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별

나의 첫 번째 친구이자 마지막 친구일, 낭만

by 이뉴

맨 처음 낭만을 보았던 날은 초등학교 때였다. 시골 중에서도 시골에 살았던 나의 하늘은 별들로 가득했다. 새까맣게 변해버린 검은 하늘 저 건너편에 개 짖는 소리가 을씨년스럽게 들려와도 무섭지 않았던 것은 조그마한 창문 너머 반짝이는 별들 때문이었다. 나뭇잎들 사이사이에 걸린 별들은 마치 야광별 같았고, 그것들은 어린 나의 마음을 위로하기에는 충분했다. 추웠던 방의 온도만큼이나 외롭고 쓸쓸했던 마음을 달랠 길 없었던 어린 나는 그렇게, 별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151230-1.jpg 카메라 산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이곳 역시 친구의 납치(?)에 의해 찍힌 결과물이다.




하지만 나에게 낭만은 그리 오래 허락되지 않았다. 아니, 달리 말해 내가 낭만을 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살 길이 막막해지고 삶이 퍽퍽해지면서 하늘을 올려다볼 시간이 거의 사라졌다. 남들 앞에 공손하게 손을 모으고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땅을 쳐다보기 바빴다. 출퇴근 시간엔 창문에 기대어 머리를 콩콩 찍기 바빴다. 그마저 기댈 창문도 없는 날엔, 겨우 손잡이를 의지해 쏟아지는 잠을 받아 내었다. 우산도 없는 날, 비라도 내리기라도 하면 하늘을 향해 그저 야속한 마음만 토로했다. 나의 기분 따위 알아주지 않는 하늘은 어느덧 이기적인 존재가 되어 있었다.


특히, 밤하늘의 별들을 쳐다볼 수 없는 것은 지친 몸에 덮이는 이불 때문이었다. 머리까지 덮어야만 잠을 잘 수 있는 괴팍한 잠버릇은 늘 창문 너머 비추고 있었던 별들을 볼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별을 볼 수 없었던 이유를 나에게서 찾지 않았다. 나는 내 삶의 모든 동사가 수동태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누구보다 주도적으로 나에게서 이유를 찾지 않았다.


20220309-_MG_9866111.jpg 매년 한 번씩은 찾는 안반데기. 하지만 은하수를 본 것은 이걸로 두 번째였다는 슬픈 사실이.


그러던 어느 날, 카메라를 들고 처음 밤에 나간 날. 다시 별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삽교천 제방에 서서 바라본 하늘은 그렇게 맑지 않았다. 구름도 듬성듬성 있었고, 미세먼지도 있었으며, 광해도 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름 사이를 뚫고 나오는 1등성으로 의심되는 별들은 옛날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어린 시설 나뭇잎들 사이로 삐죽거리며 나온 별들을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의 삶이 형편없었다는 것을.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아왔는지, 왜 이렇게 땅만 보고 달려왔는지 말이다. 어쩌면 내게 방향을 제시해 주고 위로를 주었던 것은 별들이었을지도 모르는 데 말이다.


그날 이후, 많은 날을 별들과 함께 헤매었다. 말 그대로 헤맸다. 낮부터 자리 잡아야 좋은 구도를 잡을 수 있다는 사진사들의 정언명령도 무시했다. 나는 내가 원하는 곳, 내가 설 수 있는 곳에서 자유롭게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그렇게 만난 별들은 지금 내 마음속에 박혀 있다. 이제 야광별은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 창문 너머 보이는 별들도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어린 시절 외롭고 쓸쓸했던 마음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들 때면, 언제든지 내 마음에 떠 있는 별들을 떠올리면 그만이다.


20190506-20190506-_MG_6538.JPG
20180817-_MG_6395.JPG
두 사진 모두 다 시골집 근처이다.




그렇게 별들을 넘어 깊은 우주를 볼 자신이 생겼다. 우연찮게 걸려버린 희끄무리한 별들의 물줄기는 깊은 낭만의 세계로 이끌었다. 용한 점집은 다 찾아다니는 절박한 사람처럼, 은하수를 만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다녔다. 힘들게 만난 은하수들 앞에서 한 가지 다짐한 게 있었다. 남들과 같은 결과물을 바라지 않는 것이었다. 나의 실력 없음을 한탄하지 않는 것이었다. 나에게 카메라는 단지 현실과 낭만을 오고 갈 수 있게 하는 스위치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옆에 아저씨가 엄청난 결과물을 보여주며 자랑을 하여도, 힘차게 박수만 쳐드릴 뿐, 내 것이 될 수 없는 것에 욕심내지 않았다. 그 욕심은 결국 나를 또 다른 지옥으로 던져버릴 게 명료했기 때문이다.


별들과 은하수를 보며 결국 천체망원경까지 구비한 나는 우주의 구석구석을 보며 감탄에 감탄을 더해갔다. 많은 이들의 반발을 뒤로하고 찍은 창백한 푸른 점인 이 지구에 살고 있는 나는 어쩌면 우주의 먼지보다도 작을 실존이지만, 그래서 이 세상에 무엇이 의미 있나 싶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저 우주의 밝은 별들도 작은 먼지에서 시작했다는 것이다. 잠시 종교를 떠나, 나의 이 부족한 실존이 그럼에도 의미가 있는 것은 야광별도 필요 없고, 창문 너머의 별도 필요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내 마음속에 별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 층씩 두껍게 쌓여가는 나의 낭만은 차가운 현실의 한기도, 날카롭게 찔러대는 삶의 고통도, 속을 뒤집을 만큼의 분노도, 무엇보다 가장 보잘것 없이 살아가는 오늘의 나마저 살아가게 한다. 이제 기대하는 것은 내 안에서 나오는 빛이 누군가에게 야광별로, 창문 너머의 별들로 기억되었으면 하는 것뿐이다.


20190506-20190506-_MG_6545.JPG 어디서 찍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깊은 밤 숱한 길을 헤매었다는 사실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