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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오랑 May 20. 2023

#시가 있는 봄(98) 분묘개장공고

 분묘개장공고     

                          재환      

경주 땅 한편에 홍도가 잠들어있었다

포근한 대지 위에 낙엽을 이불 삼아 휴식하고 있던 어느 날

굴삭기 바가지는 본성을 드러냈다

붉은 흙이 쏟아져 나왔다

설마 홍도의 피는 아니겠지 했지만

그녀의 삶과 닮은 흙이라 모두들 숙연했다     

바람소리, 풀벌레소리 

창하는 소리처럼 청아했고 

가끔씩 찾아와 뿌려주는 선비의 술은

사모하는 그리움을 쑥대처럼 쑥쑥 키웠다

창 소리 한 번, 난 한번 친 적이 없는 

50줄의 아파트 건설업자는

홍도의 무덤조차도 무연고 묘로 간주하고

분묘개장공고를 냈다      

보일 듯 말 듯

분묘개장공고가 조간신문 귀퉁이에 빽빽이 났다

홍도에게 핏줄이 있을 리 만무하고 

무덤의 주인공이 누군지 공고될 리 만무하니

그 공고는 분명 면피용이다

홍도를 그리워하는 이 몇이나 알아보았을까

이제는 구렁진 야산이 아니라 

납골당에 가야 홍도를 볼 수 있다

한 평 땅에, 조그마한 비석하나면 족한 것을     

산 흙이 죽은 흙을 희롱한다

숨 쉬는 흙이 발효된 흙을 밀어낸다

그렇게 뒤죽박죽, 구린내 나는 인간들이 집 짓기에 열중하는 동안 

홍도가 긴 잠에서 깨어 걸어 나온다     

홍도가 꽃신 고쳐 신고 사내들의 가슴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경주 홍도의 무덤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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