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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오랑 Apr 07. 2023

#시가 있는 봄(72)-몽돌에게

         몽돌에게

                          재환

조약돌, 태초의 너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태산의 뿌리인 바위덩어리가 아니었을까

크로마뇽인이 나타나

너를 깨트려 망치를 만들고 도끼를 만들고

그런 와중에 너는 덩치를 줄여야 사랑받는다는 것을 깨달았겠지

너는 아마도 인간을 흠모하기 시작했을 거야

산에서 내려와 계곡을 타고

홍수를 겪으며 너는 모험을 즐기기 시작했을 거야

구르고 부딪히며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강과 바다에 다다랐겠지 

인간이 도구를 사용하는 방법을 터득하듯

너 또한 물길과 파도라는 수단을 이용했겠지

쏟아지는 계곡물과 파도에 이리저리 몸을 맡기며

인간세계에서도 모가 나지 않아야 하듯

너의 세계에서도 모가 나지 않아야 대접받는다는 사실을 아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거야

나는 너의 무리를 존경해

너무 부드러워 간지러운 모래보다

투박하고 무뚝뚝한 네가 더 좋아

네가 연주하는 교양악도 맘에 들어

네가 부르는 후렴구가 긴 노래도 마음에 들어

더구나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무언의 교훈은 감동적이야

머지않아 너도 한 줌 모래로 돌아가겠지

그때까지 너도 나처럼 우직하게 살아줘

우린 함께 한 줌 흙으로 돌아가겠지 

다음 생(生)에서는

너는 인간으로 나는 몽돌로 태어나 

서로를 희롱하며 살아봐

그때까지 우리 반짝반짝 갈고닦아

누구에게나 필요한 보석이 되는 거나.

PS. 우리 집 화분에 생뚱맞게 앉아 있는 네 친구들은 곧 바다로 돌려보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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