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조건
시골집 창문너머 아침이 오고 있었다. 고추밭에는 이슬이 내렸고, 옅은 안개가 끼었다. 이곳에서 자란 지도 벌써 30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그 흔한 구멍가게 하나 없고, 마을버스도 하루에 네 번만 지나는 이 촌동네는 변하지 않고 그대로 일 줄 알았다. 하지만 변화는 거스를 수 없었고, 마을에도 조금씩 변화가 찾아왔다. 그러나 우리 집만큼은 시간이 그대로 멈춘 것 같았다. 그런 곳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매번 지루함을 느끼지만, 아주 가끔씩 묘한 감정이 들게 했다.
은근슬쩍 어둠이 물러가는 그 순간에 나도 손을 뻗어 창문을 열었다. 시골의 그 상쾌한 기운이 방안을 감쌌다. 다시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린 나는 조금 더 밝아지기를 기다리며 이불 안의 세계를 더욱 탐닉했다. 아무도 모르고 예상할 수 없는 나만의 이상한 타이밍에 일어나 밖을 쳐다보았을 땐, 기대했던 아침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남들은 무엇이 특별하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글쎄 그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없을 만큼 나에겐 특별해 보였다.
‘무엇이 행복인가’라는 질문은 사람이 살아가는 내내 답해야 할 질문일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질문에 충분히 답을 하며 살아낸다. 여전히 불행하다고 느끼는 나와 같은 사람들은 어쩌면 삶이 내는 숙제를 평생의 시간을 쏟아부어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아주 잠깐 아침을 맞이해 문득 찾아온 벅찬 감정에 대해 행복하다고 느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 마음은 종종 학교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목련이 아직 활짝 피지 않은 어느 날 아침도 그랬고, 새벽기도 후 올라오는 언덕에서 만난 담장에 장미도 그랬다. 외로웠고, 쓸쓸했던 척박한 사역지에서 만난 개나리도 가슴이 벅찰 만큼의 환희를 안겨주었다. 삶의 끝자락에서 돌아와 만난 이름 모를 풀들에게서 삶을 배웠고, 출근길에 만나는 이른 아침의 모습은 전장에 끌려가는 사람에게 응원이 되었다.
그래서 아침을 좋아한다. 아침 기운, 아침 냄새, 아침 햇살 등등 아침에만 느낄 수 있는 그것들이 그나마 나의 행복의 조건이다.