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 예찬
나는 꽃을 참 좋아한다. 봄이 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개나리, 벚꽃도 남들만큼 좋아한다. 시골집 무덤가에 있던 빨간 장미랑 노란 수선화도 하루에도 몇 번이나 들여다볼 정도로 좋아했다. 여름의 연꽃이나 해바라기, 가을의 코스모스나 국화, 겨울의 동백도 빼놓지 않고 보러 간다. 그 외에 이름 모를 들꽃들도 만나게 되면 자리를 금방 뜨지 않고 몇 번이고 바라본다. 그리고 서툰 실력으로 담아낸다. 그렇게 꽃 사진만 한 트럭이 되었다. 어쩌다가 내가 꽃을 좋아하게 됐는지는 조사해 볼 만한 일이지만, 그것마저 좋아하지 않았다면 꽤나 퍽퍽했을 삶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 본다.
수많은 꽃들 중에 특히, 연꽃을 제일 좋아한다. 처음 연꽃을 만난 것은 관곡지였다. 주차할 곳도 없어서 저 멀리 주차를 해 놓고 한참을 걸었다. 누구나 겪은 장비병을 한 차례 치른 후라 카메라 가방에는 값싼 온갖 것이 들어 있었다. 무더운 여름 날 만날 수 있는 연꽃은 꼭 땀 한 바가지를 제물로 바쳐야 했다. 그래도 맹꽁이 소리와 함께 연꽃 사이를 거닐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땀을 뻘뻘 흘리며 도착한 관곡지에는 훌륭하신 사진사님들이 많이 있었다. 아랑곳하지 않고 그 사이를 누비며 연꽃들을 담았다.
14년도에 관곡지를 찾고 여러 해 같은 곳으로 연꽃을 만났다. 그러다가 궁남지라는 곳을 알게 되어 한 두 해를 다녔다. 궁남지에서 연꽃을 찍다가 어느 사진사분과 이야기할 일이 있었다. 연꽃 사진 찍는 팁도 알려주시고 왜 연꽃을 좋아하냐고 물어도 보셨다. 딱히 그런 생각은 안 해봤다고 답했는데, 껄껄 웃으시더니 자기는 연꽃을 참 좋아한다고 하셨다. 왜 좋아하시냐고 조심스럽게 여쭤보았더니, 이유가 참으로 멋졌다. 그분이 말하기를, “연꽃은 더러운 곳에서 피어나는 데 고귀함을 잃지 않아서”라고 하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연꽃에 대한 설명이 그러했었다. 어느 문화에서는 순결이나 깨달음에 대한 의미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아무튼 어느 멋진 사진사 선생님과의 대화 뒤로 나도 같은 이유로 연꽃을 좋아하게 되었다.
여름이 되면, 아침 일찍 일어나 연꽃을 찍으러 다녔다. 아침 이슬을 맞은 연꽃을 만나야 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해가 떠오르기 전에 만나야 했기 때문이다. 연꽃은 그 자체로도 고귀함을 잃지 않지만, 이슬 맞은 연꽃은 무언가 더 심오함이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심술 맞은 해가 금방 이슬을 날려버리기 전에 그 심오함의 세계로 들어가야만 했다. 나름 서둘러 일찍 출발했지만 이미 많은 사진사분들이 화려한 장비들과 함께 연꽃을 찍고 있었다. 나는 그 가운데에서 허접한 장비로 자세를 한없이 낮춰가며 찍었다. 당시, 망원렌즈도 없었기 때문에 저 멀리 연못 한가운데에 있는 멋있는 연꽃들을 찍을 수 없었다. 몹시 짜증이 났지만, 강렬하게 뻗어대는 연꽃의 기운을 받았음에 감사해야 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비싼 망원렌즈를 구비했다는 사실은 비밀이다.
특히, 다른 꽃에 비해 힘이 느껴진달까. 불교의 상징이기도 한 이 연꽃은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신비감을 주고, 묘한 매력으로 끌어당긴다. 봉우리 진 꽃부터 이슬이 맺힌 꽃, 햇빛을 받은 꽃, 잎이 다 떨어진 꽃 등 탄생과 함께 소멸까지 다양한 모습을 관찰할 수 있는 연꽃은 삶의 메시지를 주기도 하고 사색의 현장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시끄러운 삶의 문제들 앞에서 연꽃을 자주 마주하게 된 것은 결코 우연히 아니었다. 나는 꽃들 하나하나 사이에서 도피와 해결을 반복하였다. 이 친구들은 뜨거운 태양빛도 기꺼이 감내하며 한 여름을 보내기에, 그렇지 못한 나는 부끄러움만 가득 안고 돌아간다. 불평과 불만을 잔뜩 싣고 왔던 마음은 여기저기서 뽐내는 고귀함과 심오함 앞에서 나도 모르게 사라졌다. 그리고 연못을 빠져나오면서 나도 기꺼이 인생에서의 고난과 역경을 감내하며 살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