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의 힘
처음 집을 떠나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중학교를 졸업하던 2월 달, 담임 선생님이셨던 선생님과 친구들 둘 그리고 나까지 총 4명이 여행을 갔다. 내 기억 속에서 여행은 처음이었는데 몹시 즐거웠다. 무전여행이라고 하셨는데, 꼭 그런 것은 아니었다.
전라도 광주에 도착했다. 끝일 줄 알았는데, 여러 버스를 한참이나 갈아타고 계속해서 이동만 했다. 그날 밤, 한 찜질방에서 밤을 보냈다. 어디로 가는지 여쭤보았더니 피아골로 간다고 하셨다. 새벽에 우리들을 깨우시더니 지리산으로 몰아넣으셨다. 그래도 17살의 팔팔한 학생들이었기 때문에 헥헥 대면서도 잘 올라갔다. 선생님도 잘 올라가셨다. 아주 깜깜할 때 출발해서 노고단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얼마 있지 않고 바로 내려왔다. 5시만 돼도 컴컴해져서 부랴부랴 내려왔다. 그렇게 피아골로 돌아왔다.
돌아와서 선생님이 사주시는 막걸리와 파전을 먹었다. 술은 안 된다고 극구 사양했지만, 어쩐 일인지 이럴 때 아니면 성인 될 때까지 못 마신다면서 주셨다. 등산 후에 막걸리를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천국이 따로 없었다.
선생님께 여쭤보았다. 왜 저희를 데리고 오셨냐고. ‘글쎄’라고만 답해주실 뿐, 다른 말씀은 없으셨다. 솔직히 내가 선생이었어도, 졸업한 학생들이 아무리 애틋해도 여행까지 갈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가끔씩 찾아오는 제자들을 보며 반갑게 인사해 주시고 등짝 한 번 후려주시는 것으로 충분할 것으로 생각하고 믿었다. 그런데 굳이 이렇게까지? 선생님께서 왜 그런 결정을 하셨는지 아직도 말씀해 주시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답을 알 것 같다.
복지센터 선생으로 있었을 때 중고등 학생들과 함께 80km를 걸었던 적이 있었다. 부모님들도 어렵게 동참해 주셨고, 꽤 많은 인원들이 경찰 보호 하에 안전하게 걸었다.(학부모님 중 한 분이 경찰 분이셔서 협조를 받았다.) 나는 후미에서 간격이 벌어지지 않게 조절하는 임무를 맡았었다. 반환점 이후 비가 오기 시작했다. 대휴식을 가진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나는 이미 지쳐 있었다. 앞뒤를 오가며, 때로는 뛰어가며, 뒤에 차량을 정리하며, 종횡무진 돌아다녔기 때문이었다. 걸음 수로 따지면 이미 80km를 걷고도 남았다. 손톱이 온통 보라색이 되면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악으로 깡으로도 올 수 없는 이 엄청난 짓이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생각이 들었다. 결국 발톱 몇 개가 빠져 버렸고, 한참을 고통 속에서 보내야 했다.
이 이야기를 한 이유는 이 엄청난 사건 이후 아이들의 달라진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음을 말하고 싶어서다. 동기라는 것은 굳어 있는 한 사람의 행동을 과감히 바꿔줄 수 있는 큰 힘이다. 이것이 건드려졌고, 아이들은 각자 자신의 목표와 계획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그때의 선생님도 이것을 바라셨던 것이 아니었을까. 세 사람의 공통점은 의기소침하며, 내성적이며, 가정환경도 꽤나 좋지 않았다. 그런 우리를 흔들어 깨우시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직접 경험해 보니 선생님의 ‘글쎄’라는 대답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연민의 감정으로는 그렇게까지 할 수 없다. 진정한 스승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그 후로 피아골을 가보지 않았지만, 지금도 술 예절도 배우지 못한 나에게 손수 따라주시던 막걸리와 파전, 그리고 겨울이었어도 아름다웠던 피아골은 생생하다. 그것보다 나는 선생님께서 벌이신 그 엄청난 일이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게 더욱 아름답다. 그래서 내 평생에 피아골은 아름다운 곳으로 기억될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