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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나비 Nov 15. 2021

저절로 살아지는 삶

완주 송광사 템플스테이


             인연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인연일 줄 알지 못하고


보통사람들은 인연인 줄 알아도

그것을 살리지 못하고


현명한 사람은 옷자락만 스쳐도

인연을 살릴 줄 안다.


살아가는 동안 인연은 매일 일어난다

그것을 느낄 수 있는 육감을 지녀야 한다.


사람과의 인연도 있지만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이

인연으로 엮여 있다.


 - 피천득 -




휴무기간 1박 2일로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에 있는 송광사로 템플 스테이를 다녀왔다. 불자이기도 하고 평소 산사의 고즈넉한 풍경을 좋아하는 지라 시간 날 때마다 절에 자주 가는 편이다. 산사에서 하룻밤을 묵고 식사까지 해결해주는 템플스테이는 일상에 지친 사람들 에게 쉼을 선물할 수 있어 참 좋다.

     

10일 오후 4시. 전북 완주군 소양면에 있는 송광사에 도착하여 담당 보살님께 간단한 생활 수칙을 듣고 사찰을 한 바퀴 돌았다. 종남산 자락에 위치한 송광사는 평지에 위치한 절이다. 걷기에 부담이 없다.

      

사찰을 탐방하다 보니 그동안 몰랐던 의외의 문화재가 많이 보존되어 있었다. 일단 대웅전에 모셔진 세분 부처가 앉아있는 좌불. 현존 우리나라 소조 좌불 중에는 규모가 제일 크고 특이하게 다른 절에서는 볼 수 없는 불상사이에 목 패가 3개 자리하고 있었다.    

  

조선 인조 임금이 어지러운 민심과 피폐해진 재정을 회복하고자  송광사를 복원하면서 만들어진 목패라고 한다. 맨 오른쪽 입구에는 왕비의 목패, 가운데는 왕의 목패, 맨 왼쪽에는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의 목 패가 연꽃과 그림, 왕을 상징하는 용무늬로 장식된 불교미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유물이다.

     

조선 왕 중 똑똑한 아들과 며느리를 인정해 주지 않고 죽음으로 내몰았던 비정한 아비이며 청 황제에게 삼궤구고두를 올리며 굴욕적인 항복을 한 무능력한 왕 인조.

     

역대 조선왕 중 개인적으로 밥맛인 왕중 한 명이기도 하고 집권 당시 후궁들의 치맛폭에 휩싸여 뭐하나 제대로 한 것이 없던 왕으로 평가하는 지라 세 개의 목패중 가운데 목패에는 예를 올리지 않았다.


                  대웅전 삼존 불상 사이 나무패

               송광사 십자각  (종루)


산다는 게 그렇다. 나보다 잘나고 똑똑한 사람을 보면 인정하고 함께 가면 마음이 편한데 자꾸 험담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다 보면 내 마음속에 불길이 일고 그 불길이 종내는 나를 집어삼키는 시뻘건 화마가 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인생사 모든 비극은 실력자를 인정하지 않은 비루한 질투심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순리대로 살면 삶이 행복하다.

     

인조 역시 삐뚤어진 마음으로 아들을 질투한 순간부터  성군의 길을 버리고 재위 기간만 쓸데없이 길었던 어리바리 한 왕으로 전락한 것은 아니었을까? 신 문물을 받아들이고 능력 있는 소현세자와 강빈을 인정해주었다면 조선은 훨씬 더 발전되고 힘센 나라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현재 송광사에는 귀중한 보물이 네 점이 보존되어 있다.

범종 법고 목어 등을 품은 송광사 종루= 십자각, 문 입구를 든든하게 지켜주는 소조 사천왕상, 동서남북에 각기 다른 현판이 걸려있는 송광사 대웅전, 흙으로 빚은 소조 석가여래 삼불 좌상 등이 그것이다.

가을바람을 맞으며 사찰문화재를 공부하는 것도 재미가 있었다.  

            기도발이 센 지장전 야경


오후 6시 공양간에서 저녁 공양이 있었다. 공양간에 들어가기 전 저녁은 소식해야 하니 조금만 먹어야겠다 생각했다.


 마음과 다르게 음식 솜씨 좋은 보살님이 차려준  9가지 반찬과 된장을 묽게 푼 시래깃국을 본 순간 내 의지는 급격히 무너져 내렸다. 넘쳐나는 식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일은 안 하고 여물을 탐하는 한 마리 말처럼 폭풍흡입을 시작했다.   

