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페 디엠
목필균 '해무'
살다 보면 한 밤중 깊은 산속에서 길을 잃거나 망망대해에서 삶의 좌표를 놓치고 망연자실 절망의 늪에 빠져 정신없이 헤맬 때가 있다.
방향을 잃는다는 것은 삶의 목표를 잃었다는 것이고, 목표가 없이 흔들리는 것은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면서 인생을 재미없게 살아가가게 된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스스로 삶을 포기하거나 가족이나 믿었던 동료의 이기심 혹은 낯선 타인의 무례함에 등 떠밀려 그냥저냥 살아내거나.
상처 주고 상처 받으며 세상과 단절하고 깊은 겨울잠을 자러 가는 덩치 큰 불곰처럼 나만의 동굴로 기어 들어가면서 인생은 잿빛으로 물들어 가기 시작한다.
정처 없이 하염없이 헤매지 않으려면 삶을 어떻게? 잘 살아야 할지도 중요하지만 어디로?라는 방향성에 무게를 좀 더 둬야 유연하게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해상 출동 첫날인 10월 11일. 서해남부 안쪽 먼바다에는 오전에 풍랑주의보가 발효되었다. 저녁 7시경 72톤이 넘는 예인선 1척이 진도 서망항에서 선장 등 4명을 태우고 줄 메어 뒤 따라오는 부선에 준설토 약 1,000루베를 적재하고 목포 신항으로 이동차 항해를 나섰다. (흙을 많이 싣었단 뜻임)
(※ 루베 1㎥ : 미터법에 의한 부피의 단위. 1세 제곱미터는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1미터인 정육면체의 부피이다.)
밤이 되자 해상의 날씨는 더욱 악화되었고 진도 앞바다 강한 조류로 인해 예인선 선장이 순간 방향감각을 상실하여 항해 코스를 이탈하여 가야 할 방향과 정 반대 방향으로 선박을 조함 하면서 일이 커진 것이다.
하필 해상교통량이 많은 통항대에서 벌어진 일이라 예인선을 뒤따라 오던 또 다른 상선과 예인선 선장들이 반대로 운항을 하라고 교신기에다 대고 소리를 지르고 난리가 났다.
자칫 연쇄충돌로 인해 2차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긴박한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관제소에서 선장을 수차례 호출하고 절박한 목소리로 다급하게 왼쪽으로 전타를 요청했으나 이미 방향 감각을 상실하고 이성을 잃은 선장은 고집을 부리며 무리하게 반대 방향인 오른쪽으로 계속 타를 쓴다.
예인선에는 많은 양의 유류가 적재되어 있어 해상 충돌로 전복될 시 진도 앞바다는 온통 기름으로 범벅이 되어 양식장 등의 피해는 불 보듯 뻔했다.
상황실과 관제소의 다급한 요청으로 본함은 밤바다를 전속으로 달려 상황 발생 해점으로 이동했고,
19시 30분경 진도파출소 연안구조정이 현장에 먼저 도착해 이리저리 헤매고 있는 예인선에 접근하여 직접 길잡이를 자처해 안전지대로 유도하면서 상황은 조금씩 호전되었다.
저녁 8시경 본함은 현장에 도착하여 안전관리에 합류하였고 혹시 선장이 음주를 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단정을 내려 음주측정을 실시했다.
다행히 선장은 음주를 하지는 않았다. 2차 사고 없이 상황 종료되었다.
불법 외국어선 단속 훈련
살다 보면 한 번쯤 이럴 때가 있다. 하도 많이 다녀본 길이라 눈을 감고도 지형지물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를 그릴 수 있을 만큼 익숙한 항로대에서도 사고는 발생할 수 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고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이 전개되면 누구나 당황하게 되고 당황하면 길을 잃고, 길을 잃으면 이성을 잃고, 이성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어 혼미 해지면서 대형사고로 이어진다.
이날 바다에서 예인선 선장은 항해 중 잠시 잠깐 길을 잃었지만 30대 젊은 날 나는 꽤 긴 시간 삶의 방향을 잃고 헤맨 적이 있다. 그 당시 사랑했던 울 엄마는 2년 정도 혈액암을 앓다 돌아가셨다.
내가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고 커가는 손주들의 재롱을 보면서 내 곁에 오래오래 계셔 줄 거란 사실을 단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던 평소 밝고 생활력 강했던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나에게 너무도 큰 충격이었고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마땅히 갈 곳도 없던 그때, 양천구 신월동에 있던 고등학교 친구 3층 월세방에서 석 달 동안 먹고 자고, 일어나서 또자고, 낮에 자고 밤에도 잤다. 마치 자기 위해 사는 사람처럼 매일 잠만 잤다. 내일의 밝은 태양을 다시는 안 볼 것이라는 관속에 누운 이집트의 미라처럼.
그때 나는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며 다가오지 않은 시간들을 불안해하며 오히려 소중한 현실을 허비하고 있었다. 미래에만 매몰되어 자꾸 눈을 가리고 마음을 닫아 현재를 외면했다. 가장 소중한 현재를. 그게 우울증이었는지 무기력증이었는지는 아직도 확실하지 않다.
내겐 오직 현재만이 있고
현재만이 내 유일한 관심거리요.
만약 당신이
영원히 현재에 머무를 수만 있다면
당신은 진정 행복한 사람일 게요.
책 연금술사 중에서 (파울로 코엘료)
한심하게 잠만 자는 나에게 마음씨 고운 친구는 “단 한 번도 다 그러고 살아. 너만 힘드냐?” “그래도 살아봐 좋은 날 올 거야” 같은 어쭙잖은 충고나 너를 위해라는 라테 · 꼰대 잔소리는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속 터질 법도 했을 텐데 마음 넓은 친구는 그런 나를 꼴 보며 잘도 견뎌 주었다.
삶의 목표도 없고 즐거움은 더욱 찾을 수 없었던 그때 하루하루 기생하며 보내는 내 신세가 꼭 목적지 없이 이리저리 떠다니는 바다 위의 부표 같았다. 마음 줄 사람도 없었고 마음 붙일 곳도 없어 인생이라는 다리를 홀로 걷고 있었다. 외롭게 때로는 처절하게.
대학로 동숭아트센터에서 글쟁이 친구들을 만났고 노량진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찌어찌 힘든 시간들을 버텼고 지금은 바다 위에서 둥둥 떠다니며 밥 벌어먹고 살고 있다.
살다가 갑자기 길을 잃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견디거나 혹은 정확한 나침반을 챙겨 치열하게 살아내거나 해야 한다. 한 번뿐인 인생을 그냥저냥 살다가 죽음으로 날려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반 백 살을 산 지금 또다시 언젠가 인생의 목표를 잃거나 삶의 좌표를 잃을 날이 또 올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래도 나를 바로 알기 위해 애쓰며 인생의 재미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면 길을 잃을 가능성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의미 있는 것들을 하나씩 찾아내 보자. 열정을 가지고.
오늘도 카르페 디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