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산

끌림

by 이뉴

충남 당진에 살지만 가장 많이 찾은 곳이 집 근처가 아니라 아이러니하게도 제주도이다. 현재까지 제주를 44번을 찾았다. 여행으로만 다닌 것은 아니었지만, 제주의 감성을 느끼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마음이 울적할 때, 삶에 고민이 가득 쌓여 있을 때 거의 무조건 제주를 갔다. 항상 다니는 코스로만 다니면서 안정을 찾기도 했다. 나는 제주를 가면 무조건 월령포구를 간다. 월령은 작은 항구인데, 조용히 발을 내밀고 앉아 사색하기 좋은 바다였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 월령은 이미 유명해져서 스쿠버 다이빙을 하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그래서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조용했던 나만의 장소가 들켜버린 기분이라 이기적 이게도 기분이 나빴다. 월령을 간 다음 반드시 가는 곳이 해그문이소이다.



해그문이소는 이승악 오름에 있는 연못인데, ‘나무가 울창하고 하천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밝은 대낮에도 해를 볼 수 없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처음 어느 한 분의 사진을 보다가 시작된 나의 호기심은 한참을 헤맨 끝에 결국 길을 찾아내었고 기어이 그곳을 방문하게 됐다. 세상에 이런 곳이 있나 싶을 정도로 종교적이며 신비스러운 이곳은 나에게 무한한 영감을 제공했다. 미신을 믿지 않지만, 여기저기 제기들이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무당들이 수련을 할 만한 곳이구나 싶은 생각이 순간 들었다. 그럴 정도로 굉장히 영적인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이한 색깔을 띠고 있는 절벽에 아주 가느다랗게 물줄기가 내려오고 있었다. 다른 때에 방문했을 때는 온통 이끼일 정도로 유량은 거의 없었다. 제주는 대부분이 간헐천이라 비가 와야만 물이 흐른다.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계곡을 따라 온갖 이끼들이 잔뜩 끼어 있었다. 비가 온 지가 꽤 됐나 싶었다.



그 순간이었다. 연못의 물이 동했다. 저 위로는 빽빽한 나무들 덕분에 빛도 바람도 잘 들어오지 않았다. 어디서 부는 바람인지 연못에 작은 소용돌이가 치기 시작했다. 기겁을 했다. 금세 잦아들었지만, 미동도 없던 이 연못에 일어난 기이한 일은 나를 홀리게 했다. 이런 이유로 갈 때마다 이 험한 곳을 찾는 것이다.



이곳을 다닌 이래, 이 연못을 찾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주로 사람이 없는 시간을 피해 새벽에 다녔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도착했는데, 어떤 아저씨 한 분이 캠핑용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인사를 드렸더니 여기를 어떻게 알고 왔냐고 물으셨다. 얘기를 나누어보니 나랑 비슷한 케이스로 해그문이소를 찾으신 것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참 나누고 아저씨는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나셨다. 나는 한참이나 그 공간에 머물면서 사색의 시간을 가졌다.




돌에 낀 이끼가 주는 냄새. 흐르지 못해 썩어 버린 작은 연못의 냄새. 불현듯 저 위에서 불어오는 휘이잉 거리는 바람소리. 인기척에 화들짝 놀라 사라지는 산의 주인들. 아주 조용한 곳에서 풍겨오는 냄새들과 소리들은 편안한 마음을 준다. 시끄럽고 번잡스러운 곳을 떠나 이곳을 찾을 때면 이것이 힐링임을 고스란히 느끼고 돌아간다. 돌아가고 난 나의 삶은 전보다 조금 더 성장해 있었다.




현재 필자는 꽤 긴 베트남 출장 중이다. 덥고 바쁜, 지금 이곳에서 다시 만나러 가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든다. 사람들로 인해 황폐해진 제주가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만, 그래서 별로 가보고 싶지 않지만, 이곳만은 다시 찾아가고 싶다. 마치, 누군가의 할머니 집처럼 말이다. 아마 그렇다는 것은 내 인생의 삶에 생각할 게 많아졌다는 뜻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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