   

'아니 절밥이 이렇게 맛있다니'. 일단 더덕무침부터  입속에 넣고 와삭와삭 씹자 청량한 향이 입을 통해 뇌 속 까지 퍼져 올라오는 그 황홀한 맛이라니.

    

집에서 흔히 먹는 두부조림은 달지도 짜지도 않고 딱 담백함이 좋았다. 단백질 섭취 탓인가 먹자마자 온몸에 근육이 빵빵하게 실해지며 건강해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머위장아찌. 적당히 절여져 새콤달콤 없는 입맛도 돌게 만드는 마법의 밥도둑. 군침이 좌르르 마음까지 달달해졌다.

     

이외에도 검은콩자반, 백김치, 갓김치, 배추김치, 묵은지 볶음, 버섯 호박 볶음, 맛있는 음식 중에서도  나를 가장 설레게 한 시래기 된장국.  

    

어린 시절 엄마가 큰 가마솥에 된장을 묽게 풀고 시래기를 성둥성둥 썰어 넣고 장작불을 지피기 시작하면 오래지 않아 새하얀 김이 폴폴 나며 시래기 냄새가 온 부엌에 가득해지면 냄새만으로도 나는 배가 불렀다.    

  

다 끓인 시래기를 큰 국자로 떠서 사기대접에 한 그릇 퍼주시던 울 엄마.

 추운 날 엄마가 끓여주신 시래깃국은 천상의 맛이었다. 오늘 내가 절에서 먹은 시래깃국이 딱 그 맛이었다.  

    

사찰음식의 특성상 고기가 들어가지 않고 푸성귀가 대부분이었지만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하며 깔끔한 음식들이 입맛을 돋우고 원기를 회복해 주는데 아무런 부족함이 없었다.

 

결국 넘치는 식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한식뷔페에서 쓰는 둥근 접시에 수북하게 머슴밥을 푼 다음 반찬들을 가득가득 쌓아서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한 그릇을 뚝딱했다.      

“보살님 한번 더 갖다 먹어도 됩니까?” 사람 좋게 생보살 같은 미소를 지으며 공양간 보살님께서 한마디 하신다 “사찰 밥이 맛있죠? 양껏 많이 드세요 ” 하신다.

   

종남산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가을바람과 청량한 산사 공기가 버무려진 탓일까? 정말 오랜만에 저녁밥을 배가 볼록하게 나오도록 먹고 게으른 백수가 되어 식사 후에 밤하늘의 별을 보며  평화롭고 온유한 저녁 산책을 마쳤다.  

 


            정말 맛있었던 사찰 밥 (후식은 과일)



전날 출동의 피로감도 있고 개인적으로 빌어야 할 소원도 있고 하여 큰스님들과 함께 드리는 저녁 예불은 불참했다. 대신 전국에서 기도발이(?) 세기로 소문난 나한전에 홀로 앉아 나와 삼생의 연으로 만난 모든 인연들을 위해 축원드렸다.


그렇게 침묵 수행 한지 30분 정도 지났을까?  젊은 스님 한분이 오시더니 간단히 몇 가지를 묻더니 독경을 하시며 예불을 시작했다.  

   

“스님 저는 나가볼게요. 방해되실 거 같아서요.”

“아닙니다. 계셔도 됩니다. 제 자신의 수행을 위해 기도하는 자리이니 부담 안 갖으셔도 됩니다.” 하신다.      

뭔가 불길했다. 지금 발을 못 빼면 잡힐 것 같고 어서 도망가라며 내 마음속 빨간 신호등이 긴박하게 깜박거리기 시작했다.


전혀 계획에 없었던 젊은 스님 과의 수행. 그날 저녁 나는 신실한 불자가 되어 무려 1시간이 넘도록 스님에게 잡혀 다라니경을 읽고 스님이 절을 올리면 눈치껏 같이 따라 하며 고행의 시간을 함께했다. 이름하여 108배.      

갑작스레 전개된 이 상황이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온몸에서 땀이 흐르고 숨이 가빠오며 나는 지쳐갔다. 계획에 없이 무지하게 힘든  108배를 올리며 “아이고 허리야, 아이고 무릎아” 끙끙대면서 ‘사바세계에서 사는 것 자체가 고해로다’ 하며 잽싸게 도망치지 못한 마음 여린 나 자신을 한없이 원망했다.


