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을 시작하고 직접 음식을 만들어먹어야 했다. 집에 있으면 대충 엄마가 해준 밥과 반찬을 먹었는데 반찬에는 대부분 액젓이 들어갔고, 집에 있는 간편식도 거의 다 동물성 재료들이 들어가 있었다. 그래서 유튜브에서 비건 레시피를 찾기 시작했다.
이것 저것 찾아서 재생목록을 만들어두니 담아둔 대부분의 영상들이 초식마녀님 영상들이었다.
처음에는 몇 가지 따라해보다가 아예 구독을 하고 영상들을 보기 시작했는데, 초식마녀님의 매력에 허우적대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행복하게 음식을 만들어 공유하고 맛있게 드시는 모습, 조근조근 비건에 대해 이야기 하시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보는 내내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기분 좋아지게 만드는 사람이 있으면 본받고 싶어진다.
초식마녀님의 행복한 비건 라이프를 보니 나도 즐겁게 비건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무언가를 위해서가 아닌 내 행복을 위해서 비건을 선택한다고 생각하니 지속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남을 위한 비건에서 나아가 나를 위한 비건, 나의 행복을 위한 비건으로 점차 마음가짐을 바꿔나갔다.
새로운 당위
앞서 이야기한 책과 초마님 유튜브 영상들을 통해 나는 비건을 자신있게 다짐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날 수록 요리에는 소질이 없던 내가 따라하는 것에 재미가 들려 다양한 음식을 직접 해먹게 되었다. 뒤에서 얘기하겠지만 채식을 시작한 덕분에 나는 정말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었다.
비건을 시작하면서 비건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 식재료를 찾아보며 비건 키워드를 검색했던 탓에 알게 모르게 관련 정보들을 많이 접했을 뿐만 아니라 유튜브에도 비건에 관련된 영상을 많이 찾아보게 되었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그렇듯 검색한 단어와 연관된 영상들이 추천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 과정에서 책 뿐만 아니라 다큐멘터리도 알게 되어 찾아보았다.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았는데, <더 게임 체인저스(2019, 루이 시호요스)>와 <카우스피라시(2014, 킵 앤더슨 & 키건 쿤)>가 그것이다.
채식=건강
사실 채식을 시작하면서 건강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았다. 애초에 채식을 하지 않을 때도 식사를 하면서 균형 잡힌 영양소 같은 건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생각으로는 식사때마다 영양소 따져가며 먹는 사람은 몇 없을 거 같다.) 채식을 억지로 시작한 것도 아니어서 사서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고기로 단백질을 섭취하는 것에 대한 대단한 오해가 사회에 뿌리깊이 잡혀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고기를 먹어야만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만큼의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고, 그것이 곧 건강함을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배워왔다. 운동할 때 권장하는 기본 식단만 보더라도 거의 필수적으로 계란이나 닭가슴살이 들어가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해보면 닭도 풀을 먹고 자란다. 그러니까 닭이나 소같은 동물들은 풀을 먹고 자라고, 그들은 그저 풀에 있는 영양소를 우리에게 매개하여 제공할 뿐인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직접적으로 채소를 먹을 때 필수적인 영양소들을 바로 섭취할 수 있게 되고, 고기를 통해 섭취할 경우 높은 콜레스테롤 함량을 동반할 뿐인 것이다.
다큐멘터리에서도 다양한 '힘 쎈' 사람들이 나온다. 세계에서 가장 힘이 쎈 사람이라고 기네스북에 오른 사람조차도 채식을 유지하고 있고, 식단을 채식으로 바꾼 운동선수가 많은 이들의 예상을 뒤엎고 육식을 고집하는 선수를 이기는 등, 채식으로 충분히 힘을 유지하는 것에서 나아가 오히려 더 큰 힘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다큐 출연진들이 증명해주고 있다.
채식=환경보전
초식마녀님 유튜브 영상을 정주행하고 Q&A 영상까지 찾아보게 되었다. 이때 초마님이 이 다큐멘터리를 추천해줬고, 넷플릭스에서 바로 찾아 시청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나에게 비건에 대한 당위성을 부여해주었다. 비건은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이며, 나 하나라도 육식을 하지 않는 것의 효과가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아무튼, 비건>에 나온 표현을 빌려 '안변해교'인 사람들이 있다.
나 하나 실천한다고 해서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굳이 힘을 들여 실천할 필요가 없다는 사람들.
그런데 굳이 비건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분야에서 이러한 '안변해' 마음가짐은 어쩔 수 없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기는 어렵고, 또 희미한 믿음으로 어떤 일을 지속하기는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다큐를 보고 난 뒤, 나 또한 내면에 자리하고 있던 '변할까'라는 의심이 단숨에 사라지게 되었다.
이 다큐에 따르면, 소고기 450g을 만드는 데 9500L, 달걀을 1800L, 치즈는 3400L의 물이 소비된다. 또, 길러지는 가축들이 먹이를 소화시키며 만드는 메탄의 양이 모든 교통수단의 배기가스보다 많고, 심지어는 그 메탄 가스는 자동차의 이산화탄소보다 86배 해롭다. 축산업은 전 세계 이산화질소의 65%를 배출하고 이 기체는 이산화탄소보다 지구온난화에 끼치는 영향이 296배나 높다.
