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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오랑 May 13. 2023

수필)흰둥이 '미스고'

 흰둥이 ’미스 고‘

             재환

아이 셋이 다 서울로 올라가고 뭔가 허전하고 적적하던 차에 고양이 한 마리가 사무실로 찾아 들었다.


흰색의 고양이로 두어살 되어 보였다.


이사 오기 전 집에서 키우던 들양이 ‘양말이’와의 정을 미처 정리하지 못한 터라 새로운 녀석을 선뜻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그런 심정을 이해라도 한다는 듯이 그 흰둥이는 며칠째 주변을 맴돌며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사무실을 기웃거리다 빈자리를 차지하고 앉자 사무실 가족으로 받아들이냐를 놓고 직원들의 격렬한 토론이 이어졌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귀엽다며 왔다 갔다 그냥 두자는 의견이 많았다. 문제는 고양이 털 알레르기가 있다는 회계담당 여직원이었다. 며칠 전부터 알레르기가 심해져 병원 다니고 있는데 아무래도 이 녀석이 범인인 것 같다며 오후 반차를 내고 퇴근해버렸다.


그날 저녁 모두들 퇴근하고 난 후 사무실 바닥을 살펴보니 털이 날릴 정도였다.


흰둥이를 불러 빗질을 해 보니 양 한 마리의 털을 깎은 정도의 양이었다.


직원과 잘 지내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 일단 사무실이 아니라 옆 교육장이나 사무실 뒤편 간이 창고에다 잠자리를 마련하고 밥을 먹을 때만 사무실에 오도록 교육 겸 훈련을 시켰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 녀석도 그렇게 정해 놓은 규칙을 3,4일이 지나자 바로 적응하고 따랐다.


휴일 시간을 내 이 녀석을 살펴보기로 했다. 녀석은 수놈이었고 나이는 2,3살 정도에 중성화 수술도 한 것 같았다. 누군가 키우다 버린 것인지 아니면 누가 사무실 근처에다 슬쩍 갖다 놓은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귀염을 받으며 자란 녀석임이 틀림없어 보였다.


사무실에 온 지 1주일째 되는 새벽녘이었다.


옆집 아주머니가 급히 전화를 했다. 고양이가 피를 흘리며 비틀거린다는 것이었다.


주섬주섬 옷을 입고 달려가 보니 흰둥이는 말 그대로 유혈이 낭자했다.


밤새 동네 고양이와 싸웠는지 목덜미와 귀, 왼쪽 눈 밑에 구멍이 보일 정도로 심하게 상처를 입었다고 등에도 날카로운 발톱으로 긁어 털이 한움큼이나 빠져 피가 나고 있었다.


일단 사무실 응급약품함에서 붕대를 꺼내 칭칭 감고 동물병원으로 달려갔다.


3군데에 모두 27바늘이나 꿰맺다. 치료비는 무려 75만원이나 나왔다.


흰둥이는 돌아와서도 대략 1주일간을 약에 취해 비틀거리며 돌아다녔고 2주 후 실밥을 제거했다.


한차례 곤욕을 치른 탓인지, 측은하게 여긴 직원들도 흰둥이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고, 흰둥이 또한 보살펴준 직원들이 고마웠는지 아양만 늘었다.


흰둥이가 회복할 즈음 다시 사무실 회의가 열렸다.


알레르기 때문에 처음에 경기를 일으키든 회계담당 여직원도 하루에도 수십번 다가와 아양을 떠는 흰둥이에게 두 손을 들고 말았다.


그리고 정식으로 한 식구로 받아들여 목공실에서는 고양이 타워를 마련하고 나는 이름을 “미스고(고양 ~이)‘로 지었으며 대표인 옆지기는 사무실 마스코트겸 홍보담당으로 발령을 냈다.


그날부터 미스고는 ”미스고~“ 하고 부르면 어디에 있다가도 달려와 내 바지  가랑이에다 목덜미를 비빈다.


미스고의 주 임무는 회사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애교로 맞아들이는 일이다. 또한 회사에서 만든 제품의 홍보 카탈로그를 찍거나 행사 시 마스코트가 되어 아이들과 재미있게 놀거나, 분위기를 띄운다.


’미스고‘가 회사에 근무한 지도 어언 6년이 다 되어 간다. 그간 두어 차례 병원으로 달려가는 일도 있었지만 큰 상처를 입는 일은 없었고 동네 고양이들 사이에서도 짱이 됐는지 밖에서 노는 시간도 늘어나고 있다.


다만 사람도 남과 비교하면 싫어하듯이 ’미스고‘도 전에 키우던 ’양말이‘를 칭찬하거나 비교하면 힝~하고 고개를 돌리며 사라져 한나절씩 들어오지 않는다.


세상사 한가지 걱정거리가 왜 없겠는가마는 ’미스고‘에게 걱정은 지난봄 태어난 동네 길고양이들의 덩치가 날로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무실 안에서 매일 꽃단장을 하고 자란 ’미스고‘가 야생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치며 자란 길고양이들을 어떻게 당해 낼 수가 있겠는가?


다행인 것은 사무실 인근에 태권도 도장이 있어 태권도를 가르치고 검은 띠를 허리에 매주면 길고양이들이 알아서 피하려나...


이제  먹이도 노묘용으로 바뀌고 먹는 양도 줄고 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사실을 ’미스고‘도 지금쯤은 알아차렸으리라 믿는다.


봄이 되어 회사에 행사가 나날이 늘어날 터인데 그래서 미스고도 한참 바빠질 터인데 체력이 따라 줄지 모르겠다. 사료 이외는 아무것도 먹지 않아 몸보신을 시킬 수도 없으니 유일한 낙인 간식으로 보상할 수밖에...


제 발로 찾아와 한 식구가 된 ’미스고‘가 마당 정원 바닥에 뒹굴고 있다.


기분이 좋다는 의미다. 곧 새 사냥에 나설 시간이다.


”미스고! 네 하루 시간표에 점점 인간이 차지하는 비중을 줄이고 네 종족과 지내는 시간을 늘려 미스고가 아닌 고양이로 돌아가렴“


말을 하고서도 인간이 네게 묻지도 않고 자행한 증성화 수술이 마냥 아쉽고 미안하다.


그놈의 수술만 안 해서도 벌써 야생을 회복하고 인간에 의존 않고 일가를 이루고 살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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