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회사 달력
재환
구석진 골목 안 주점에서 들리는 웃음소리가 늘 궁금했다
취객들의 단순한 웃음소리와는 달랐다
그 웃음소리에는 뭔가가 느끼한 기운이 있어 호기심은 날로 더 커졌다
어느 날 술김에 그 주점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주인장은 온데간데없고 벽에 걸린 늘씬한 아가씨가 반긴다
그 후론 술기운만 있으면 나도 모르게 발길은 그 주점으로 향했다
천관에게로 데려다준 말이라도 있었다면 목이라도 쳤을 것이다
1월에 들락거리기 시작한 발길이 12월이 되도록 끊지 못했다
옆에는 이미 내년 달력마저 대기하고 있다
마치 마약 중독자가 그것을 가까이하면
피폐해질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못 끊는 것과 같이 중독이다
술의 매출을 올리기 위해 라면을 끓여 먹어가며 연구한 상업적인 자극을
의지력이라고는 눈을 닦고 봐도 없는 내가 어찌 당할 수 있으랴
7,8월, 화려한 색깔의 비키니 수영복은 그렇다 치고
추운 1,2월에도 수영복을 입고 나타난 저의가 무엇인가 말이다
게다가 가슴은 왜 그리 크고, 입술은 또 왜 그리 붉은가
얼굴이 낯선 것으로 보아 3류 배우쯤으로 보이지만
코는 오뚝하고, 볼은 잘 익은 복숭아처럼 볼그레하다
이제 20여 일이 지나면 새해이고, 불혹이 되는 해이다
새해 아침이다
주점 앞에서는 그 달력 속 아가씨가 밖으로 나와 문밖을 서성인다
정지된 스틸사진이 아닌 동영상을 찍고 있다
단언컨대 세상의 주정꾼들은 결코 달력 속 아가씨를 이기지 못한다
대단히 상업적인 인간으로 변신한 주류회사 마케팅팀의 계략은 더더구나 이길 수 없다
술이 있고 취객이 있는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