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마를 보다

삶은 도대체 무엇인가

by 이뉴

동생이 6살, 그러니까 내가 8살 되었을 때, 동생은 아프기 시작했다. 동네의 병원이라는 병원은 다 다녀보았지만, 원인을 알 수 없었다. 결국 큰 병원으로 가서 희귀병을 진단받았다. 몇십 년이 지난 뒤에 그 병명에 대해서 찾아보았는데, 지금도 치료가 쉽지 않은 병인 것을 보고 좀 놀랐다. 당시엔 어땠을까. 사느냐 죽느냐를 놓고 의료진들도 어지간히 고민했을 것 같았다. 살 확률이 매우 낮았으나 기적적으로 완치판정까지 받았다. 감사할 따름이다.


동생은 병마로 싸우고 있고, 그 옆에는 당연히 엄마가 지키고 있었다. 나도 보호자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였으나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나의 응석이 도움이 되지 않겠구나’라는 사실을 말이다. 병원을 자주 가지 못했지만, 가끔씩 가서 보는 동생의 모습은 너무 힘이 들어 보였다. 어릴 적부터 그런 모습을 봐서 그런지, 지금도 환자들에게 느껴지는 안타까움과 절절한 사연들은 눈시울을 붉힐 때가 많다. 하물며 같은 병동에서 죽어가던 또래 아이들의 모습까지 지켜보던 동생과 엄마의 마음은 지금도 짐작이 되지 않는다.




집에 환우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잘 알 테지만, 지켜보는 가족의 입장도 상당히 고통스럽다. 물론, 환자 본인이 제일 고통스럽다. 지켜보는 나는 적어도 건강하지는 않은가. 그래서 주변 사람들도 나보다는 동생을 더 먼저 생각하고 신경을 써 주었다. 나도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계속된 시간이 흐르고 병마와 싸워나가는 동생의 모습을 보면서 지켜보는 것도 못할 일이라는 사실을 금방 깨달았다. 피가 마른다. 시기도 알 수 없고, 완치도 알 수 없는 이 기약 없는 싸움을 언제까지 해야 되는지 나 역시도 몹시 불안했고, 지쳤다.


완치 판정 이후 여러 후유장애를 얻은 동생은 지금까지 살고 있다. 따지고 보면 살고 있는 것뿐이다. 그의 삶에 더 이상 웰빙은 존재하지 않는다. 병을 고치기 위해 내놓은 대가는 지금에 와서야 참혹함을 드러내었다. 몸 여기저기 아프지 않은 곳이 없어서 가끔씩 말없이 다녀오는 병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완치 이후 이십 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나는 지켜보고 있다. 회피도 해보고 신경도 끄고 살았지만, 안테나가 자꾸 그쪽으로 뻗는 것은 당연한 일일까. 여전히 괴롭다. 몸 여기저기를 긁어대고 잠 못 이루는 밤을 지내는 동생에 비하면 난 여전히 건강하니 괜찮은 걸까. 과연 그런 것일까. 의문이 드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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