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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나비 Nov 20. 2021

전어와 함께 그녀가 돌아왔다

쁘띠 진상을 퇴치하다



말은 인간관계를 맺어주는데

 ‘필요악’이다.

칭찬의 말 한마디가 절망에 빠진

사람을 구할 수 있으며

 나쁜 말 한마디가

죽음으로 몰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중요한 말을

그대들은 어찌 함부로

사용할 수 있겠는가.

             - 법구경-



높아진 하늘과 황금색 들판, 감나무 끝에 달린 감이 주홍빛으로 물들어 가고 대추가 붉은빛을  뿜어내면 가을은 풍요로움을 더해간다. 이때쯤 은빛 전어도 우리 곁에 머문다.    

푸른 수족관에 반짝 비늘을 뽐내며 힘차게 헤엄을 치는 전어를 보고 있자면 아름답다 못해 황홀하기까지 하다.     

구운전 어는 하도 고소해서 깨가 서말이고 집 나간 며느리가 돌아오며, 가을 전어 한 마리가 햅쌀밥 열 그릇 죽인다는 등 참으로 멋진 표현이 많다.

    

서천 홍원항 앞바다에도 가을이면 어김없이 전어 배들이 연안선망의 허가를 얻고 전어잡이를 시작한다.     

빠르면 8월 중순부터 전어축제를 시작하는 10월을 거쳐 11월 초순까지 전어를 잡는다.

어느 해에 는 전어가 너무 잡혀 값이 싸서 그냥 버린 적도 있고 어느 해에 는 너무 잡히지 않아 금값인데 전어 꼴도 못 봤다며 아쉬워하는 어민들도 있다.  

    

보통 한 철, 전어 배 허가를 얻는데 약 3억 정도가 필요하다. 문제는 서천 앞바다에서 전어를 잡기 위한 3~7톤 사이 연안선망 들이 허가를 득하고 조업을 해야 하나 여러 이유들로 허가 없이 야밤에 살짝 나가 조업을 하면서 각종 민원신고가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니 파출소에서 일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입맛 돋우는 전어가 마냥 이뻐 보이지만은 않는다.   

  

무허가 조업 선중 수년째 허가를 득하지 않고 전어잡이를 하면서 각종 민원신고를 넣게 만드는 골치 아픈 배 00호 여자 선주가 한 명 있었다.    

작년 가을 그날도 주간에 허가 없는 00호가 지금 전어를 잡아와 항포구에 하역하고 있으니 적발해 달라는 신고가 들어왔다.  

   

인력감축으로 출장소가 폐쇄되어 신고가 들어온 포구까지는 순찰차로 아무리 빨리 가도 15분은 족히 걸리는 거리다.

팀원 3명과 함께 잽싸게 튀어나가 항포구에 도착하니 물건을 하역하고 있는 선원들은 보이는데 선장 어딨냐고 물어도 대답은 없고 헛소리를 하면서 단속 경찰관의 힘을 빼놓고 있다.   

    

어렵게 선주를 물색해 만나보니 아담한 키에 하얀 얼굴을 한 50대 후반의 여자다. 어선에서 물건 하역하는 장면과 활어차 수족관 속 전어를 사진 촬영하고 선장이 어디로 사라져 보이 지를 않으니 현장 상황이 종료되고 나면 저녁에 파출소에 다녀가시라 얘기했다.     

                                   쁘띠 진상 =개진상


밤 열 시가 넘어도 00호 선주와 선장 두 사람도  연락이 없었다. 의도적인 시간 끌기임을 직감하고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오시지 않으면 여러모로 시끄럽고 일이 커질 수 있으니 얼른 와서 조사받고 끝내자고 연락했다.   

  

밤 12시가 다되어 문제의 선주와 선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해마다 반복되는 레퍼토리라 감흥이 없다.  돈이 없다. 빚밖에 없어서 허가를 못 샀다. 등등 수년째 우려먹고 있는 그녀의 언행이 몹시 못마땅했다.


현장에서 불법운항을 한 사람은 선장인데 선주가 나서서 계속 얘기를 하면서 조사의 흐름을 끊고 있었다. 조사를 하던 신 경장 옆에서 지켜보던 내가 결국 한마디 했다.


“맨날 먹고살려고 그러는데 왜 단속하냐고 하시는데 다른 분 들도 대출받고 허가받아서 조업해요. 그분들이라고 돈이 넘쳐나서 돈다발 쌓아놓고 사는 거 아니잖아요?”  

