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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나비 Nov 30. 2021

함께라서 좋은 친구들

잃어버리지 않은 30년

살다 보니

돈이 많은 사람보다

많이 배운 사람보다

마음이 편한 사람이 훨씬 좋더라.


살아보니

돈이 다가 아니고

잘난 게 다가 아니고

많이 배운 게 다가 아닌

소박한 게 제일 좋더라.


살아온 동안

사람 귀한 줄 알고

모든 걸 내 탓으로 돌리고

마음 비우고 낮은 자세로

베푸는 사람이 최고더라.




저번 주 금요일 정말 오랜만에 34년을 거슬러 올라가 중학교 절친 들을 만났다.

먹고살기가 바빴는지 통 연락이 되지 않다가 어찌어찌 연락이 돼서 절친 3명과 여자 동창생 1명, 나, 이렇게 다섯 명 이서 수원 성대역 가까이 있는 고깃 집에서 만남을 가졌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두 친구는 실업계인 공고를 갔고 나와 또 다른 친구는 공고를 떨어져 인문계를 지원했다.

뭐든지 귀하고 없던 그 시절. 시골 살림이야 뻔해서 우리들은 산업역군의 큰 꿈까지는 꾸지 않았으나 어린 마음에도 가정 살림에 보탬을 줘야 한다는 걸 자연스레 터득하여 실업계를 지원했던 거 같다.

지금은 마이스터고로 불리는 그시절 실업계 공고는 은근 커트라인이 높았다.

      

고등학교 입학원서에 하향 안정지원을 한 친구 두 명은 공고에 합격을 했고 다소 낮은 점수로 무리해서 광주 시내에 있는 공고를 썼던 또 다른 친구와 나는 보기 좋게 낙방했다.

      

실업계를 간 두 명의 친구는 고등학교 1학년 17살에 마지막으로 보고 꼭 34만에 다시 만난 것이다. 세월은 무심하게 잘도 흘러 십 대의 풋풋한 소년들을 어느새 오십이 넘은 중년으로 변모시켜 술자리에 소환시켜 놓았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별로 늙지를 않고 살도 많이 붙지 않아 한눈에 봐도 딱 내 친구들이라는 사실이었다.   


   

                                        추억은 소리를 타고


술이 들어가자 자연스레 시간은 중학교 2학년 열다섯 시절로 돌아가 유치찬란한 첫사랑 얘기에 진심인 듯 다들 열을 올리고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첫사랑과 짝사랑의 주체가 분명 친구인데 본인은 절대 내가 먼저 여자 동창생 00 이를 쫓아다닌 적이 없고 00 이가 자기를 죽자고 쫓아 다녔다며 목청 높여 내 기억과 엇갈린 주장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감성이 여린 탓인지, 옛 물건을 좋아하는 탓인지 희안하게도 나는 오십 인 지금에도 남녀공학 남녀 합반이었던 열다섯  그 시절 일을 비교적 또렷하게 거의 다 기억하고 있는 편이다.

      

평소에는 기억력이 1도 없어 승진시험을 보면 번번이 낙방을 하고 건망증도 제법 심해져서 리모컨을 서랍에 넣어놓고 찾거나, 마시던 커피를 욕실에 두고 어디다 뒀는지 도통 기억이 나질 않아 딸이 찾아주는 일이 다반사다.  

    

이런 내가 과거의 일을 그것도 34년 전의 일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건 거의 불가사의한 일이다. 현대 의학 으로도 전혀 설명할 수 없는  불치병 같기도 하고 과학으로 검증  할 수 없는 이상한 초과학현상이라고 해두자.

   

암튼 우리들은 고깃집에서 술과 함께 장장 6시간 동안 웃고 떠들며 유쾌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자리를 옮겨 마침 수원에 와있던 또 한 명의 시골 친구까지 맥주집에 동석을 해서 모임은 이제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이 나이가 되면 자의든 타의든 동창회를 한번쯤은 참석을 하게 된다. 그 자리에서 돈지랄을 하거나 과거의 상처를 후벼 파거나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거지 같은 추억을 소환하여 오랜만에 어렵게 만든 정다운 모임을 기어이 파투 내는 얄미운 빌런들이 꼭 한명씩은 있다.


심한 경우 친구들에게 자동차 나 정수기 영업을 하는 예의 없는 친구들도 있다. 친밀함을 가장하여 자신의 잇속을 챙기려는 얍삽한 부류들. 그런류 의 빌런들은 10년 혹은 20년 이상 못 봤던 동창생들의 소중한 추억과 시간들을 한순간에 와장창 박살을 낼 수 있는 악마의 힘을 가지고 있고 자신들로 인해 좋은 자리가 다시 성사될 수 없음을 아쉽게도 잘 알지 못한다.  

