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아이 콤플렉스
착한 아이로 살아야만 했다. 그래야만 했다. 자연선택으로 진화하는 수많은 생명체들의 생존전략처럼 나에게는 착한 아이처럼 보이는 게 살아남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는 살 수가 없었다. 생부의 존재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그나마 할 수 있었던 게 착한 아이였을 뿐이다. 여기저기 오는 지원금과 복지들은 내가 먹고 마시고 학교를 다닐 수 있게 해 주었다. 척만 했다고 고백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착해야지만 가능했다. 세상은 척으로만 살다 간 언젠가 들통이 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 주었다.
초등학생 남자들은 가끔 사소한 걸로 시비가 붙을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그런 일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친구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사건이 결국 터지고야 말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점심을 먹고 왔더니 한 친구가 시비를 걸었다. 이유는 지금도 모른다. 그 친구 성씨가 전 씨였는데, 이름도 모르는 걸 보니 이제는 많이 희미해진 모양이다. 걔가 욕을 하면서 달려들었다. 지금은 덩치가 하마 같지만, 중1 때까지는 키가 매우 작아서 아이들에게 먹잇감이 되기 좋았다. 그래서 눈치껏 살아야 했던 것이고... 의자를 던지고, 발길질을 해댔다. 반응하지 않았다. 보통 반응하지 않으면, 좀 수그러들어야 되는데, 얘는 더욱 길길이 날뛰었다. 결국 한 대 맞았다. 그래도 반응하지 않았다. 한 대 더 맞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대응을 해줬다. 결국 나는 목 뒤쪽에 손톱으로 긁힌 것 빼고는 다친 데가 없었다. 그 친구는 코피 터지고, 눈에 멍들고, 난리도 아니었다.
담임 선생님이 뛰어오셨고 엄청 혼났으나, 친구들의 증언으로 나는 덜 혼났다. 하지만 실망스러움을 감추지 못하셨던 선생님은 결국 내게 한 마디 하셨다.
“네가 싸울 줄은 몰랐다. 참 실망이야...”
지금 보면, 선생님이 좀 못난 것 같다. 할 말이 있고 안 할 말이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 소리가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였다. 나의 생존 전략을 뒤흔들만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엄마에게도 소식이 곧 전해질 것이고, 나아가 나를 물심양면 도와주는 많은 이들의 귀에 들어간다면 나는 불량한 학생으로 낙인찍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두려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어린 나는 그 공포감에서 빠져나오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우려했던 것과 달리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스스로 만든 망상이자 착각일 뿐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친구와 싸운 이 날은 지침이 되었다. 학창 시절 여러 번 싸울 기회가 있었지만, 학생부실로 끌려가서 맞을 정도로 싸워본 적은 없다. 대부분 회피하거나 제 풀에 지쳐 쓰러질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가끔 친구들은 한 대 치라고 했는데, 사실 그러고 싶었지만 참았다. 싸움의 승패의 여부보다 한때 생존 전략이 흔들리면서 느꼈던 거대한 불안감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았다. 인생이 참으로 거칠고 모질다. 무수히 선택되는 자연의 공정하고도 무자비함에 나는 어디로 쓸려 나갈지도 모르는 불안감이 도처에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