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 중순부터 12월 24일까지 약 40일간 우리 함정은 부산정비창으로 함정 수리를 다녀왔다.
일종의 정기수리인데 각 팀별 (기관, 항해, 안전, 장포) 수리 개소를 제출하고 정비창 기술팀과 협의하여 수리일정을 잡고 낡고 노후된 부분들을 정비한다.
이번 수리는 기관 엔진을 수리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함정 1척을 두 팀이 나누어서 계속 돌리다 보니 사람은 휴식 시간이 길어 좋은데 기계는 쉼 없이 거의 계속 돌아가니 아무리 기계라도 힘이 들다고 여기저기서 경고등도 들어오고 아프다고 계속 신호를 보낸다. 작년에 갔다 왔다는데 혹사를 시키다 보니 수리 주기도 그만큼 짧아지게 된 것이다.
상가대에 올라간 함정
목포에서 출발해 15시간 운항을 해서 부산 사하구 다대포 정비창에 입창 하던 날, 그리고 배 밑에 붙은 조개와 어패류들을 제거하고 선저부분 페인트 도색을 위해 상가대에 올리던 날, 부산의 날씨는 고양이가 하품을 하며 늘어지는 4월의 봄날처럼 무척이나 포근했다.
한낮의 기온이 영상으로 치솟아 반팔을 입고 일하는 동료들도 있을 정도로 서해안에서 주로 겨울을 보내온 나로서는 따뜻한 남쪽나라의 별난 햇볕이 영 적응이 되지를 않았다.
정비창의 하루 일과는 오전 9시부터 일을 시작해 오후 6시까지 각 파트별 이미 제출한 수리 목록을 토대로 정비창 기술자들이 함정을 방문해 낡은 것은 해체하고 망가진 것은 수리를 하고 새로 제작할 것은 제작하면서 달력에 빨간 날을 빼고는 수리기간 동안 쉼 없이 진행되었다.
내가 속해있는 안전팀은 페인트 도색이 주요 업무라 바닷물에 찌들어 녹고 지저분해진 부위를 약간의 청락 작업을 병행해 녹을 제거하고 청지를 바르고 본 페인트를 바르는 일련의 작업공정을 거치면 한 작업이 끝이 난다.
세월이 먼지에 쌓여 낡고 지저분해진 세면장의 지저분한 떼들을 제거하고 새롭게 백색으로 단장을 해놓으니 맑은 물로 세수를 시켜놓은 아기의 고운 얼굴처럼 세면장 안이 한껏 화사해졌다.
한 개소를 정해놓고 쭈그리고 앉아 청락 작업과 도색작업을 몇 시간씩 하고 나면 허리가 뻐근하고 페인트 냄새 때문에 머리가 띵 할 때가 많다. 산업재해 까지는 아니지만 노동의 강도가 만만치 않다.
낮시간 힘든 일과를 마치고 저녁이 되면 다대포 인근에서 동료들은 가벼운 치맥과 당구 등으로 하루의 피로를 풀기도 한다.
코로나 시국에 맞춰 인원 제한과 행동수칙 등은 철저하게 준수하고 정비창 야간 통행금지 시간도 잘 지키면서 생활했다.
가끔은 수리 개소를 내가 꼭 필요해서 이건 해야겠다 싶어 의뢰를 하면 정비창 기술자들이 일단 타당성을 타전해보고 이게 꼭 필요한 수리인지 분석한 다음에 거를 거는 거르고 꼭 필요한 것만 해줄 때가 종종 있다.
정비창에서도 수리에 필요한 부품이 단종되거나 자체 해결이 불가한 부분은 맞춤 수리가 불가하다. 이럴 땐 어쩔 수 없이 수리 목록을 취소하고 개소를 맞춰 문서를 정리해 놓아야 한다.
이런 걸 보면 사는 내내 어디에도 완벽한 100퍼센트는 존재할 수 없지 않나 싶다.
인간관계와 업무성취도, 경제적 문제 해결 등등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든 면에서 적당히 부족하며 약간은 비워두고 숨 쉴 공간은 조금 남겨 두는 생활 그게 잘 사는 삶인지도 모르겠다.
톱니바퀴처럼 빈틈없이 너무 완벽하게 맞아 돌아가는 일상을 추구하다 보면 남 보기는 좋은데 인간미가 없어 보이고, 또 너무 여유롭게 편한 것만 찾다 보면 상황과 일이 엉망으로 흘러가 얻어지는 게 하나도 없을 것 같고.
딱 중간 치우침이 없는 중용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인생의 덕목. 어려워도 실천하고 몸에 익혀야 할 각자의 인생의 모토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덤벙대는 성격은 세월이 흘러도 쉽게 변하지 않아 이번 수리를 가서도 B팀이 수리 중에 청소를 전혀 하지 않았는지 함정이 온통 먼지 범벅이라 함정 물청소를 해야 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물 호수 입구 사이즈와 물공급 배관 연결 커버링이 사이즈가 서로 맞지 않아 호스 끝을 칼로 도려내고 도려낸 호스를 청수관 끝에 억지로 끼워 넣어 부드러운 고무튜브로 묶은 다음 꽤 높은 위치에 올라가 있는 상가대 위 함정 물청소를 시도했으나 수압도 약하고 애써서 묶어놓은 고무줄이 터져버려서 결과적으로 실패.
