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오랑 Mar 23. 2023

#시가 있는 봄 (62)- 굴, 자네는 어디 출신인가

굴, 자네는 어디 출신인가

                        재환

물길이 들고나는 길목

가리비와 조개껍데기에 의지한 체 시들시들 조는 한낮

카사노바는 남해와 서해 여기저기를 탐색한다

애 띤 추위가 스물스물 피어오르는 11월이면

남해의 하얗고 통통한 굴이 뱃전으로 툭툭 뛰어오른다

어부의 노동요가 어느새 양식업자의 흥으로 바뀌는 오후

중얼중얼 양식이라기보다는 자연 닮은 굴을 캐낸다 

굵고 실한 놈들은 물속에서는 제 할 일을 다했다는 듯

얼굴 내밀고 깊은 날숨을 내 쉰다

어부가 지나간 고랑마다 초겨울이 내는 길인지 

인고의 세월이 내는 길인지 하얗게 길을 연다 

그래 이쯤이면 바다의 우유라는 훈장을 받아도 무방하다

흰 옻을 벗어던지면 어떻고 입고 있으면 또 어떠랴

남해가 싫증 날 즈음 서해의 줄 선 꼬챙이들이 반긴다

서해 갯벌의 굴들은 힘든 성장 통을 겪는다

물이 들어올 때는 먹지만, 물이 나갔을 때는 굶는다

마치 어머니의 태반과도 같은 갯벌이다

굴은 이력서를 들고 스무 군데도 더 기웃거린 

호남청년, 영남 청년들에게 한 끼 찬거리가 될 것이다

적어도 그 밥상 위에서는 ‘자넨 어디 출신인가’ 묻지는 않겠지.     

작가의 이전글 [주재기자에서 대기자 되기]-<14> 조폭계보 정도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