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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오랑 Mar 25. 2023

[주재기자에서 대기자 되기]-<17> 촌지와 접대

16. 촌지와 접대

기자생활을 하다 보면 회의적인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 같은 경우 대략 5년 여가 지난 시점이었다. 

그 결정적인 동기는 내가 어느새 속물이 되어가고 있다는 실망감 때문이다.

바로 촌지 때문이다. 어느 날 지역의 최대 현안이 등장했다. 그래서 난 취재 이외 전문가들을 초청하고 방안을 찾는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기자가 할 수 있는 (하지만 다른 기자는 엄두도 못 내는) 일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지역상공회의소 회장이 나를 불러 고생한다면 두툼한 봉투를 내밀었다. 나의 한 달 월급(당시 95만 원 정도가 월급이었다)과 막 먹는 큰 금액이었다. 보통 때 같으면 이 돈은 당연히 불우이웃 돕기나 내가 좋아하는 시민단체의 후원금으로 냈을 것이다. 하지만 부끄럽지만 나는 이 돈을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바로 타고 다니던 차가 말썽을 자주 부려 다른 중고차로 바꾸지 않을 수 없었는데 바로 그곳에 사용했다. 그 일이 있은 후 난 3개월여를 고민하다 술을 한잔 한 날 바로 사표를 냈다. 이렇게 속물이 되어 가느니 차라리 나가서 사업을 하자는 생각이었다.

 명절 때 선물을 주고받고 것은 인간사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현금이 오고 간다는 것은 당시만 해도 용납이 안 되는 일이었다. 

1) 촌지란

촌지(寸志)는 말 그대로 조그마한 성의라는 의미다. 미성(微誠)이라고도 한다. 주로 거마비, 기름값 정도로 오고 가지만 그러다가 금액이 커지고 뇌물이 이 되는 것이다. 공짜 점심을 없다고 뇌물이 되면 필봉이 무뎌질 수밖에 없다.

촌지는 이렇게 주로 기관장이나 단체의 장들이 주는 격려금이다. 90년대에는 비일비재한 일이었으나 엄연히 불법이요 잘못된 관행이다.

사람이란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어지는, 자신에게는 관대한 동물이다.

  2) 촌지의 기준

내가 나름 생각하는 촌지의 기준은 자신의 수입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한다, 판례도 비슷한 것 같다. 예컨대 월급이 500만 원인 사람과 200만 원인 사람의 기준이 다르다는 점이다. 

기준이 모호하기는 하지만 통상 기자들 세계에서 대략 30만 원 이상이면 뇌물에 속하고 그 미만이면 촌지라고 보는 듯하다. 물론 대가성이 따르지 않고 취재 다니는데 들어가는 기름 값이나 점심 값 정도로 격려, 지원차원이라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촌지는 받아서는 안 되는 돈이다. 여기에는 나를 무시하거나, 속물로 보는 시각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면 단 한 푼이라도 받지 않아야 한다. 상품권도 마찬가지다. 

혹여 나도 모르게 호주머니에 촌지가 담겨 있고 누가 줬는지 불분명할 때는 불우이웃 돕기나 시민단체 후원금으로 내고 영수증을 반드시 받아 놓기 바란다.

아무리 촌지라도 한번 두 번 받다 보면 감각이 무뎌지고 어느새 거지근성이 무럭무럭 자라게 된다. 촌지는 기자에게 독약이나 마찬가지다.

3) 접대

기자들은 종종 식사접대를 받는 경우가 있다. 관공서에서 개최한 행사나 기관장이나 부서장들이 유대관계 차원에서 또 보도요청 차원에서 판공비나업무추진비, 별도 마련된 예산으로 접대하는 경우다. 이런 공식적인 경우는 상관이 없다. 기자도 기관단체과광의 자리를 가져야 정보도 알아내고 돌아가는 분위도 파악할 수 있다.

대신 난 기관단체장이 아니라 실무자들과는 식사자리를 되도록 피한다. 그들의 생리를 잘 알기 때문이다.

내가 2년 차 될 때 즈음 시청 내 모부서의 계장과 직원 2 사람 등 4명이 함께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공교롭게도 저녁에도 다른 부서의 과장과 계장 몇이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다. 그 후 몇 개월 후 의회정기회 감사에서 나온 지료를 우연히 보게 됐는데 그곳에는 00과 결산서에 김 00 기자 외 5명과 점심 25만 원, 또 다른 부서의 결산서에도 김 00 기자 외 6명과 저녁 30만 원으로 기록 돼 있었다. 졸지에 김 00 기자인 나는 점심에도 25만 원짜리 식사를, 저녁에도 30만 원 자리 밥을 얻어먹은 대식가 거지가 되어 있었다.

그 후로 나는 여러 명의 공무원들과 식사하는 자리는 피했다.

간혹 공무원들 중(부서 회계)에는 비용을 털구석을 찾는 경우가 있는데 내가 바로 그 희생양이 된 케이스다. 결산하던 의원들은 무슨 생각을 했겠는가. 김 00 기자는 얻어먹기 전문 기자로 인식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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