    

다행히 이날의 절친들은 서로를 배려하는 고운 심성들을 가지고 있어 대화는 물처럼 잔잔했고 얼굴 표정들은 해바라기처럼 밝아 시종일관 만남이 유쾌하고 즐거웠다.  

    

물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한테 시시콜콜 마음속 깊은 얘기까지 다 하지 못한 말들도 있겠지만 그날의 만남은 딱 거기 차지도 넘치지도 않은 중간. 기울지 않아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일에 있어서나 사람을 대함에 치우침이 없이 평상심을 가지는 중용. 넘치지도 모자람도 없는 사유의 평형은 나이를 더해감에 필생의 동반자로 마음 깊이 갈무리하고 함께 해야 할 필수 덕목임을 다시 한번 깊이 깨달은 순간이다. 뭐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자정이 지나 새벽 1시가 넘은 시간. 서울 산다는 사업하는 절친이 대리를 불러 집에 가야 한다기에 배웅을 나갔는데 주차장에 비싼 외제차가 턱 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이름하여 페라리.


시가는 대충 3억 정도라고 하는데 공직자인 나는 솔직히 차에 대해 관심도 없고 굴러다니면 타고 다니는 편이라 성공의 잣대를 차에다 제단해 본 적은 없다. 돈은 먹고 죽을래도 더 없고 ^^


대신 내 집 어느 공간에 조그마한 서재가 좀 있었으면 좋겠다. 커피도 내리고 음악도 같이 들을 수 있는 소박한 나만의 공간이.

      

TV 드라마에서 보면  이 차를 끌고 키 185cm 이상 되는 남주가 자동차 문을 위로 열어 주면서 아름다운 미인에게 멋지게 데이트를 신청하는 장면은 몇 번 보기는 했다만.     

주변에 있던 친구들이  다들 난리가 났다. 오우 ~ 빼라리~~  드라마에서나 봤던 차를 실제로 본 친구들은 돌아가면서 대리기사가 오는 동안 뒷좌석에 합석 해봤다. 차가 참 좋다 제값을 하는군. 등등 하하~  

     

그렇다. 내 친구 위출세는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됐다. 시골 촌놈이 멋지게 성공을 한 것이다. 이 친구를 만나기 몇 달 전 사실 강남에서 인테리어를  해서 큰돈을 벌었다는 얘기는 간접 소식통을 통해서 이미 알고 있었다.     

만나기 이 주일 전 전화통화가 되어 수원서 꼭 보자는 약속을 잡아 놓은 후에도 2시간 넘게 기차를 타고 어렵게 시간을 내서 수원을 갔는데 돈 많은 친구 때문에 행여 속이나 상하지 않을까? 속 좁은 내가 친구를 질투해 마음 불편해지면 어쩌나 살짝 걱정도 했었다.   

   

나의 쓸데없는 걱정과는 달리 친구는 근사하게 나이 들어가고 있었다. 얼굴도 많이 하얘지고 적지 않은 술값도 티 안 내고 살짝 계산하는 배려심도 갖추어 세월에 걸맞게 잘 익은 대추처럼 반질 반질 붉고 고운 빛을 띠며 잘 익어 가고 있었다.   

  

페라리를 보기 전 이미 친구의 젠틀한 인성을 보고 들은지라 귀가하는 친구를 보며 친구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사업이 앞으로도 쭈욱 승승장구 하기를 진심으로 빌어 주었다.


하느님
제게 많은 친구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누군가의 친구가 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친구가 있으므로
아름다운 세상에서
우리가 주고 받는
일상의 평범한 몸짓과
조그만 배려가 담긴
마음의 표현들이
사실은 사랑인것을
기억하게 해주소서
무엇을 자꾸 요구하기보다는
이해부터 하려는 넓은 마음이
우정을 키워 가는 사랑임을
다시 기억하게 해주소서     


다음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기차는 잘 탔냐? "오랜만에 상경한 니 덕분에 좋은 친구들과 다 함께 얼굴을 볼 수 있어 너무 즐거웠다."는 살가운 카톡들을 확인하면서 내가 참 복이 많은 사람이네 싶었다.

      

34년의 세월이 지났어도 다들 반듯한 심성과 상대방에 대한 따뜻한 배려, 곱고 차분한 말씨를 갖추고 있어 '이렇게 다들 아름다운 모습으로 잘 살고 있었구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설렘과 행복감에 심장이 마치 풍선처럼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친구들! 고맙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오래도록 다들 건강하자.

나는 결코 30년을 헛되이 잃어버린 것이 아니었다.

    

그나저나 골프를 어찌한다. 열심히 연습하라고 성화인데 난 아직 배드민턴이 더 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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