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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오랑 May 22. 2023

#시가 있는 봄(99)-지진

지진

                 재환

꼭 새벽이면 찾아오는 도둑놈 같다

낌새도, 발자국도 하나 남기지 않고 느닷없이 온다

도둑놈은 지문이나 족적이라도 하나 남기지만

그놈은 남기기는커녕 있던 형체조차 사라지게 한다     

나무 위에 올려놓고 흔들리는 듯 혼란스럽다

그놈도 땅속에서 한계점에 다 달았겠지만,

인간들이 밟고 있는 이 땅이 종이 장처럼 얇게 여겨지겠지만

그 인간들은 그 위에서 부드러운 사랑도 키우고, 두터운 욕망도 키우고,

토끼 같은 아이도 키운다는 것을 모를 리 없으련만     

너도 나처럼 그 어떤 연유로 끓어오를 이유가 있고

등 떠밀려 가만히 제자리에 머물지 못한 이유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느닷없이, 흔들리는 갈대모양, 끈 떨어진 가오리연 모양,

휘어 적 흔들리면 어떻게 하나

내게 믿을 건 몇 평 안 되는 서민아파트가 전부인데     

겪어 본 뒤에야 비로소 중심을 잡으려는 너의 몸부림이라는 것을 알았다

네가 흔들리는 덕택에 나도 잠시 춤을 췄지만

다시는 찾아와 흔들지 말아 다오

트라우마가 되기 전에 멈춰다오

지금은 누구에게나 붉은 신호등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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