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오랑 Jan 30. 2023

#시가 있는 겨울(39)-구룡포축항

      구룡포축항  

                    재환   

달이 제 임무를 마칠 즈음

당신은 고무장화를 싣고 

구룡포축항에 나타납니다 

처진 어깨와 구부정한 허리를

휘감아 도는 물안개가

오늘따라 당신의 발걸음을 무겁게 합니다

새우미끼가 끼워진 바늘보다

더 날카로운 새벽바람이 기승을 부리지만 

당신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작은 고깃배의 시동을 겁니다

이마에 깊게 파인 주름과 

밀려오는 파도의 깊이가 닮아갈 즈음

당신의 간절함을 아는지

펄떡이는 생명들이 고깃배를 마중합니다

당신만큼이나 나이를 먹은 그 배와

당신이 뿜어 대는 날숨이

물안개가 된 그날 새벽

구룡포포구를 나선 당신의 고깃배는 

늘 그렇듯이 동해로 띄워졌습니다

그날따라 호기롭게 달려가던 당신의 배는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했고 

나는 오늘도 그 포구에서 당신을 기다립니다.          

작가의 이전글 #시가 있는 겨울(38)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