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돗물
재환
건망증이 심한 아낙네가 틀어 놓은 수돗물
모진 가뭄을 견디다 못한 대지는
사내의 정액을 받아들이듯 구애를 한다
긴 암흑의 터널을 지나
데워진 고무 통을 박차고 나가
서슴없이 점령군이 된다
허우적대는 개미마저 즐겁다
목마른 새는 더 즐겁다
자석에 끌리듯
수돗물은 대지 여기저기에 추상화를 그린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듯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화가의 터치가 이뤄진다
마당 한 모퉁이
한 달여 전에 뿌려놓은 상추씨앗은
횡재했다며 이제야 쌍떡잎 벌려 만세를 부른다
건망증이 있으면 어떠랴
물 값이 생명 값보다 중하랴
수돗물이 뚝뚝 땀을 흘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