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의 아름다움이 영원할 수 있다면
“영원할 줄 알았던 사랑도 저물고...”
빅뱅의 노래 ‘라스트 댄스’의 첫 가사이다. 안타깝게도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사랑도, 사람도 결국 이별과 죽음이라는 과정을 통해 그 영원을 상실한다. 마음속에 남아 있는 첫사랑이라던가, 먼저 떠나간 이에 대한 동경이 영원성을 가장 늦게 상실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부정할 수 없으나 다만 낭만으로 포장해야 할 것이다. 주체가 죽는 순간, 영원성은 그대로 상실된다. 각설하고, 원래 이 글은 20여 편의 글 중에서 가장 짧은 글이었다. 감탄사만 쓰다가 끝난 글이었기 때문이다.
수섬을 아시는가. 내가 본 들판 중에서 가장 소박하고, 가장 멋있으며, 가장 짧았다. 화성에 있는 수섬은 간척지이다. 일제강점기 시대부터 시도됐던 간척의 역사는 1994년 시화 방조제의 완공과 함께 완전한 육지가 되었다. 자신이 바다였던 시간이 한참 전이었음에도 여전히 자신이 바다였음을 잊지 않고 있는 여기 수섬은, 그래서 감탄사 밖에 할 것이 없었다.
칠면초부터 시작해, 갯질경 등등 염생식물이 수섬 일대에 많이 보였다. 특히, 이곳을 유난히도 사진사들이 많이 찾는 이유는 삘기꽃 때문이다. 다른 말로 띠꽃이라 불리는 이 작고 하얀 꽃은 척박하고 배수가 잘 되지 않는 땅에서도 잘 자란다. 특히, 염분이 조금 있고, 습기가 많은 토양, 농사짓기 부적합한 땅에서 군락을 이룰 정도로 잘 자란다. 바다를 들판으로 바꾸어 놓아도, 그들은 자신이 바다임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 그 사실을 안 순간, 왜인지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자연’이라는 지극히 자연스러움 앞에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는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누구인지를 실시간을 까먹으며 산다. 망각의 바다에서 가끔씩 건져 올리는 기억의 한 조각도 소중히 여기지 않고 다시 던져 버리기 바빴다. 이러저러한 핑계로 삶에서 우리의 자연스러움이 무엇인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 수섬은 한 번도 자신이 바다임을 잊은 적이 없었다.
물리적인 것으로 파도를 막을 순 있어도,
그들의 자연스러움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아무튼, 바람에 일렁이는 하얀 삘기꽃들의 나부낌과 듬성듬성 놓인 외로운 나무들, 지평선에 걸쳐 내려가고 있는 해와 어딘가로 가는 거대한 새 떼까지 모든 모습이 이 수섬 일대에서 일어난다. 그래서 ‘한국의 세렝게티’로 불리는 이 아름다운 들판에 발을 내딛는 순간, 그 어느 누구도 쉽게 돌아갈 수 없다고 확신한다.
일몰의 순간은 너무나도 짧았다. 골든타임을 잘 맞춰서 와도, 이미 해는 내일 보자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친구를 불러내듯, 강제로 해를 잡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순응하며 조금이라도 더욱 카메라에 담기 바빴다. 붉은빛이 완전히 사라져 저 멀리 있는 시화호에 불이 들어올 때까지 말이다. 이 순간이 영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나 황홀하고 멋진 곳을 어느 곳에서 볼 수 있을까. 하지만 사진을 찍으며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라고 외치는 사진사들조차 돌아가야 한다. 우리에겐 내일이 있지만, 오늘은 끝이 났기 때문이다.
항상 나의 모든 여행지는 힘겨움의 끝에 있었다. 위로라도 하는 것일까. 짠 내음 없는 바람에 일렁이는 하얗고 작은 꽃들은 내 마음도 결국 하얗게 물들여 버렸다. 그곳의 모든 존재들 (꽃이나 들풀, 나무, 새, 바람, 태양 등)은 나에게 한 마디씩 위로의 말을 건네주었다. '잘 가’, '다음에 또 보자’, '힘내서 다음에는 더 멋진 모습으로 보자’는 등등. 한 동안 나에게 매우 시끄러운 곳이 되었다. 나의 카메라가 닿는 곳마다 저마다의 아름다운 포즈로 내게 기억될 수 있게 기꺼이 자신의 조각을 내어 주었다.
어두컴컴해져, 소들도 돌아간 이곳엔 이제 나 밖에 없었다. 저 멀리 듬성듬성 보였던 사진사들도 다 사라지고 없었다. 장비를 정리하고, 저 멀리에 두고 온 차를 향해 걸었다. 정말 잠깐의 아름다움이었다. 꿈을 꾼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반짝임에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바다에 있어야 할 윤슬이 여기에도 있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머릿속에서 반짝이는 그 순간이 계속해서 일렁거렸다. 그래서 아름다움이 영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궁금해졌다.
인생에서 행복했던 순간을 애타게 그리워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행복의 순간은 짧고, 다시 괴로움으로 살아가야 하는 시간은 길기 때문이다. 매일을 화양연화처럼 살 수 있다면 혹시 괴롭지 않을까.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또 다른 방식으로 괴로울 게 뻔하다. 인생이 그렇게 공식대로 될 리가 없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수섬을 빠져나온 건 벌써 몇 년이나 되었다. 몇 번의 방문 이후로 더 이상 가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다른 것보다 나를 위로해 주던 대상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 가장 마음이 아프다. 정말 영원한 것은 없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