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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오랑 May 23. 2023

#시가 있는 봄(100) 수돗물

수돗물

                   재환

건망증이 심한 아낙네가 틀어 놓은 수돗물

모진 가뭄을 견디다 못한 대지는

사내의 정액을 받아들이듯 구애를 한다


긴 암흑의 터널을 지나

데워진 고무 통을 박차고 나가

서슴없이 점령군이 된다

허우적대는 개미마저 즐겁다

목마른 새는 더 즐겁다


자석에 끌리듯 

수돗물은 대지 여기저기에 추상화를 그린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듯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화가의 터치가 이뤄진다


마당 한 모퉁이

한 달여 전에 뿌려놓은 상추씨앗은

횡재했다며 이제야 쌍떡잎 벌려 만세를 부른다


건망증이 있으면 어떠랴

물 값이 생명 값보다 중하랴

수돗물이 뚝뚝 땀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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