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재환
꼭 새벽이면 찾아오는 도둑놈 같다
낌새도, 발자국도 하나 남기지 않고 느닷없이 온다
도둑놈은 지문이나 족적이라도 하나 남기지만
그놈은 남기기는커녕 있던 형체조차 사라지게 한다
나무 위에 올려놓고 흔들리는 듯 혼란스럽다
그놈도 땅속에서 한계점에 다 달았겠지만,
인간들이 밟고 있는 이 땅이 종이 장처럼 얇게 여겨지겠지만
그 인간들은 그 위에서 부드러운 사랑도 키우고, 두터운 욕망도 키우고,
토끼 같은 아이도 키운다는 것을 모를 리 없으련만
너도 나처럼 그 어떤 연유로 끓어오를 이유가 있고
등 떠밀려 가만히 제자리에 머물지 못한 이유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느닷없이, 흔들리는 갈대모양, 끈 떨어진 가오리연 모양,
휘어 적 흔들리면 어떻게 하나
내게 믿을 건 몇 평 안 되는 서민아파트가 전부인데
겪어 본 뒤에야 비로소 중심을 잡으려는 너의 몸부림이라는 것을 알았다
네가 흔들리는 덕택에 나도 잠시 춤을 췄지만
다시는 찾아와 흔들지 말아 다오
트라우마가 되기 전에 멈춰다오
지금은 누구에게나 붉은 신호등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