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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오랑 May 03. 2023

#시가 있는 봄(89) 달빛 경적

달빛 경적

                     재환

하루에 두 권도 팔리지 않는 

골목안쪽 헌책방을 빠져나오며

나는 쾌재를 불렀다

멀쩡한 총각에게 간택됐다는 기쁨도 잠시

달빛도 들지 않는 어느 골방에 둥지를 틀었다

처음에는 그래도 간간히 책장을 넘겨 

숨이라도 쉬게 해 주더니

요즘은 아예 벽장 속에 가두어 존재감마저 없다

청춘이 썩어간다

그럴 거면 내버려 두지

비록 헌책방이지만 그곳에 있으면

간혹 찾는 이가 있다는 기대감에

입술도 발라보고 속눈썹이라도 붙여보는 건데

술항아리 뚜껑 누르는 누름돌로 지낸 지 3년

술 취한 김에 윗저고리 풀어보지만

아뿔싸 이 총각 알고 보니 일자무식 일세

일심동체 될 가느다란 희망마저 사라지네

초가집에 호롱불 밑이라도 좋으니

날 보쌈해갈 사람 어디 없나요

보름달빛이 경적이 되어 울리는 오늘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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