전 세계 물 소비량의 30%, 땅 표면의 45%가 축산업에 쓰이고 있고, 지구의 허파라고 불리는 브라질의 아마존 파괴도 91%가 축산업 때문이다. 이 모든 사실이 다큐가 시작되고 초반 10분 만에 쏟아져 나오는 통계자료들이다. 이후에 다큐에서 보여주는 자료들은 매 분마다 상상을 초월한다. 그 만큼 육류소비가 환경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나 한 명이 햄버거를 먹었을 때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줄줄이 열거되는 것을 보자니 육식을 도저히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와 동물, 환경은 아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자연재해가 심각화되고 바이러스가 창궐하며 점점 환경 오염이 가속화되고 있는 지금, 육류 소비를 줄이는 실천들을 해나가야할 때가 아닐까 싶다.
비건이 일으킨 파동
비건을 전파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그 효과에 대해 과장할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정말로 내 삶에 있어 많은 변화를 일으켰고 그것을 공유하고 싶다.
행복감
나에게 있어 '행복'이라는 단어는 전혀 진부한 단어가 아니다. 나는 끝없이 그것을 갈구하고, 어쩌다 작은 행복이라도 느끼면 만취하게 된다. 그만큼 나에게 있어 행복감은 찾아야 발견하는 특별한 것이었다.
시기가 시기라 그런 것인지 나 스스로를 내버려두면 하염없이 안좋은 생각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된다. <우울할 땐 뇌과학(앨릭스코브 저)> 책에서 인간은 원래 우울하기 쉬운 신경 회로를 가졌다고 하니 그나마 그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어쨌든 불안하고 불확실한 시기인 지금의 나는 코로나 시기에 휴학을 하는 바람에 말도 안되는 무기력감과 우울감을 경험했다. 뉴스에서 많이 언급되는 코로나 블루의 대표주자가 된 것이다.
평소에도 얕은 우울감을 경험해온 나는 코로나 이슈로 한 층 더 길고 오랜 우울감을 경험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먹는 것으로 해소하는 안좋은 습관을 갖고 있었는데, 집에만 있으려니 그런 습관이 한층 더 심화되었다. 자꾸 인스턴트 음식을 해먹고, 군것질 거리들을 찾아 먹었다. 폭식증이었다. 점점 먹는 양이 늘고, 자극적인 맛을 찾게 되었다. 이러한 폭식은 또 다른 스트레스를 불러왔고 그것이 또 폭식을 일으키는 악순환에 빠지고 말았다.
채식은 이런 나에게 절제의 기준이 되어주었다. 무분별하게 음식을 먹던 내가 동물성 식재료를 따지게 되는 습관을 갖게 되었고, 이러한 작은 습관은 나로 하여금 식재료를 직접 고르고 직접 요리하도록 이끌어 주었다. 절제의 기준이 작은 습관을 만들고, 그것이 나의 행동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식사 시간도 들쭉 날쭉해서 아무거나 내키는 대로 집어먹기 십상이었는데, 채식을 시작하고 직접 요리를 하게 되면서 아침 점심 저녁을 구분해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전날 레시피 영상들을 보고 냉장고 식재료를 파악한 뒤 다음날 식단표를 미리 짰다. 그러면서 새로운 요리들을 도전해볼 생각에 신이 났고, 요리를 하는 시간도 나에게 하나의 즐거움이 되어 무기력감을 이겨내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 때는 몰랐는데, 먹는다는 행위 외에도 나를 위한 식사를 준비하는 시간, 정성스럽게 요리를 하고 예쁘게 플레이팅을 하는 시간, 사진을 찍어 공유하고 맛있게 먹는 시간, 식사 후 깨끗하게 그릇을 닦고 정리하는 시간 전체의 과정이 잔잔한 행복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스트레스라는 불을 잠재우는 더 자극적인 무언가로 식사를 이용하는 것이 아닌, 나를 위한, 나만의 행복한 시간으로 식사의 의미를 변화시키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식사가 지구 환경에도 좋고, 동물에게도 좋은 일이라 하니, 행복이 배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체중
채식을 시작하고 나서 폭식증이 없어진 덕분인지, 식사의 절대적인 양이 줄지 않았음에도 3kg가 저절로 감량되었다. 사실 체중을 재기 전에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얼굴이 눈에 띄게 갸름해졌다길래 한번 재보았다. 그렇게 안빠지던 살이 나도 모르게 3kg나 빠지다니.
사실 나는 다이어트 강박증으로 오랜 기간 스트레스를 받아왔다. 지인들조차 몰랐겠지만 외모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우울감에 빠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이러한 스트레스는 내 식습관에 있어 상당한 악역향을 끼쳤고, 삶의 전반에 있어 부정적인 생각을 자주 느끼게 만들었다. 그래서 비건을 계기로 식습관이 개선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어마어마한 효과라고 할 수 있다.
