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개감미 Sep 16. 2020

이토록 깊숙이 닿는 영화가 있을까,
<우리집>

우리는 모두 어린이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

*우리집(2019, 윤가은)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가까이, 어린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나.

어린 시절의 우리는 그때 느꼈던 생각과 감정을 촘촘이 기록하지 못하고,

어른이 되면 어린 시절을 잊고 어린이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고 살피려들지 않는다.

그러니까 아이일 때는 아이라서, 어른이 되면 이미 어른이 되어버려서, "어린이"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한다.

삶의 전반에 걸쳐 "어린이"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기회가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매우 특별하며, 영화가 할 수 있는, 해야하는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했다고 볼 수 있다.

'가족'이라는 단위 집단의 생애주기에서 아이와 어른이 공존하는 상태에 있을 때,

어른들의 균열이 아이들에게 어떤 생각과 감정을 일으키는 지 생생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아이의 시선과 목소리로.

나는 들을 수 없는 목소리를 들려주고, 보이지 않는 부분을 보여주는 것이 영화의 중요하고 주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한참 방구석 1열을 즐겨 볼 때가 있었다.
6월달엔가 7월달엔가 집구석 라이프가 익숙해질 즈음, 거의 매일 느즈막히 아침을 먹으며 방구석 1열을 틀어놨었다. 시작은 독립영화 편이었다.

직전에 메기와 벌새를 너무 재밌게 봐서, 김새벽 배우님과 이주영 배우님 그리고 이옥섭 감독님이 나오는 편을 발견하자마자 클릭해서 봤다. 이때 변영주 감독님이 2019년에 보기 드물게 극장가를 휩쓴 독립 영화들에 대해 이야기 하시며 가장 처음 언급했던 것이 윤가은 감독님의 <우리집>이었다.

대표적인 영화 3개로 <우리집>,<벌새>, <메기>를 언급하셨고, 세 편 중 두 편을 재밌게 봤음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말해 <우리집>은 썩 끌리지 않았다. 

약간 뻔할 것이라고 오해했던 것 같다. 포스터 분위기도 그렇고 정말 흔하게 훈훈한 느낌의 가족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감독님의 인터뷰 영상이 자주 노출이 되자 자연스럽게 호기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운좋게 이번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상영관 내부 담당으로 들어가 영화를 관람하게 되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바로 들었던 생각은, "이 영화를 재미없을 것 같다고 생각한 나는 미X놈"이었다.

솔직히 상영관지기가 아니었으면 오열하면서 봤을 것 같다.

그 만큼 정말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나오는 영화였다.



이 영화는 두 가정의 아이들 입장에서 서사가 진행되는 영화이다.

한 가족은 부모가 매일 같이 싸운다. 한나는 이 가족의 둘째 아이이다.

한 가족은 부모가 타지에서 일을 하여 삼촌에게 아이들을 맡긴다. 유진이와 유미는 이 가족의 딸들이다.

각각의 가정에서 나이에 맞는 충분한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지만, 이들은 자기 가족의 공간인 '우리집'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한나는 가족들을 위해 요리를 하면서 네 명이 함께 하는 식사 자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엄마 아빠를 설득해 가족 여행을 가자고 제안한다.

거의 매일 싸우는 엄마 아빠가 헤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유진이와 유미는 타지로 떠나버린 엄마 아빠를 대신해 집주인이 새로운 세입자를 찾지 못하도록 막는다.

유진이와 유미는 잦은 이사로 인해, 매해 다른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일 수록 안정되고 정착되어야 할 가족에 대한 소속감이,

이들에게 있어서는 힘들고 어렵게 지켜내야만 하는 공간이자 장소로서의 집과 동일하게 불안정하다.

그래서 '집'을 지키려 하면서 '가족'을 지키려 하고,

'집'을 떠남으로서 자신들만의 진짜 '가족'을 이루는 새로운 '집'을 꿈꾼다.



나 뿐만 아니라 영사자막지기님과 같은 라인에 앉으셨던 관객분도 눈물을 훔쳤다고 들었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아마 불안정한 가정에서 자라는 영화 속 어린이들에 대한 연민이 아닌, 내면에 자리하고 있을 과거 자신의 어린 시절에 영화의 장면, 소리, 냄새가 닿았기 때문 아닐까 생각한다.


어른이 되고나서 생각해보면 별 일 아니었던 일들이 있다. 

지금은 부모님의 다툼이 그냥 '또 왜 저래'라고 넘겨버릴 수 있는 일이 되었고, 부모님이 이해할 수 없을 때에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하지만 어릴 때 보고 들은 부모님의 다툼은 거대한 지진으로 느껴질 만큼 두렵고, 가족 해체에 대한 위협을 느끼게 만든다. 또, 부모님의 행동 하나하나가 감정과 생각에 커다란 요동을 일으키게 되는데, 그 만큼 '어린이'에게 '어른'인 '부모'는 크고 묵직한 경험을 만들어낸다.

그렇기에 어른과 어린이의 관계는 중요하다. 특히, 그들이 공존하는 '가족' 안에서의 안정감은 더더욱 중요하다.

그러나 세상에 아이들 앞에서 한 번도 싸우지 않는 부모는 얼마 없을 것이다. 그래서 다 자란 어른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는 어떤 크기로든지 부모와 이들을 포함한 가족으로부터 얻은 생채기가 남아있을 것이고, <우리집>은 그곳을 어우러 만져준다.



<우리집>은 잔잔하고 따뜻한 듯 보이지만, 결코 부드럽기만한 영화는 아니다.

부모에게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지만 무시당하고 외면당하는 어린이들이 느끼는 슬픔과 절망감, 답답함, 분노의 감정이 고스란히 퍼져있고, 이는 열심히 쌓아올려 만들었던 집 모형을 집을 떠나 다다른 바닷가에서 발로 짓밟고 파괴하면서 드러난다.

각자의 가족에서 느꼈던 설움을 털어놓고 답답함을 토로한 이들은 함께 집을 부시며 억하심정을 표출한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에서 정말 많이 북받쳤다.

그 시절엔 이해할 수 없었던 경험들, 그로 인해 생겼던 복잡한 감정들을 영화가 대신 꺼내주고 해소해주었다.


어린 시절을 통과하지 않고 어른이 된 사람은 없다.

세상을 이해하려 고군분투하면서도, 세상의 경계 안쪽에 서서 주목과 관심을 덜 받는 어린이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마주하는 것이야 말로 세상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에 첫 번째 조건이 아닐 까 싶다.

어린 시절에 겪는 세상의 결은 있는 그대로 내면의 자국으로 남아 바깥으로 표출되는 모든 것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어른이 된 모두가 좀 더 어린이들에게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기울이면 좋겠다.

어린이가 겪는 세계는 다음 세대 사회의 모습과 닮아있을 테니까.


작가의 이전글 마음 속에 항상 머무르고 있는 영화, <세 얼간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