   

사실, 조업 시즌이 되면 허가 있는 사람들이 허가 없이 조업하는 사람들을 곱게 봐주지 않는다

살면서 경쟁이란 동등한 선에서 출발을 하고 목적지를 가야 의미가 있지 누군 봐주고 모터 신발 신고 중간부터 달리기를 하면 그게 어디 공정한 게임이 되겠는가 말이다. 적어도 법집행은 공평하고 합리적 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 선주란 여자 보통내기가 아니다.

“아니 나만 그래요? 지금 00항에 허가 없이 조업하는 전어 배가 한두 척도 아니고 9척이 넘는데 왜 나만 고 그래요?”


선장이 도망칠 수도 있는 거지, 우리 아들이 경찰관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는 얘기까지 하면서 임의동행 어쩌고 잘난 척을 무지하게 해 댔다. 하 진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일이다. 환장하겠다 정말.

  

 밤 열두 시가 넘은 시간에 곱게 화장을 하고 차려입고 와서 자기 할 말은 다하는 얄미운 여자.

그랬다 그녀는 맨 정신이 박힌 경찰관이 상대하기 힘든 상대. 바로 쁘띠 진상녀였다. 한마디로 강적 출현이다. 

     

초저녁 에는 뭘 하고 있다가 이 늦은 시간에 파출소를 방문해서 공감 1도 안 되는 묘한 논리를 펴며 억지를 부리고 있는 진상녀. 적어도 내 생각에는 이 구역에 정신 나간 사람으로 보였다.

    

신 경장이 조사를 받다가 열이 받았는지 바람을 쐰다며 잠시 밖으로 나갔다.

“내일부터 파출소 경찰관이 다 같이 정보 공유해서 올해 00항 무허가 전어잡이 배 9척을 전부 단속하겠습니다.” 다른 배들이 왜 단속하냐고 물으면 00호 선주님이 우리만 불법하는 거 아니니 다 같이 단속해달라고 해서 하는 겁니다. “라고 말하겠습니다.

    

이미 분노 게이지가 상승해서 100도를 훌쩍 넘어 하늘로 솟아오를 지경이었다. 경찰관의 본분을 다하겠다 그녀에게 최후통첩을 날렸다. 동네 사람들의 눈총과 미움받을 것이 겁이 났을까? 그때부터 고분고분 해지더니 수사에 협조를 하고 선장도 진술서를 술술 쓰기 시작했다.

   

결국 새벽 1시가 넘어서 조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쁘띠 진상녀를 보며 생각했다.   

벌어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불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있다. 산다는 것은 무거운 등짐을 지고 수없이 많은 고갯길을 넘어가야 한다는 것도 안다. 때로는 법에도 눈물은 있어야겠다 생각도 해봤다.

어쩜 저리 후안무치하고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가 없을 수가 있을까?

   

단속 경찰관도 사람인데 조곤조곤 나의 입장을 설명하고 선처를 부탁했더라면 조사하는 우리들도 마음 상하지 않았을 것이고 선주나 선장도 정상참작은 되었을 텐데 참 안타깝구나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베어 나왔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 했는데 그 밤 그녀의 고운 입에서 나온 소리는 독하디 독한 청산가리 같아 여러 사람을 아프게 하고 상처 주었다.    

    

100일 정도 전어 조업 시즌에 쁘띠 진상녀는 우리에게 3회 적발되었다. 수산업법과 수산자원관리법, 행정처분으로 과태료까지 받은 것으로 기억한다. (아주 질긴 악연이었다.)  

  

                             출항 중인 어선


우리는 그 여름과 가을 사이 실제로 00항에서 허가 없이 조업을 일삼던 전어 배 9척을 경찰관 총원이 합심해서 전부 적발해 버렸다.  물론 현장에서 욕을 먹고 지역사회에서 고립을 자처하는데 가만 둘 것 같냐는 무시무시한 협박도 받았지만 굴 하지 않았다.     


수년 전부터 많은 소장 들이 부임해 와도 지역사회라 먹고살라고 손을 대지 않았던 일. 이때만큼은 화끈하게 준엄한 법의 심판을 내렸다. (물론 쁘띠 진상네를 적극 홍보하면서) 

   

김수현 작가님은 그랬다. 쁘띠 진상들을 너그럽게 사랑하라 하셨지만 생보살이 아닌 나로서는 언감생심 아직은 범접할 수 없는 신의 세계가 분명하다. (적어도 속 좁은 나로서는)    


올해도 여전히 홍원항 내 횟집 수족관에는 싱싱한 전어 떼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이쁜 전어가 마냥 곱게만 보이지 않는 것은 즐기는 여행객의 입장이 아닌 단속하는 경찰관이라 그렇겠지.  

  

운이 나빠(?) 몇 년 후 파출소장으로 근무하게 될지라도 결단코 쁘띠 진상 그녀 만큼은 만나고 싶지 않다.

으~ 싫다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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