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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나비 Oct 11. 2021

미우면 말밥, 고우면 당근

당근 마켓서 만난 인연



아름다운 삶의 인연


삶의 귀퉁이에서 우연이란

이름으로 만난 우리지만

이토록 애틋한 그리움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늘 함께 할 수는 없지만

마음으로 지켜주고 바라보며

서로 행복을 위해 기도하는

배려있는 사랑으로

그림자와 같은 우리이고 싶습니다.

- 좋은 글-





episode 1 

생활 속 중고거래를 즐겨하는 편이다.  당근 마켓 거래에서 만난 선한 이웃들과 따뜻한 배려가 좋고 거래 후에 챙길 수 있는 쏠쏠한 돈벌이가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어 준다.

한 번쯤 당근을 통해 거래를 해본 사람들은 소소한 즐거움을 알 것이다.

     

최근 가을을 맞아 집도 정리하고 불필요한 물건도 처분할 겸해서 몇 건의 거래를 시작했다.

내놓은 상품들이 거의가 상태가 양호해서 별 어려움 없이 모든 거래가 마무리되었다.

 

판매한 물건 중 중탕기 판매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기관지가 약한 아들 딸을 위해 오래전 홈쇼핑에서 날개 돋친 듯 팔린 00 회사 중탕기를 꽤 비싼 가격에 구입해 놓고는 몇 번 쓰지도 않고 다용도 실에 수년째 방치하다 판매를 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오쿠 중탕기 판매글을 올렸다. 애들 어릴 때 잠깐 쓰고 실 사용 거의 안 한 깨끗한 중탕기를 판매합니다. 기관지 약한 자녀들에게 배와 도라지를 고아주세요. 애들과 함께한 추억의 물건입니다. 작동 잘되요. 꼭 필요하신 분만 연락 주세요 라고.


사진이 깨끗해 보였는지 아님 게시 글이 성의가 있었는지 구매자가 금방 나서며 예약을 걸어 달라고 했다.     

다음날 월요일 오후에 약속시간을 정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채팅창에 구매자가 제가 좀 바빠서 그러는데 물건을 제 쪽으로 가져다줄 수 있냐 묻길래 비번 인 데다 집안일과 책 읽는 거 말고는 딱히 할 일도 없어서 흔쾌히 그러마 하고 오후 2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구매자를 만나기 전 판매할 중탕기를 꺼내 깨끗이 씻고 뻑뻑한 곳에는 기름칠도 해주고 물건의 상태를 최상으로 만들어 놓고 집과 정 반대 방향인 곳으로 15분 정도 차를 몰아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구매자는 나보다 연배인 거 같고 앞머리도 많이 벗겨진 60대 초반의 남자였다.


어째 첫인상이 영 맘에 들지 않았다. 중고 거래를 몇 번 하면서 내가 터득한 관심 요법에 의할 때 이미 거래 불발 가능성이 농후했다. 왜냐면 (관상과 첫인상은 거의 빗나간 적이 없었으니까) 


도로 옆 식당 데크에서 평일 오전이라 사람도 없고 한적해서 정성껏 싸간 보따리를 풀었는데 이 아저씨 물건을 보더니 상태가 사진보다 안 좋네를 시작으로, 흠집이 심하다 콘센트가 지저분하다며 이것저것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어젯밤에도 8만 원에 내놓은 물건값을 만원만 깎아달라고 계속해서 조르더니 물건을 살 맘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계속 가격 태클로 나를 심하게 압박해 왔다.  

   

솔직히 나도 구매자의 행동들(말씨, 사람 대하는 태도, 물건에 대한 평가절하)이 이 세 가지 중에 한 가지라도 내 맘에 드는 게 있었다면 그까짓 거 만원 기분 좋게 깎아 주는 건 일도 아니었을 거다. 


하자 없는 물건을 계속해서 트집 잡고 물건값만 깎으려 드는 구두쇠. 거기다 출처 불명의 반말 비슷한 안드로메다 우주 외계어(?)가  괘씸해서 나는 그냥 말없이 보따리를 쌌다. 구매자가 당황하며  “왜 안 파시게?” 반말도 아니고 뭣도 아닌 외계별 안드로메다 언어를 쓰던 머리 벗어진 그분에게 점잖게 한마디 해주었다.


“글쎄요, 사람도 나한테 맞는 사람이 따로 있듯 이 물건 주인은 아저씨가 아닌 것 같네요.”

“뭐, 살 사람은 많으니까요.” 주섬주섬 물건을 챙기는 그 순간까지도 "젊은 사람이 빡빡하게 구네. 딱 만원만 깎아주면 좋겠구먼." 한다. 


‘에이 쉬는 날 이게 뭐람? 배달까지 했는데 속상하게. 정말 만원을 낮춰 내놓아야 하나?  터덜터덜 힘없이 돌아오는 차속에서  또 톡이 운다. 당근, 당근, 당근. 중탕기 팔렸나요? 아니요 거래 불발이라 귀가 중인데요. 그럼 이쪽으로 와 주실 수 있어요? 제가 몸이 좀 안 좋아서요.


젠장 오늘은 판매자인 내가 굴러다녀야 할 일진인 것 같고만. 투덜대며 또 그러마 하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그런데.......   


 

episode 2 

다소 맥 빠진 모습으로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50대 중반의 한 여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창문을 내리고 나는 신이 나서 외쳤다. "혹시 당근이세요?"