그날 나의 밤 축원은 고3 아들과 내 딸 서현이, 몸이 부실한 작은누나, 보령해경서에서 인연을 맺은 여러 후배들 재혁이와 상도, 하니, 희명, 민철. 목포 함정 동료들, 그리고 육군 대위 이규진 등등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항상 무탈하고 평안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했다.     


                                 꿀잠 잔 숙소


다음날 새벽 5시. 스님 네 분과  함께 템플에 참가한 거사 한 명, 보살님 한분 이렇게 총 일곱 명이 다소 쌀쌀한 법당에서 새벽 예불을 드렸다. 삼라만상이 모두 잠든 고요한 시간. 부처의 자비를 온 세상에 전파하며 고단하고 삿된 내 마음속 번뇌까지 모두 내려놓으며 진심 어린 예불을 드렸다.

     

역시나 맛있는 아침 공양을 마치고 한숨 자고 난 후 옆방 거사와 종남산이 마주 보이는 숙소 마루에 걸터앉아 커피 한잔을 앞에 두고  담소를 나누었다.  나보다 한 살 위 개띠인 그 거사님은 사업을 하는 서울 사람이었다. 아들이 수능시험 재수 중인데 작은 힘이라도 보태 주고 싶어 기도발 좋은 전국 사찰을 돌며 기도를 드리는 중이라고 했다.



삽사리 들과 산책 중인 스님


‘어제저녁 예불과 오늘 새벽 예불 시간 그토록 간절하게 염원하고 축원하더니 그 끝에는 자식이 있었구나’ 자식이 뭔지 순간 가슴팍이 뻐근해졌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또래여서 였을까? 우리는 그 아침 오래 만난 친구처럼 세상사는 모습과 사업과 직장 이야기, 인간관계 등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가 나에게 불쑥 요새 뭘 하며 보내냐고 묻길래 ”아 저는 서툴지만 브런치에 글을 씁니다. “ 나직하게 얘기했다. ”저는 외국어를 공부합니다. 은퇴 후에 넓은 세상에 나가 살고 싶거든요. “

    

20대부터 일찍 외국에 나가 사업을 한 덕분인지 외국어도 잘하고 특히 동남아 상황에 전문적인 탁월한 식견을 가지고 있었다. 시베리아 횡 단철 도을 타며 유럽여행을 꿈꿔본다는 그와 함께한 시간은 템플의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아들만 둘인 거사는 자식이 자라면 이것저것 간섭하기보다는 인생에 도움이 될만한 인연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빠가 해야 할 일인 것 같다고 했다. 20년 넘게 공직생활만 해온 나보다는 확실히 모든 면에서 바운더리가 넓었다. 배울 점이 많아 또 좋았다.   

   

낯선 사람과 우연히 만난 이 사찰에서 함께한 두 시간은 분명 유익한 시간이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함께 공양을 하고 축원을 하게 된 소중한 인연에 감사했다. 짐 정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정문 주차장에서 우린 서로 악수를 나누며 헤어졌다.  

    

그때 그가 차 트렁크에서 롤빵을 꺼내 주면서 한마디 한다.

“인연 있으면 또 요. 조심해서 잘 가시고. ” 내미는 따뜻한 손을 보고 있자니  '사업가는 곧 장사치' 라는 고정관념이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진심으로 그의 사업번창과 아들의 수능 합격을 빌어주었다.  

     

이래저래 이유 없이 순간순간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짜증과 화, 분노, 같은 삿된 마음들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고추보다 매운 인생의 고단한 짐들을 많이 내려놓을 수 있어 행복했다.

     

담백하게 맛있는 사찰음식과 송광사에 보존 중인 사찰 문화재에 대한 지식을 쌓고 좋은 인연까지 얻게 되었으니 이번 템플 스테이는 정말 더할 나위 없었다.   


        댓돌 위에 놓인 스님의 털신    


지금 이 순간 수많은 스트레스와 꼬인 인간관계, 불규칙한 식사와 수면 등으로 힘든 모든 이들에게 전라북도 완주군 송광사 템플스테이를 권한다. (절밥이 정말 맛있습니다 ^^ )  

   

송광사에서 차로 5분 거리에는 방탄이 다녀간 오성 한옥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하룻밤을 주무시고 풍경 좋은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 한잔을 주문해서 쏟아지는 위봉폭포를 바라보실 것을 추천한다.


싸늘하게 식어가던 삶의 온도가 다시 뜨겁게 불타오를 수도.

(불타오르네!! F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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