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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오랑 May 15. 2023

수필) 마을방송

마을방송)

“이장입니다. 동네 어르신 상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어젯밤 8시경에 00 댁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장례식장은 00이고, 출상은 모레 아침이니 문상하실 분들은 오늘 하시면 되겠습니다”

휴일인데도 7시가 되자 어김없이 마을 이장의 마을방송이 시작됐다.

조금 뒤, 소리는 조금 작지만 이웃 마을 2리 이장의 방송도 시작됐다.

우리 마을 이장보다 차분한 목소리로 방송을 하는 2리 이장 역시 조문 안내 방송부터 시작을 했다. 공교롭게도 모두 할머니들이 돌아갔다는 방송이다.

일주일이 멀다 하고 할머니들의 초상이 나는 것은 그 이유가 간단하다.

하나는 대부분의 농촌마을에는 할머니들밖에 없다. 젊은 사람들의 모습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이웃의 광양댁 할머니는 67세인데도 경로당에 가지 않으시려 한다. 가봤다 제일 막내로 청소하고 점심 식사준비 하고, 하녀 역할을 해야 한단다.

또 방송이 할머니들만의 초상 안내를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이 마을 할아버지들은 이미 5년 전에 다 돌아가시고, 그나마 계시던 두 분은 요양병원으로 가셨다. 이 때문에 마을 경로당도 할머니 할아버지 방으로 구분돼 있었으나 작년에 방을 터 할머니들의 방으로 개조했다.

할머니들이 할아버지들보다 오래 산다는 사실이 이 마을에서 증명된다. 

내가 6년 전 이사를 와 사는 이 마을도 20년 전부터 들어서기 시작한 임대아파트와 빌라의 영향으로 절반은 토박이 절반은 외지에서 싼 임대료 때문에 이사 온 서민들이다. 그래서 순수 농촌마을이라기에는 좀 애매한 부분이 있다.

문제는 이렇게 혼합된 마을이라 원주민과 외지인들의 화합과 협력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 데 있다. 또한 외지인들의 경우 이사가 잦아 마을에 대한 소속감도 없다. 그냥 잠시 살다가 이사 가는 정거장쯤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할머니, 할아버지 보다 조금 젊은 마을 부녀회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회원이 50대 말에서 60대 중반의 아주머니 들이다. 그나마 마을 부녀회원이 10여 명 남짓하다.

마을의 가구 수가 500여 가구쯤 되고 인구수도 족히 2000여 명이 된다. 그런데 아파트와 빌라에 사는 주민들 중 부녀회에 참석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원주민 따로 이주해 온 주민 따로 다.

이 마을에서 500여 m쯤 떨어진 곳은 행정구역상 시의 동구역이다. 이곳에서 25층 아파트가 들어서고 상가가 발달해 밤이 되면 대낮같이 불빛이 밟다.

 우리 마을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유치원이나 어린이 집이 많다는 점이다. 모두 6군데나 된다. 땅값이 싸 이들 기관이 들어서기가 좋다는 점이 반영된 결과다.

이장님이 매일 아침 하는 농사와 농협안내 방송만이 이곳이 농촌마을임을 실감할 수 있다.

나도 처음에는 마을 방송을 외면했다. 하지만 서서히 관심을 가지기 시작해 6년이 된 최근에는 주의 깊게 방송을 듣기 시작했다.

나도 서서히 이 농촌마을의 주민이 되어 가고 있는 모양이다. 

요즘은 골목에 나가고 인사를 건 낼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보이지 않는다. 경로당도 조만간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빈자리를 메울 방법이 없을까? 

내가 조그만 텃밭이라도 하나 장만하고 볏짚 모자를 구해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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