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생

머리가 아파요

by 이뉴

시골 촌구석까지 불었던 사교육 열풍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사교육도 받지 못했다. 아주 철이 없었을 때는 학원 한 번 가는 게 소원이었는데, 금방 그 마음이 사라졌다. 학원을 그렇게 열심히 다니는데 나보다 성적이 안 나오는 많은 친구들을 보면서 다닐 이유가 없었다. 공부를 아주 잘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늘 상위권에 있었다. 성적과 순위는 압박 아닌 압박이었다. 왜 그런지는 지금까지 쭉 읽어오셨다면 좀 아시리라 믿는다. 나 역시도 공부 아니면 성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공부로 성공하지 못한 건 비밀로 해주시길.


수험생은 학생이나 학부모에게 모두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말이나 행동을 하면 ‘고3인데 괜찮냐’부터 시작해서 온갖 잔소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 잘 되라는 말이었겠지만 그때는 그 말이 그렇게 듣기 싫었다. 기숙사에서 잘하는 친구들과 부대끼면서 공부를 할 때, 참으로 자존감이 뚝뚝 떨어졌다. 태생이 우울하고 불안한 기질임과 동시에 낮은 자존감과 탄력성 부족한 유연하지 못한 마음은 수없이 많은 비교 대상들 앞에서 계속해서 무너졌다. 노력이 부족했던 것일까. 방법이 잘못된 것일까. 한참이나 뒤에 있던 친구들이 앞서 나가는 것을 보면서 나는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다.




내신 성적은 나름 괜찮아서 선생님은 상향 지원부터 안정권까지 고르게 지원하라고 알려주셨다. 당시 원서비가 생각보다 비쌌는데, 사배자 전형 쪽으로 안내해 주셔서 크게 부담 없이 수시를 지원할 수 있었다. 안타까운 것은 대부분의 발표가 수능 이후였기 때문에 자신 없는 수능까지 불안한 마음으로 치러야 했다. 자신 없는 수능은 온갖 엿과 응원도 이길 수 없었다. 수리와 사탐은 원하는 것보다 더 높게 나왔지만, 나머지 부분에서 기대 이하가 나왔기 때문에 큰일 났다고 봐야 했다. 원래도 정시보다 수시에 집중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웬걸. 10개의 대학에서 다 떨어졌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는 상향 지원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작년 커트라인과 비교해도 나는 붙어도 진즉에 붙었을 대학에서도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이때부터 나는 멘붕에 빠졌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름 괜찮은 포트폴리오와 담임 선생님의 도움으로 논술 준비 기간도 길었음에도 되고도 남을 학교에서 불합격 소식을 받았을 때, 나는 정말 끝이라고 생각했다. 재수는 엄두도 못 낼 상황이었다. 여러 날을 고민하다가 예전 생각이 났다.


신학생들에게 ‘여기 왜 왔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기도를 잘못해서 왔다’는 대답을 던진다. 나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였다. 일반 대학을 다녔던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긴 하지만, 아무튼 그런 농담이 가능한 학교였다. 중학교 2학년 때 나도 기도를 잘못해 버려서 이렇게 대학이 다 떨어졌나 싶었다. 수험생의 조급함에서 나오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이었을 뿐이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무엇인가가 부족했으니 떨어졌을 것인데, 꼭 그렇게 의미 부여를 해야 했던 예민한 시기였다. 그렇게 결국 가나다 군 중에서 나 군에 감신대 하나를 쓰는 모험을 택했다.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엄마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불안한 수험생을 이길 학부모는 거의 없다. 재수시킬 형편은 못되었으니 결국 져줄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만 이상했던 역대급 면접관과 신나게 싸우고 돌아온 나의 망한 면접 스토리도 결국 불합격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결국 나의 합격과 함께 엄마의 응원으로 마무리되는 훈훈한 결과가 되었다.


수험생 때를 생각하면 머리가 아파온다. 내가 다른 데를 갔으면 세계선이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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