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있이 맑은
“와, 오늘 날씨 너무 좋은데? 놀러 가기 딱 좋은 날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하고 난 뒤 점심을 먹으러 식당으로 향하는 길에 나온 소리이다. 놀러 가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한 채, 밥을 욱여넣으며 되도록 빨리 쪽잠을 청해 본다. 줄곧 맑은 하늘은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게 만드는 그런. 매일 떠나고 싶게 만드는 요즘이다.
이런 하늘도 유독 맑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나에게만 일어나는 이상한 일이 하나 있다. 기분 좋은 일이 있거나 어디 여행 가는 날이면 꼭 비가 오거나 날씨가 무척 흐렸다. 반대로, 울적한 날이나 방에 처박혀 있는 날에는 꼭 하늘이 맑았다. 쓸데없이 맑은 하늘은 내 마음을 한없이 뒤집어 놓았다.
동생의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에 갔을 때였다. 난생처음 가는 미국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뿐이었다. 졸업식은 사실 구실이었고, 여행하기 바빴다. 영어 한 마디 하지 않고 잘 돌아다녔다. 그랜드캐니언에 가는 날이었다. 아침에 조금 늦게 일어난 덕분에, 시간이 많지 않았다. 중간에 후버댐도 들려야 했었는데, 마음이 조급해졌다. 전날 빌린 차를 타고 부리나케 달렸다. 거의 직선의 코스를 4시간 넘게 달리는 것은 지옥이었다. 다행히도 드넓은 대지와 푸른 하늘은 조금 답답했던 마음마저 날려버렸다. 도착해서 본 그랜드캐니언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멋진 하늘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껏 살아온 나의 삶 가운데에서 단연코 1등이라 말할 수 있는 하늘이었다.
미국 여행 후 몇 년의 시간이 지나서, 제주에서의 짧다면 짧은 기간 동안 머무르면서 만난 하늘 역시 인상 깊었다. 마라도, 협재와 금릉, 송악산, 영주산 등등 제주의 곳곳에서 만난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나의 깊은 불안과 우울이 저 멀리 하늘이 땅에 닿는 곳에서 만나는 그 순간엔 호흡마저 달라질 정도였다. 바다나 산과는 다른 방식으로 나의 깊은 곳까지 찾아왔다.
어느덧 땅만 보고 살아가던, 한 인간의 불쌍함과 비참함은 마침내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으로 불쌍함과 비참함이 해결되었다. 지나치게 겸손 아니 지나친 자기혐오는 조금씩 나를 고개 숙이게 만들었고, 언제든지 그리고 자유롭게 올려다볼 수 있는 그 기회마저 빼앗았다. 하지만, 일련의 담금질과 멋진 하늘을 통해 다시 그 기회를 찾을 수 있었다.
혹시, 이 글을 다 읽으셨다면,
오늘 하늘이 어떻든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