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by 이뉴

2월 경 자대배치받고, 한 달 뒤, 정확히는 3월 29일 저녁 19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나는 당시 18시에서 20시 위병소 근무였다. 거의 끝나갈 무렵, 부소대장이 급하게 위병소로 왔다.


‘엄마가 위독하다고 하신다.’


내 맞선임이 주섬주섬 장비를 챙겨 뛰어와 나랑 교대를 해주었다. 나는 소초장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주임 원사님이랑 행보관님도 대대에서 급하게 해안 소초로 오셨다. 저녁 9시가 다 되어서 응급실로 출발했다. 가는 내내 주임 원사님은 괜찮으실 거라고 계속 말을 거셨는데, 나는 이등병 주제에 한 마디 대답도 못하였다. 조수석에서 나는 내내 기도만 했다. 간절함이 부족했던 것이었는지, 내 기도와는 다르게 의사는 사망선고를 내렸다. 비 내리는 새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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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이 순간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22살의 나이에 알만한 것들은 다 알 거라 자신하고 살았는데, 나의 생각이 부모의 죽음까지 미치지 못했었다. 설령, 그것까지 생각했더라도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 앞에 누가 제정신을 차릴 수 있겠는가. 그 후로 부모의 죽음을 맞닥뜨리는 친구들을 보면서 그들이 어떻게 무너져 내리는지 수없이 목도했다. 어느 누구도 죽음 앞에 자신할 수 없고, 확신할 수 없다.


내 인생 최대의 사건이 믿기지 않지만 벌어지고 있었다. 단 몇 시간 만에 나는 엄마를 잃은 자식이 되었다. 벤트에 하트레이트가 ‘0’이 되는 걸 지켜보았다. 지금 내 앞에 누워 계신 엄마는 이제는 세상에 없다. 의사의 단 한 마디에 마지막 한 모금 숨까지 날아갔다. 의사에 한 마디에 이 모든 것을 전가하고 싶었지만, 그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냥, 그냥 우두커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전투복만 입었지, 군인의 모습은 1도 없는 모습으로 서 있었을 뿐이다. 모르겠다. 그것이 나의 슬픔의 방법이었는지, 아니면 신에 대한 원망이었는지.




소멸은 죽음과 동시에 시작된다. 나야 종교가 있으니 언젠가 천국에서 만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과학자들이 흔히 말하는 죽음은 말 그대로 소멸이다. 죽음 뒤에는 소멸된 존재와, 남아 있는 자들의 추억과 삶이 있을 뿐이다. 변하지 않는 생각은 죽은 자에게 아무리 잘해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후회와 자책으로 인한 개인의 심리일 뿐이다. 그래서 살아 계실 때 잘해야 한다. 나는 그럴 기회가 너무 적었던 게 한스러웠을 뿐이고.


3월 중순에, 전화를 하면서 택배를 보내 달라고 했었다. 보내주신다고 했는데, 29일 그 주 27일에 택배가 왔다. 편지와 함께, 잘 받았다고 전화드렸는데, 그때까지도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이상한 것들 투성이었다. 내가 바보같이 못 알아들은 것이다. 먹을 것만 맛있게 생활관 선임들하고 나눠 처먹고 헤헤 웃기만 했다. 그래서 29일 그 상황 앞에서 나는, 나는 그렇게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도 후회와 자책의 심리로 그 편지를 지금까지 가지고 다닌다. 다 해져, 아스테이지 붙여가지고.


겪고 싶지 않지만 언젠가는 겪어야 할 부모의 죽음 앞에서 사람은 변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니면 싹수가 노란 건지, 나는 큰 어려움 없이 잘 빠져나왔다. 화려하고 부유한 성공을 하지는 못했으나, 나만의 방법과 확고한 가치관을 지키며 꽤나 낭만 있게 살아왔다고 자신한다. 그래서 천국에서 만날 때, 부끄럽게 살지 않았음을 자랑할 수 있어 안심된다. 앞으로 내 삶이 어디까지일지는 모르겠으나, 숨이 붙어 있는 한 나의 이 신념들을 잘 간직하며 나아갔으면 한다. 소수의 내 글을 읽는 여러분들에도 그런 소망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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