전에서 갑자기 상황이 다르게 전개되어 다소 당황함)
불법 외국어선 검문검색 훈련
15시경, 1일 차 마지막 훈련인 불법 외국어선 검문검색 훈련을 실시했다.
검색팀 8명이 안전무장 후에 진압장구를 갖추고 우리나라 영해를 불법 침범한 격렬 저항 중국 선원을 제압하는 훈련이다. 서해(특히 제주, 목포, 군산)는 찬바람이 나기 시작하면 중국의 쌍타망들이 영해를 침범하여 어족자원을 싹쓸이하고 국내어선의 조업을 방해한다.
훈련 전날 우리 안전 팀원들은 필요한 소품들인 모의 섬광탄, 중국 선원 명찰, 위생사 지혈대 등을 미리 구입해 두었다.
소형함정(형사기동정)을 중국어선으로 지정했다. 검색팀이 거세게 저항하는 중국어선에 진입하여 대방 패로 앞을 막아가며 배척(일명 빠루)을 이용, 조타실 문을 뜯어내며 중국 선원 7명을 검거하여 본함으로 이송하여 워터제트실에 구금 후 감시 조치를 하면서 훈련은 끝이 났다.
17시가 지나자 날씨가 제법 차가워졌다. 목포항 전용부두에 입항하기 전 협수로에서 연안 항해 훈련을 실시하였다. 함수 좌 우 경계요원을 했는데 너무 오래 서 있었더니 다리도 아프고 목이 칼칼하다.
훈련을 끝내고 입항하니 저녁 6시가 넘었다. 팀원들과 정신없이 훈련 준비물 들을 정리하고 퇴근할 사람은 퇴근을 하고 나는 당직이라 함정에 홀로 남았다. 씻고 식사 후 함정 마스트에서 바라본 목포대교 야경이 근사하고 밤하늘에 떠있는 별이 무척 이쁘다. 당직을 마친 새벽 2시. 그대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평가 2일 차. 오늘은 출항해서 저시정 연안 항해를 마치고 선내 진입 탈출 훈련과 해상사격, 타선소화, 예선 피예선 훈련을 실시했다.
오전 날씨가 좋아 예선 피예선 훈련을 빼고는 모두 원만하게 진행되었다. 오후 2시부터 갑자기 바람이 불고 해상 날씨가 돌변하면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하필 예선(다른 배를 끄는 것) 피예선(다른 배에게 끌려가는 것)할 때 바람이 불고 조류가 세질게 뭐람. 연결줄 던지기도 쉽지 않을 텐데. 오순경 고생하겠다.
걱정 속에 시간은 흘러 우리가 끌어야 할 함정은 1,000톤 경비함으로 정해졌다.
사실 예선 훈련은 평상시 기관고장 선박이나 좌초. 침수되어 자력항해 기능이 상실된 선박 발생 시 사고 선박을 예인줄로 연결하여 안전지대까지 옮겨다 주는 훈련이다. 해상에서 대형사고 예방을 위한 필수 훈련 항목 중 하나다.
나를 포함 10명의 현장요원들이 조타실의 지휘에 따라 함미 홀에다 150미터 길이의 튼튼한 예인줄을 내어 준후 1,000톤 경비함정에 걸고 일정 거리를 끌고 나서 훈련이 최종적으로 끝났다. 예선 피예선 훈련 상황 끝.(복창) 상황 끝. 승조원 총원의 힘찬 복창 소리가 천상의 악기 소리처럼 부드럽게 내고 막을 파고든다.
16시경 훈련을 종료하고 목포항 전용부두에 입항하니 거의 17시. 홋줄을 걸고 정신없이 뒷정리를 했다.
택시를 불러 목포역에서 18시 10분 출발하는 익산행 KTX를 탔다. 모든 훈련이 끝나고 긴장이 풀린 탓인지 몸은 천근만근, 허리도 쑤시고 다리도 아프고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온다.
반복학습은 지루했지만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고, 하기 싫은 훈련은 동료애를 두텁게 해 그럭저럭 굴러가던 팀을 온전한 한 팀으로 만들어 주었다.
1년 중 딱 하루 부모님 제삿날인 오늘, 어른들 제사상에 가볍고 개운한 마음으로 술잔을 올릴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