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으로 가려진 얼굴
재환
한 노인이 길을 걷고 있었다
손에는 지팡인지 우산인지
늘 뭔가를 들고 다녔다
새벽녘에 마주쳐도 한낮에 마주쳐도
그 노인의 오른손에는 항상 막대가 들려있었다
그 노인에게서 지팡이는
액세서리였고 패션의 완성이었다
어느 비 오는 날
버스정류장에서 마주친 노인의 손에는 지팡이가 없었다
그 지팡이는 어느새 우산으로 둔갑해
노인의 머리 위를 받치고 있었다
난 호기심에 우산 속으로 뛰어들었다
노인의 우산은 두 사람이 쓰기에도 넉넉할 만큼의 크기였다
맑은 날 지팡이는 자신을 위한 것이었고
비 오는 날 우산은 남을 위한 배려였다
우산들이 지하철역으로 빨려 들어간다
젊은이들의 우산은 자기만을 위한 우산크기다
노인 우산의 절반만큼이다
곧 비는 그칠 것이다
우산을 접은 뒤 나타나는 민낯의 표정은 제각각일 터
나도 이제부터는 넓은 우산을 들참이다
우산 속에서 보았던 노인의 인자한 표정을 지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