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과 입대

이런 경우가 있나요

by 이뉴

병무청에서 신검을 받으라고 오라 한 뒤 1년이 지났다. MRI 같은 검사 결과지를 보여줬으면 어쩌면 면제도 가능했을 내 몸은 그러지 못해 1급이 나와 버렸다. 당시 날짜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우리 학교 특성상 과를 1학년 마치고 정하기에 2학년 마치고 군 입대를 하는 게 정통이었다. 나도 그것에 맞춰 날짜를 골라보니 12월 20일과 27일이 남았다.


친구놈은 종강하자마자 20일 날 바로 간다고 슬퍼 울고 있었다. 나는 고민되었다. 20일은 진짜 별로인 것 같고, 27일은 생일인데,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1월이나 2월로 가기엔 싫었다. 전역 후 일정들이 꼬이기 때문이었다. 하는 수 없이 생일날 입대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친구가 입대하기 3일 전, 김정일이가 죽어 버렸다. 당시 기억으로는 연평도나 천안함 같은 북 관련 사건이 작년에 있었기 때문에 독재자의 죽음에 비상이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시국이 시국이니 연기해야 말아야 하나를 놓고 며칠을 고민했다. 고민하다가 연기 시기를 놓쳐서 결국 가게 되었다.




당시 내 페이스북에는 난리도 아니었다. 연기하지 그랬냐는 원성부터, 친구들에게는 '별 미친놈 다 보겠다'는 소리까지 들었었고, 여타의 사람들에겐 불쌍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그랬다. 생일날 입대를 하다니. 크게 의미 부여를 하지 않으려 해도, 주변에서 부채질을 너무 많이 해줘서 지금까지도 기억에 선명하다.


전날 엄마가 머리를 밀어주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나는 생일을 그렇게 특별한 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 하나인데, 그해 생일은 무조건 특별해야 할 날로 못을 박았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제일 불쌍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면서 입소 전 마지막 날 밤을 보냈다. 앞이 깜깜했다. 전역이 오긴 오는 걸까.




운이 좋게도 102나 306같은 훈련소가 아닌 32사 훈련소로 가게 되어서 그것만이 유일한 위안이 되었다. 당일 아침, 공주로 가는 길이 왜 그렇게 짧은 것인지 창밖을 내다보며 가는 길이 저승문턱을 넘는 심정이었다. 여기저기 빡빡이들이 많이 보였다. ‘쟤들이 내 동기들이겠구나’ 하면서 힘차게 하라는 교관의 경례 명령에 힘차지 않게 경례를 하고 들어갔다.


나는 아주 즐겁게 말뚝 박고 싶었을 정도로 재미있게 군생활을 마치고 전역했다. 온 우주가 나를 불쌍하게 여긴다고 생각했던 마음도 경례와 함께 사라졌다. 이름도 모르는 양 옆의 333번, 335번 아무개들과 첫날밤을 보내면서 약 640여 일 뒤가 찾아올지 킥킥대기도 하고 암울해하기도 했다. 그럴 시간도 부족하게 훈련소에서는 눈이 너무 많이 내려 제대로 된 훈련은 하지도 못했다. 날짜를 세어보니 27일 동안 눈만 쓸었다. 이것 역시 진귀한 경험이지 않을까.


남자는 군대를 다녀오면 약간의 성장을 한다는 게 사실이다. 나도 그랬다. 전역 후 군대 버프를 받은 나는 그 후로 치열하게 내 삶을 조각해 나갔다. 군대라는 게 특별하지 않을 수 있었는데, 생일날 입대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매콤함까지 추가한 나의 군생활은 전역 후 더 많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해 주었고, 이유는 모르지만 이상하리만큼 다양한 경험을 할 용기까지 주었다.


모든 군인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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