이때 정말 어이없게 전혀 예기치 못한 불상사가 일어났다. 이 작업을 하다 힘껏 당겨 묵던 튜브 줄이 끊어져 나 스스로 왼손으로 왼눈을 쳐 눈에 핏줄이 터지는 어이없는 사태가 발생해 왼쪽 눈에 큰 부상을 입고 말았다.
마치 경기를 하기 위해 링에 올라간 복싱선수가 상대 선수에게 강하게 눈을 얻어맞은 것처럼 왼쪽 눈이 온통 붉게 물들어 몹시 보기가 흉했다. 쪽팔리기도 하고 스스로 조심성 없는 부주의를 탓해 봤지만 뒤늦은 후회였다.
한 달이 지나도 눈은 라식 수술을 다친 눈에 백열등 불빛이 주기적으로 반짝이는 증상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 현상 때문에 아직까지 야간 운전은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안과를 들락거리며 나이를 먹을수록 몸을 조심스레 써야 함을 몸소 느끼게 된 씁쓸한 날들이었다
.
예기치 못한 사고로 몸이 불편하니 쓸데없이 부질없는 생각들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기계는 고장이 나면 고치기도 하고 망가진 부속은 갈아 끼우고 펑크가 난 부분은 때우고 메꾸면 티 안 나고 거의 새것처럼 복원이 된다. 팔팔해진다는 얘기다.
사람의 몸과 마음은 어때? 정교한 수리공들이 어루만져도 수많은 상처들로부터 회복이 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고 평생 노력해도 잊히지 않는 아픈 상처들로 인해 영원이 고쳐지지 않는 무거운 치명상 들도 많다.
삼국지에 나오는 화타나 편작 같은 희대의 명의들. 아무리 심하게 뒤틀리고 고장이 난 기계들도 감쪽같이 수리해 주는 일류 수리공들이 있는 것처럼 우리 사는 세상에도 일류 마음 수리공들이 좀 많아졌으면 좋겠다. 아픈 상처들과 마음을 티 안 나게 감쪽같이 수리해 주는 일류 마음 수리공들.
화 안 내는 그 얼굴, 짜증보다 부드러운 미소, 따뜻한 말 한마디, 커피 한잔, 배려와 토닥임
많이 아프겠네 하며 말없이 안아주는 포옹, 가족과 동료에게 이런 마음을 조금만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은 일류 마음 수리공이다.
친밀함을 가장한 가스 라이팅, 가까운 가족으로부터 받은 마음속 깊은 화상, 경쟁사회에 내던져 진채 회사 동료들의 이기심과 무심하게 던진 말한마디에 깊이 베인 상처, 어린 시절 예상치 못한 불행한 사건들로 평생 지울 수 자물쇠를 꽁꽁 걸어 숨겨놓은 깊숙한 트라우마 들.
어떤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숨지 않고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내면의 자신감을 회복시켜 줄 수 있는 그런 일류 마음 수리공들이 넘쳐나는 사회. 그리하여 이 땅의 건조하고 태석한 매일의 일상들이 좀 더 촉촉하고 따뜻하고 평화로워질 수 있기를 나는 날마다 꿈꾼다.
오늘 22년 해양경찰 정기 승진시험 결과 발표가 있었다. 바쁜 와중에도 학업의 열정을 태우며 밤잠을 아껴 열심히 공부해서 합격한 사람이 있는 반면 최선을 다했으나
결과가 좋지 않아 속상하고 의기소침해질 수밖에 없는 합격자보다 많은 불합격한 나의 동료들에게 승진시험 탈락으로 마음을 조금이라도 다친 그들에게 따뜻한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최선을 다했으니 그 자체로 빛나는 시간이었고 충분히 아름다운 날들이었으니 너무 안타까워하시지 말자고.
그나저나 작년 정기수리 40일을 마치고 간신히 4박 5일 한 출동 뛰고 엔진이 또 고장이 난 상태라 다시 부산정비창에서 최소 45일을 머물러야 하다니 큰일은 큰일이다. 설 명절에 집에 갈 일도 보통일이 아니고 대중교통 표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가족을 자주 볼 수 없음은 물론 경제적인 타격도 클 것 같고 추운 날씨와 코로나 때문에 무엇보다 일과 후에 마땅히 할 게 없어 이게 제일 큰 고민거리인 것 같다.
오늘도 하루 일과를 마치고 부산정비창 함정 생활실에서 글을 쓰며 간절히 기도드린다. 하루빨리 기관수리가 마무리되어 그리운 내 고향 목포로 무사히 귀환할 수 있게 부처님의 원력과 가피력을 내려 주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