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바다

고민 무덤

by 이뉴

내 주변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본 적이 있다.


“산을 좋아하세요, 바다를 좋아하세요?”


돌아오는 대부분의 답은 거의 절반으로 나왔다. 응답자의 다양한 이유를 듣고 있으면 물어본 나 자신도 같은 이유로 산과 바다를 좋아하게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필자는 바다를 더 좋아한다. 과거에는 산을 더 좋아했다. 산을 좋아했던 이유는 누구나 다 아는 그런 이유였다. 높은 곳에 올라 내려다볼 때의 탁 트인 풍경과 시원함이 주는 맛이 일품이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더해, 산은 나의 고민들과 풀지 못한 삶의 질문들을 고이 간직해 주었다. 그래서 산을 좋아했다.


두 사진 모두 제주 바다이다


하지만 바다를 더 좋아하게 된 이유는 산을 좋아했던 이유와 반대였다. 바다 역시 산처럼 탁 트인 풍경을 볼 수 있는 것은 똑같다. 대신에 바다는 나의 고민들과 풀지 못한 삶의 질문들을 다 가져간다는 데 있다. 그래서 과거에는 다시 꺼내보아야 할 것 같다면 산으로 가 고이 묻어두었던 반면에, 요즘은 바다로 가 모든 것을 흘려보내는 쪽을 택한다. 누구라도 빨리 다 가져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1번은 부산, 2번은 태안 '나만의 바다'




나의 모든 글에는 공통적으로 흐르는 단어가 있다. 불안이다. 전문적인 지식이 짧아 나의 불안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글들을 통해 주절주절 많이도 늘어놓았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어느 누구도 불안하지 않은 존재는 없다. 그리고 이 불안을 겪지 않으면 제대로 된 성장을 할 수 없다. 불안은 아프지만, 불안은 이정표로서 삶의 길을 제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으로서 한 번쯤은 내게서 모든 아픔들이 떠났으면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럴 땐, 참고 참다 무너지느니 꼭 바다를 찾아 다 떠내려 보내시라.


삼척 어느 바다의 드론샷


그렇게 한 번 비워내고 나면 후련한 마음이 든다. 현실은 전혀 변한 것이 없지만, 나의 마음 상태가 변했으니 바다는 나에게 크나큰 선물을 준 것이나 다름없다. 밀려오는 파도에 조금씩 조금씩 마음을 흘리다 보면 어느덧 텅 빈 깨끗한 마음으로 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해변가의 모래알이나 동그란 자갈처럼 아름답고 반짝이는 모양으로 변해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바다를 마주하고 뒤돌아 나오는 나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산뜻했다. 다시 현실이라는 치열함과 잔혹만이 있는 곳으로 갈 준비가 되었다. 다시 돌아올 이 바다에 나의 모든 것을 쏟아내놓고 가니, 다시 불안과 좌절, 아픔과 비참함을 담아낼 준비가 되었다. 알려 드릴 수 없으나 고맙게도, 지금 어느 한 바다는 나의 고민들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숭고하고 장엄한 자연 앞에 배설물만 잔뜩 놓고 온 아주 몰상식한 사람이 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도 살아야 되니 말이다. 너무 과한 의미 부여겠지만 수없이 많은 바다는 내 질문들의 무덤이 될 예정이다.


1번은 안면도 운여해변, 2번은 태안 파도리 해식동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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