좋은 습관
비건에 대해 알게 된 이후, 자연스럽게 환경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 나에게는 '환경'에 관심이 매우 많은 친구가 있다. 환경청 서포터즈를 하고, 대학 학과도 환경 쪽으로 선택할 정도로 환경이라는 키워드에 각별한 애착이 있는 친구이다. 그 친구와 고등학교 때 한 학기동안 룸메이트를 했었는데, 전체 청소 시간에 구역을 나누어주고, 청소 상태를 점검하고, 솔선수범하여 방의 청결을 유지하는 등 주변 환경 관리에 있어 철두철미했다. 나는 책상 정리조차 제대로 안하기 때문에 그 친구가 마냥 대단해보였고, 저런 친구들이 환경운동에 앞장서는 것이구나 라고 막연히 생각해왔다.
하지만 비건을 알게 되고, 나의 작은 행동들이 환경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지 알게 되자 환경 문제를 외면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식생활 뿐만 아니라 텀블러 가지고 다니기, 장보러 갈 때 가방 가져가기 등 작은 것부터 하나씩 실천해 습관으로 만들어나가게 되었다. 여러 매체들을 통해 이러한 실천의 중요성을 깨달을 때마다 보람을 느끼고 실천의 폭을 더더욱 넓히려고 노력하게 된다. 텀블러를 가져가면 스타벅스에서 300원이 할인되니 완전 베스트 습관이 아닐 수 없다. 더불어 알바생의 귀찮음도 덜어줄 수 있다.
(100원 할인되는 줄 알았는데 친구가 300원이라고 알려줬다. 왜 여지껏 100원 할인받는 줄 알았던거지)
이렇게 환경에 관심이 없던 내가 작은 실천으로도 환경 보전에 앞장설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굉장한 보람을 안겨주었다.
요리 실력
나는 진짜 요리에 있어서만큼은 완전 똥손이다. 그냥 따라해도 못한다. 아주 똑같이 따라하는 것 같은데 전혀 다른 음식을 만들어내는 소질이 있다. 어렸을 때 동생에게 김치 볶음밥을 해준 적이 있는 데 동생이 그걸 먹고는 다시는 내가 만든 음식을 먹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 덕분에 방학 내내 동생이 해준 요리를 먹어서 좋긴 했지만.
비건을 하게 되고, 요리를 시작하면서 시행착오가 많았다. 요리를 못하는 사람의 특징은 대체재에 너그러운 것이라는 데 내가 딱 그짝이었는지, 같은 재료가 없는데도 어떻게든 만들려 들었고, 결과는 대참사였다. (똑같이 만들어도 안되는 데 감히 다르게 만들어보려고 하다니. 참.) 그렇게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고, 앞으로 열심히 공부해 돈을 많이 벌어 그냥 사먹겠다고 결심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초식마녀님을 알게 되었다. 이 분의 레시피는 개량을 하지 않는 데도 굉장히 맛있었고, 무엇보다 만들기가 매우 쉬웠다. 뚝딱 뚝딱 대충 따라하다보니 정말 맛있는 요리가 완성되어 있었다. 특히, 토마토 볶음 국수와 새송이 파스타는 내 최애 요리가 되었다. 초마님 레시피를 계기로 간보는 법을 조금씩 알게 되었고, 재료의 맛을 느끼고 예상하며 요리를 하다보니 어느새 레시피 영상을 그대로 따라하지 않아도 그럴듯한 채식 요리를 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오랜기간 비건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실력이 오른 걸 보면 내가 그 동안 얼마나 자주 음식을 해먹었는 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체중이 3kg나 빠진거다!)
기대반 걱정반
나는 무언가 결심을 하면 마음 깊숙한 곳에서 엄청난 크기의 두려움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내가 잘할 수 있을 까. 지금의 마음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욕심이 두려움을 눈덩이처럼 키우게 된다. 처음에는 이 두려움과 나 스스로에 대한 믿음 부족으로 나를 비건으로 정의내리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점점 내가 먹어왔던 고기들이 고기가 되어버리기 이전에 동물이었다는 것을 명확히 인지하고, 나 한 사람의 육식 생활이 얼마나 많은 환경 오염을 일으키는 지 알게 되니 이제는 두려움이고 나발이고 하루라도 더 비건인 식사를 하고, 하나라도 더 비건 상품을 선택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뿐만 아니라 비건 생활의 '지속성'을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전지구적인 관점에서 육식 생활이야 말로 '지속 불가능한' 식습관임을 알게 되었다.
진정 지속가능한 것은 비건이다. 채식위주의 식사이다.
내가 이제 비건으로서 이겨내야 할 것은 혹시라도 잃게 될 인간관계들과 여러 불편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의 지혜로운 대처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 뿐일 것이다. 이런 내게 초마님의 한 인스타 네컷 만화가 더 큰 용기를 불어넣어줬다.
비건은 고립이 아닌, 더 다양한 사람들을 포용하고 사랑하는, 온 세상과 연결되는 일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