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체를 잡아주신 스승님
요즘 금연열풍이 대단하다. 사람에 따라 작심3일이 되기도 하지만 건강을 향한 사람들의 집념은 대단한 것 같다. 건강 열풍 덕분에 주변에서는 어느새 인생 60이 인생 백세로 바뀌었고 입에 달고 사는 그 말이 생뚱맞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들리는 것은 왜일까?
게을러 운동과는 담을 쌓고 사는 나도 은근히 이같은 분위기에 편성해 백세를 기대해 보기도 하지만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라는 것을 잘 안다.
어린 시절 내게 담배 한 갑은 스승님께 드리는 일종의 월사금이었다. 뒷집에 사는 내 스승님은 당시 나이로 쉰을 넘겼으니 지금의 내 나이쯤 됐다. 스승님은 6,25당시 혈혈단신으로 월남을 해 해병부대에서 임시직 군무원으로 일을 하다가 퇴직을 하셨다. 말이 퇴직이지 그 당시로는 무단 해고통보나 마찬가지였다. 재산이라고 해 봐야 달랑 초가집 한 채가 전부인 스승님은 살림살이가 곤궁하기 말할 나위 없었다. 그래서 어린 내가 듣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부부싸움이 잦았고 내방 환기창으로 보이는 스승님은 그 때마다 넓지 않은 마당을 빙빙 돌며 담배를 뻐꿈뻐꿈 태우며 울분을 삭이는 듯 했다.
그렇게 맛있게 피우던 담배도 어느 날 “돈도 못 벌면서 담배는 무슨...”이라는 아주머니의 앙칼진 목소리와 함께 스승님의 담배 피우는 모습도 점차 구경하기가 힘들어 졌다.
그 즈음 스승님의 고민이 깊어진 것과 같이 내게도 고민이 하나 생겼다. 바로 글씨였다.
공부도 그만하면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고 학교에서는 매년 반장을 도맡아 놓고 하고 있었는데 한 가지 고민은 선생님이 칠판에 책의 글씨를 옮겨 적어 놓으라는 엄명(?)이 떨어질 때 마다 체면을 구기기가 일쑤였다. 글씨필체가 엉망이어서 아이들로부터 무슨 글인지 못 알아보겠다는 핀잔을 들을 때마다 반장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보다 못한 선생님께서 “경엽아! 집에 가서 매일 한시간식 펜글씨를 써봐라”고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그날 당장 나는 문방구점으로 달려가 펜과 펜대. 그리고 잉크를 싸 맹훈련에 돌입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글씨가 늘기는커녕 손가락 마디에 물집이 잡히고 손목은 아파 연필도못 쥘 지경이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이같은 광경을 지켜보기가 안스러웠는지 아버지는 “얘야, 뒷집 아저씨께 가서 펜글씨를 좀 가르쳐 달라고 해라”는 말을 남기고 출근을 하셨다.
아버지 말씀으로는 아저씨께서는 고향 이북에서 대학을 다니시다가 전쟁 통에 남쪽으로 내려오셨지만 글씨 필체가 좋기로는 부대 내에서도 소문이 파다했었다고 하셨다.
나는 설마하며 반신반의 했지만 워낙에 글씨 쓰는 문제가 코앞에 다친 일이라 속는 셈치고 한번 찾아뵙기로 했다.
펜과 종이를 챙겨 찾아간 아저씨 집에는 방 한쪽이 모두 책이 차지할 만큼 각종 책이 많았고 그중에서 한문으로 된 책들이 유난히 많았다. 마침 심심하던 차에 내가 찾아가자 아저씨는 신이 나서 펜을 쥐는 방법에서부터 한 획 한 획 선을 긋는 방법까지 체계적으로 가르쳐 주시기 시작했다.
첫날 나는 바로 아저씨라고 부르던 호칭을 선생님으로 고쳐 부르겠다고 하자 아저씨는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선생님이라 부르지 말고 스승님으로 불러라”고 하셨다.
그날 이후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펜글씨쓰기에 열중했다. 스승님이 낸 숙제를 다 할때 마다 나는 쪼르르 달려가 다음 과제를 받아오곤 했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뒷집 아저씨에게 선물을 하나 했으면 좋겠는데... 뭐가 좋겠더냐?“라고 물으셨다. 그 말에 나는 망설임 없이 스승님께서 피우시던 담배생각이 나” 담배요“라고 대답했다. 당시 담배는 우리 집에서는 흔한 물건이었다. 부대에서 한 달에 몇 보루씩 담배가 나왔고 우리 집 벽장에는 항상 몇 보루의 담배가 재고로 남아있었기에 어머니도 듬뿍 사 주셨다.
스승님은 보자기에 사들고 간 담배를 보자마자 어린아이보다 더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으시며 좋아하셨다. 그 담배는 아주머니 몰래 광으로 숨겨졌고 스승님은 담배가 떨어질 때마다 헛기침을 하셨다. 나는 그 때마다 일종의 월사금으로 담배를 가져다 드렸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스승님께 몸에 해로운 독을 월사금으로 낸 것이지만 당시 스승님에게는 그 어떤 물건보다 유용한 선물이었으리라 확신한다.
내가 월사금을 건 낼 때 마다 스승님은 마당을 빙빙 돌지도 않았을 것이고 아주머니의 잔소리에서도 그만큼 해방이 되셨을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갔다드린 월사금의 담배가 한 달에 1,2보루 정도여서 하루에 10개피 정도로 피울 양이었으니 건강에도 많이는 해가 되지 않았을 것으로 확신한다.
내가 지금 쓰는 필체는 그 당시 스승님이 가르쳐주신 펜글씨가 근간이 됐다.
벌써 돌아가신 지가 2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맛있게 담배를 태우며 온갖 모양의 연기를 만들어 내던 스승님 모습이 떠오른다.
“스승님 몸에 해롭다는 담배, 저승에서는 끊어셨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