힘없이 들려오는 대답 “내 당근이에요.”  ^^ ( 이 거래는 되겠다 촉이 왔다) 

   

어디가 아프신가? 밥을 통 못 먹은 목소리네. 도로에서 아파트가 아닌 그녀가 사는 단독주택까지는 한 50미터 정도. 중탕기 무게가 제법 있어 들고 가기가 힘들 거 같아 친절하게 짐꾼을 자처했다. 앞서가는 그녀를 따라 걷는데 어째 얼굴이 낯이 익다. 어디서 분명히 봤는데.


“혹시 1~2년 전에 전용구장에서 영춘 형님과 같이 배드민턴을 치지 않았나요?” 눈이 동그래 지더니 “어머 어떻게 알았어요?” 한다. 아 역시~ 그랬다. 그녀는 틀림없는 순례 누나였다. 


건강하게 코트를 사슴처럼 뛰어다니며 가벼운 몸놀림으로 민턴 대회에 나갔다 하면 입상을 해서 클럽의 위상을 한껏 드높여주던 50대 중반의 인기 많던 레전드 민턴 선수. 출중한 민턴 실력뿐만 아니라 먹을 것도 양껏 싸와 전용구장에서 인심 넉넉하게 나눠주던 마음씨 고운 누이. 전순례.    


한동안 행방이 묘연해 클럽 회원들이 무척 궁금해했었는데 당근 거래 현장에서 만나다니 참 귀한 인연이로세. 세상일은 한 치 앞을 못 내다보는 게 인생이고 어느 구름 속에 비가 들었는지 모른다더니 그 건강하던 누이가 위암 판정을 받고 치료 중이며 홍삼을 달여 먹어야 해서 중탕기를 찾다가 나와 연결이 된 것이라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신기했다.  

     

어쩐지 첫인상에 핏기도 없고 야위었다 생각했는데 암이었구나. 워낙에 밝고 좋은 모습만 보여줬던 누이 인지라 코끝이 찡하고 울컥해졌다. 치료 잘하고 얼른 건강해져서 코트로 복귀하라고 덕담을 전하고 차에 올라탔다.  잠시 후 내 휴대폰에 당근 거래 후기가 떴다. 고운 그녀의 심성만큼이나 따뜻하고 이쁜 댓글이 주렁주렁.  

   

잠깐 사이 한건의 거래를 성사시키며 두 사람을 만났다. 한 사람은 만나는 순간부터 매너 없는 짓거리로 나를 짜증 나게 하고 분노를 유발했고, 다른 한 사람은 물건에 대해 가타부타 말 한마디 없이 깔끔하게 거래하고 고운 후기까지 보내 주었다. 거기다 가을꽃처럼 고운 누이는 잠깐 이었지만 건강하고 행복한 시절을 떠올리게 해 나를 기쁘게 해 주었다.

    

당근은 때로 내가 판매자가 되기도 하고 구매자가 되기도 하는 생활 속 이웃을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중고거래 장터다. 욕심만을 내세워 물건 값을 후려치거나, 시간 약속을 정해놓고 잠수를 타거나, 거래 현장에서 돈이 부족하니 깎아 달라는 사람도 있고, 거래 끝났는데 물건 하자 있다며 반품을 요구하는 별 괴상한 사람도 있다.

    

3년 가까이 당근 거래를 하면서 배운 점은 시간 약속을 잘 지키고 고운 말을 쓰면 생각하지 못한 선물이 종종 생기더라는 것. 현관문 앞 판매자가 걸어둔 주머니 속에 초고 파이나 요구르트 막대 사탕이 나는 정이요 라고 불쑥 튀어나와 웃으며 반겨주기도 한다.  


또 어떤 물건을 당근에서 구입할 때는 중고 물건을 산 거지 새 물건을 산 게 아니다 생각하면 속상할 일이 전혀 없었다. 욕심을 좀 내려놓자는 얘기다. 하자 없는 새 물건은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에 가면 천지삐까리이다. 거기 가서 사면 된다.  


편한 복장을 선호하지만 깔끔함은 챙기면서 거래장소에 나가 조금 양보하고 배려하며 거래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나면 술 마신 다음날, 맑은 백합 조갯국으로 해장한 것처럼 속이 개운하다. 이유 없이 행복하다.    


 9월 한 달간 내가 당근에 내다 판 물건들은 캠핑용 난로, 중탕기, 전자레인지, 입문용 로드 자전거등이다. 구입 당시 비싸게 주고 산 물건 들이라 판매 시 본전 생각이 안 난다면 그건 거짓말일 테고 정가표 없는 판매가를 적당하게 메겨놓고 아주 잠시 잠깐  긴장감 속에 낯선 누군가를 만나는 그 순간을 즐겼던 것 같다.


무엇보다 수익도 쏠쏠하고 베란다와 아파트 실내 공간도 넓어져서 당근에서 거래는 할수록 다다익선이 확실하다. 이래저래 “당근이세요?” 는 꽤 오랜 시간을 나와 함께 하며 일상의 소소한 기쁨을 선사해줄 것 같다.  


그나저나 순례 누이 몸은 좀 좋아졌을까?    

일교차가 큰 오늘 아침, 딸아이 학교 옆에 자리한 아담한 꽃집 작은 창가에 내 걸린 노란 국화꽃을 보자 고운 순례 누나 얼굴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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